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 상호금융은 조합원들이 맡긴 예금을 자금이 필요한 다른 조합원들에게 싼 이자로 빌려주고, 남은 예금을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운용케 해 농가소득 증대를 꾀한다. 지난해 말 현재 농협 상호금융의 예수금은 249조 원, 대출금은 169조 원으로 국내 금융계 최대 규모다. 전국 점포 수는 4581곳으로 국민은행 점포 수의 4배나 된다. 우리 몸 전체에 퍼진 모세혈관처럼 전국 구석구석으로 확산돼 금융의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것이다.
“가격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금융도 품질경영을 해야 한다.”
지난 1월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이사에 오른 허식(58) 대표가 취임과 동시에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이다. 1976년에 입사해 NH농협은행 전략기획부장, NH농협금융지주 재무관리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농협 내 대표적 전략통. 그런 그가 꺼내 든 첫 카드 ‘품질경영’은, 기업 경영의 기본이라 할 ‘고객 신뢰 확보’와 매우 밀접해 보인다. 5월 14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고객보다 먼저 ‘사기 인출’ 파악
“금융회사는 신뢰로 먹고사는 곳인데도, 그간 국내 금융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지 않았습니다. 고객 신뢰를 새롭게 구축하는 차원에서 민원, 전자금융사고, 전화 금융사기를 중점 관리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성과는 금세 나타났다. 1~3월 전국 1136개 농·축협에서 발생한 민원이 총 706건으로 지난해 1분기 1628건 대비 56.6%나 줄었다. 금융사기 모니터링을 강화해 올해 들어 1243건, 64억 원의 사기 피해를 예방했고, 대포통장 점유율도 지난해 14.26%에서 올해 5.16%로 대폭 줄었다.
▼ 비결이 뭔가요.
“금융회사에서 민원은 곧 ‘불량’입니다. 3대 민원으로 불친절, 업무 미숙, 상품 설명 부족을 꼽고 10개 이행 과제를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부서별 ‘불량률’을 계수화한 뒤 지역 농·축협과 연대해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했어요. 또 의심 계좌를 면밀하게 감시해 비정상 거래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5월 1일부터는 모니터링 전문 인력을 6명 더 늘려 365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체제로 전환했고요.”
“조합원 집 숟가락 숫자도 안다”
실제로 1월에는 한 고객이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전화에 속아 퇴직금을 날릴 뻔한 일을 예방했다. 금융사기대응팀은 모니터링을 통해 의심 계좌로 1억 원이 흘러들어온 것을 발견, 1억 원의 원래 주인에게 전화했다. 그는 거금이 인출된 사실조차 몰랐다. 이에 금융사기대응팀은 계좌 인출을 즉시 정지시키고 경찰 등에 신속하게 연락해 범죄꾼들이 이미 인출해간 5000만 원까지 찾아냈다. 허 대표는 “민원이나 사기·사고 예방뿐만 아니라 서비스, 업무 프로세스 등 비(非)가격적 요소들을 발전시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곧 품질경영”이라며 “품질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와 역량을 배양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요즘 허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핀테크’(FinTech,· 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한 금융서비스)다. 그는 핀테크가 금융기관의 전통적인 거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핀테크 관련 트렌드와 향후 전망을 주시하고 있다. 3월에는 하승봉 상호금융지원본부장을 팀장으로 한 핀테크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시켰다. 이 TF팀은 지급결제 및 송금, 수신, 대출, 자산관리, 인터넷전문은행 등 분야를 나눠 핀테크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농협 상호금융은 최근 출시된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 제휴에도 참여하고 있다.
▼ 농협 상호금융 고객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 인구가 아닌가요.
“많은 분이 농협 상호금융 고객은 나이가 많고 스마트폰 접근성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실제 데이터를 보면 고객의 연령 분포도가 시중은행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요. 농촌 지역뿐만 아니라 도시 지역 고객도 많거든요. 또 전체 고객 2900만 명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고객이 1500만 명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앞으로는 금융은 물론 건강,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가 스마트폰을 통해 서비스가 이뤄질 겁니다. 고객과의 접점이 지점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만큼 변화에 대한 대응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