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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號 70돌 <신동아-미래硏 연중기획 / 국가미래전략을 묻는다>

“실패한 노무현과는 다른 노무현 같은 대통령 필요”

다음 세대 위한 인명진 목사의 고언

  • 대담·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실패한 노무현과는 다른 노무현 같은 대통령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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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정희도 옳았고, 우리도 옳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진영 다툼이 심각합니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 다른 쪽을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 있었기에 경제개발과 동시에 민주화를 이뤄낸 겁니다. 앞서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훌륭했다고 평가한 것처럼 산업화 세력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헌신을 충분히 인정해야 합니다.”

▼ 미래의 대한민국이 반듯하려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희생, 공헌에 대한 인정이 상당 부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폄하되는 느낌이 있어요. 평형을 이루다가 거꾸로 뒤집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역사 발전의 후퇴죠. 인정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최근에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깎아내리면 또 다른 갈등, 반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에 생선 맡긴 꼴”



▼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시위 지도부이던 국민운동본부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협상에도 참여했고요. YS·DJ의 분열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두 갈래로 나눴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지속되고 심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후보 단일화 협상이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까닭은 뭐였습니까.

“당시를 생각하면 통한을 느낍니다. 책임도 느끼고요. 6월 민주항쟁은 시민혁명이었는데, 투쟁의 산물을 정치인들에게 고스란히 넘긴 것은 정말로 어리석었습니다. 투쟁만 했지, 이긴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전략적 사고를 못했어요.

첫째는 헌법 개정입니다. 시민단체가 참여했어야 하는데, 정치인들에게 통째로 넘겼어요. 현행 헌법은 3공화국 헌법보다 후퇴했습니다. 요즈음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이번에도 정치인들에게 맡기면 굉장히 후퇴할 공산이 큽니다. 정치인은 기득권 중심으로 사고하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여당 때 주장하던 것을 야당 되면 반대하는 게 한국의 정치인이죠. YS·DJ는 그런 정치인들과는 다른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동지라서 맡겼는데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꼴이 됐죠.

둘째, 후보 단일화입니다. 국민운동본부 지도부가 6월 민주항쟁에서 승리한 뒤 하나둘씩 헐값에 정치권으로 넘어갔습니다. 권력욕 있는 사람은 권력으로, 다른 욕심 있는 사람은 다른 것으로 유혹했죠. 30여 명 되던 상임집행위원회 인사들이 한두 달 지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더군요. 정치 세력에 편입돼버린 겁니다.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팔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지도부의 상당수가 정치권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이들은 이단, 배신자 비슷하게 취급받았어요. ‘비판적 지지’(DJ 지지) 쪽에 서야 민주투사로 대접받았습니다.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이들은 숫자도 적었죠. 후보 단일화가 YS를 지지한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민주화 진영 10년의 집권 플레임을 짜자는 것이었어요.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김영삼 씨가 먼저 대통령 되는 게 좋다고 봤습니다. YS는 정당 기반을 갖고 있었으나 DJ는 그렇지 못하기도 했고요.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양김 씨가 뭐가 다르냐, 두 분 모두 대통령을 지내지 않았느냐고 얘기하겠지만, DJ는 당시 상당수 국민 마음속에서 기피 인물이었습니다.”



“경제민주화가 ‘원칙’ 돼야”

▼ 색깔론을 말씀하는 것이군요.

“독재 정권이 덧씌운 이미지지만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대중 씨가 이미지를 바꾸려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오죽했으면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손을 잡았을라고요. DJ가 정권을 잡은 건 YS가 집권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YS가 하나회 척결 등을 하지 않았다면 DJ 정권은 없었을 거예요.

후보 단일화를 주장한 이들이 가졌던 현실적 대안인 ‘김영삼 먼저, 김대중 나중’대로 됐더라면 민주화 세력이 분열하지 않았을 겁니다. 노태우 정권이라는 과도기도 없었을 것이고요. 안 거쳐도 될 노태우 시기를 거치면서 민주 세력이 지역으로 분열됐습니다. 1987년 시민 항쟁에서 승리한 후 국력을 모아 분열을 막았으면 지금과 같은 지역주의 또한 없었을 겁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요. 굉장히 통탄스럽습니다. YS보다 DJ 잘못이 더 크다고 봐요.”

▼ ‘87년 헌법’이 3공화국 헌법보다 후퇴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경제민주화에서 후퇴했죠. 119조가 대표적 사례고요.”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한 반면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헌행 헌법이 규정한 경제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는 다수 견해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혼합 경제질서’로 봐야 한다는 소수 견해로 나뉜다. 다수설은 1항이 원칙, 2항이 예외라고 본다.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2항은 원칙이 아니라 원칙인 1항을 보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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