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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출산보다 커리어 낳아도 ‘전업엄마 그 이상’

한국 - 대만 닮은꼴 ‘알파걸 딜레마’

  • 타이베이=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출산보다 커리어 낳아도 ‘전업엄마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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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을 안 하고, 또 왜 아이는 낳지 않는 건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돼요.”

왕커징(王克敬) 씨는 은퇴한 여기자로 세계여기자여작가협회(AMMPE) 비서장을 맡아 요즘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형제자매는 7명. 다들 결혼해 자녀를 2명씩 낳았다. 그런데 모두 성인이 된 14명의 ‘2세’ 중 결혼한 이는 4명에 불과하다. 왕 씨는 “결혼한 넷 중 아이를 낳은 조카는 둘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3월 7일 토요일 오후, 타이베이의 대형 쇼핑몰 Q스퀘어에 자리한 한 카페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여기서 만난 제니퍼 리(32) 씨는 금융회사 근무 5년차의 골드미스다. 그는 “직업이나 가치관 등이 나와 맞는 ‘미스터 라이트(Mr. Right)’를 만난다면 결혼하고 싶겠지만, 자녀는 양육비도 많이 들고 커리어를 쌓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며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나고 여유롭게 쇼핑하는 싱글 라이프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한나 쳉(34) 씨 또한 “여성에게 결혼이란 여전히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집안과의 결합이라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양성평등의 그늘일까. 대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으로 시름이 깊다. 1951년 7.04명이던 대만의 합계출산율이 2010년 0.895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런 속도로 출산율 감소가 지속된다면 2022년 인구 증가율이 ‘제로’가 된다는 예상이 나왔다. 마 총통이 “저출산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천명한 배경에는 이런 위기감이 깔려 있다.

합계출산율 1명 간당간당



출산보다 커리어 낳아도 ‘전업엄마 그 이상’
한국과 대만의 저출산 양상은 흡사하다(표 참조). 결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첫아이를 출산하는 나이도 점점 높아진다. 1981년 한국 23세, 대만 24세이던 여성 평균 초혼연령이 2012년 한국 29.6세, 대만 29.5세로 높아졌다. 첫아이를 낳을 때 여성의 평균연령은 한국 30.5세, 대만 31.1세다(2012년).

늦게라도 결혼하고 출산하면 그나마 다행. 30~34세 여성의 미혼율이 크게 높아졌는데, 이런 현상은 한국보다 대만이 더 심각하다. 1982년에는 대만의 30~34세 여성 중 11.3%만 미혼이었는데, 2012년엔 46.8%가 미혼이다. 반면 한국은 1990년 5.3%에서 2010년 29.1%로 높아졌다. 한국은 30대 초반 여성 10명 중 3명이 미혼인데 반해 대만은 5명 가까이가 미혼인 셈이다.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여성 1명당 2.1명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 두 나라 모두 합계출산율이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그 정도가 대만이 한국보다 좀더 심각하다. 대만은 2003년까지는 합계출산율이 한국보다 높았으나 이후 가파르게 떨어져 2014년 현재 간신히 1명을 넘어서고 있다.

‘임산부가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도록 양보해주세요. 스위치 누르는 것을 도와주고, 물건 드는 것도 거들어주세요.’

대만 정부청사 엘리베이터에는 이런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 있다. 비영리기구 대만여성센터(Taiwan Women‘s Center) 리리쉬안(李立璿) 연구원은 “대만 정부는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한편, 모성(母性) 친화적인 일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한 예로 대만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회사를 상대로 수유실을 갖출 것을 권장한다. 이런 정부 정책에 부응해 HTC는 2년 전 타이베이에 본사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2개 층마다 수유실을 마련했다. 모유 수유 중인 여성 직원은 이곳에서 모유를 유축한 뒤 냉장고에 보관하고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제도를 비교하면 우선 출산휴가는 대만이 8주로 한국(90일)보다 짧다. 출산휴가 중에 고용된 기관으로부터 급여를 100% 받는 것은 두 나라가 같다. 육아휴직 제도는 대만이 한국보다 좀더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 기간이 한국은 최장 1년이지만, 대만은 최장 2년이다. 육아휴직 급여는 한국이 1년간 급여의 40%,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하는 데 비해 대만은 첫 6개월간 급여의 60%를 지급한다. 다만 나머지 기간에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출산휴가만 쓰겠다”

두 나라 간 격차는 육아휴직 사용 실태에서 더 여실하게 드러난다. 대만 인구는 2400만여 명으로 5100만 명이 넘는 한국의 절반이다. 그런데 육아휴직 사용자는 대만 36만6804명, 한국 6만9616명으로 대만이 한국보다 5배나 많다(2013년 기준). 한국보다 대만의 육아휴직 사용이 훨씬 일반화한 것. 다만 1년 넘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여성 육아휴직자를 대상으로 201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2개월 이상 18개월 미만 사용이 9%, 18개월 이상 사용이 11%에 그쳤다. 80% 이상이 1년 이하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다.

HTC 소개를 맡은 이는 회장실(‘Chairwoman’이라고 쓴다) 소속 천이쉬안(陳毅萱) 팀장. 임신 8개월째인 그는 부풀어오른 배를 가린 푸른색 블라우스 위에 손을 얹고 유창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다. 이제 곧 출산하는 그는 “출산휴가만 사용하고 출근할 예정”이라고 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여성의 사회적 역량이 날로 커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나와 내 친구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업 엄마’ 이상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대만 행정원이 펴낸 2013년 인구정책 백서 제목은 ‘줄어드는 자녀, 고령화, 이민(Fewer Children, Population Aging, and Immigration)’이다. 저출산이 해소돼야 고령화나 이민 문제 역시 가닥이 잡히기 때문에 저출산에 가장 큰 정책적 무게를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대만의 합계출산율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이후 1명 안팎에서 더 오르지 않고 있다. 이런 처지는 한국도 비슷하다. 아시아에서 높은 수준의 양성평등을 가장 먼저 이뤄낸 대만은 ‘알파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저출산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저는 오늘날 독립적인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혜롭게 맞춰나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적절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공 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면 해요.”(천이쉬안)

신동아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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