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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우리 학생들은 북한 국제화 마중물”

이승률 평양과기대 대외담당부총장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우리 학생들은 북한 국제화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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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영삼 정부도, 북한 정부도 나진에 대학 건립 허가를 내줬다. 그런데 1994년 공사를 시작하려던 때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3년상을 치르는 동안 모든 게 중단됐다. 게다가 당시 나진선봉개발특구위원장이 비리혐의로 축출됐고, 이와 관련해 김진경 총장도 북한에 40여 일간 구금됐다. 유엔과 미국에서 강력히 항의해 추방 형태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김 총장의 인품을 그때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 곤경을 겪고도 자기로 인해 중국과 북한, 북한과 미국 관계가 악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북한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다. 또한 구속될 때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평양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고 썼다. 강제 추방된 후에도 북한 출입이 금지됐지만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계속했다. 돈벌이나 정치적, 종교적 목적 없이 순수하게 남북 화해를 바라는 민족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일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게 북한 정부에 신뢰를 줬을 것이다.”

▼ 그래도 어떤 계기가 있으니까 북한이 대학 설립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2001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개혁·개방 현장을 둘러봤다. 그때 중국 지도부가 ‘연변과기대가 중국 사회주의체제 안에서도 국제화 창구이자 조력자 역할을 해 중국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북한도 국제화, 개방화하려면 국제인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이 곧바로 김 총장을 초청해 나진이 아닌 평양에 국제대학을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평양과기대는 평양시내와 대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평양시 낙랑구 언덕에 위치한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서 학교 전경이 보인다고. 캠퍼스 규모는 가로 세로 1km씩 총 33만 평 부지로 카이스트와 비슷한 같은 규모다. 17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총 400억 원이 소요됐는데, 소망교회가 중심이 돼 40억 원을 시드머니로 공사를 시작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해외 교포 사회와 미국 교단 등에서 후원해줬다. 부채도 일부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인 못 가

2001년 6월 남북한에서 모두 사업 승인이 났지만 개교까지는 8년여가 걸렸다.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던 모양이다.

▼ 공사가 늦어진 건 냉각된 남북관계 때문이었나.

“건설공사는 중국 업체를 활용했다. 공사하면서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공사 기간에 2차례의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남북간 긴장이 높아지고 위기도 많았다. 만약 한국 건설사가 와서 공사를 했다면 중단됐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하니까 우리가 돈을 제때 못 줘 공사가 멈춘 적은 있어도 남북관계 때문에 중단된 적은 없다. 남북 문제도 양자끼리만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장애가 조금만 불거져도 스톱이 되는데, 중국 카드를 활용하면 남북 갈등을 비켜가면서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09년 9월 1단계 건물 준공식과 개교 행사가 열렸다. 당시만 해도 이 부총장을 비롯한 한국 측 인사들이 방북해 행사에 참석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010년 4월 첫 개강(북한은 4월에 신학기 시작) 직전인 3월 26일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결국 개강은 10월로 늦춰졌다. 이후 남북관계가 올스톱되면서 지금까지 한국인은 아무도 못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석사 44명이 첫 졸업했다. 10월엔 학부생 첫 졸업식도 있었다. 그때 두 번 모두 방북 신청을 했는데 결국 못 갔다. 아쉬움이 크다.”

▼ 부총장이 학교에 못 들어가면 업무가 제대로 되나.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외부총장의 주업무가 교수 충원, 후원금 확보, 졸업생들 해외 유학과 인턴 알선 등이다. 물론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총장과 교수들이 함께 한다. 평양에 들어가진 못해도 e메일로 업무를 처리하고, 총장이나 교수들이 중국이나 한국으로 올 때 만나곤 해서 학교 상황은 세세히 알고 있다.”

▼ 운영비는 얼마나 드나.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연간 최소 30억 원 정도 필요하다. 남북교류 창구 노릇을 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 모두 편견을 갖고 우리를 바라본다. 양쪽 모두로부터 비난과 오해를 받는다. 그렇다보니 후원이 많이 줄었다. 솔직히 운영이 힘든 상황이었다.”

교수들은 모두 무보수로 일한다. 경비도 스스로 해결한다. 자원봉사인 셈이다.

▼ 교수들이 모두 외국 국적의 교포이거나 외국인인데,

“교포가 30여 명이고, 외국인이 40여 명 된다. 원래는 한국인도 가서 가르칠 수 있게 돼 있다. 북한은 지금도 이를 허용한다. 그런데 통일부에서 방북허가가 안 나오고 있다. 통일부의 고충도 이해는 되지만 안타깝다.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 교수들도 가서 가르치면 남북 교류협력이라든지 소통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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