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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심장, 눈앞의 전설

첫 내한 공연 ‘대박’ 폴 매카트니

  • 임희윤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비틀스의 심장, 눈앞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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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와요오우!”

기자가 2013년 11월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관람한 매카트니 콘서트와 연출과 내용 면에서 거의 같았지만 야외 스타디움이라는 공연장 환경과 관객 평균 연령이 일본보다 낮은 객석의 뜨거운 분위기는 공연을 더 특별하게 했다. 매카트니는 무대 위에서 진짜 감동받은 표정이었다.

일본 객석에는 1960년대 비틀스가 일본을 찾았을 때부터 줄곧 비틀스와 매카트니의 음반과 공연 티켓을 사온 60대 이상 마니아가 많았다. 한국에 비하면 지나치게 차분했지만, 거의 모든 곡을 따라 부르며 눈물짓는 장년 팬들이 채운 일본 객석 분위기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매카트니 방문 전부터 오사카의 레코드점에선 비틀스와 매카트니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고, 매장 안은 매카트니의 서적과 음반, 포스터로 뒤덮여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칠순을 넘겨서야 처음 방한한 그를 다시 한 번 이 땅에서 볼 수 있을까. 매카트니의 강한 만족도는 청신호다. 그는 공연 뒤 숙소로 이동하는 투어 버스 안에서 “한국, 조와요오우!”를 외쳤고, 자신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드는 사진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한국은 정말 환상적이다”는 말과 함께.

한국 관객의 유별나게 뜨거운 호응은 유명하다. ‘한국에 한 번도 안 온 음악인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음악인은 없다’는 말은 이제 공연 시장의 격언이 됐다. 영국의 인기 록밴드 트래비스는 몇 년 전 내한 공연 때 관객이 한순간 일제히 무대를 향해 날린 노란 종이비행기 수천 개에 감동했다. 멤버들은 스태프에게 “무대로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전부 싸서 짐에 넣어달라. 영국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영국과 미국의 록 음악계에선 ‘한국 가봤냐? 아직 안 가봤어? 꼭 가봐’ 하는 귀띔이 떠돈다는 소문이 있다.



매카트니의 강철 체력도 ‘예스’를 말한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으로 한국을 비롯한 일부 지역 공연을 취소할 때만 해도 그가 위독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휴식 뒤 이어진 순회공연 강행군을 통해 매카트니는 우려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한 가지 장애물은 높은 개런티다. 공연 주관사는 밝히기 꺼리지만, 업계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매카트니의 이번 무대 출연료만 300만 달러(약 33억 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몇 년간 ‘슈퍼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팝 거물을 꾸준히 데려온 현대카드의 머니 파워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힘든 금액이다. ‘전설의 첫 내한’이란 홍보 포인트가 소진된 두 번째 내한이 얼마큼의 티켓 파워를 끌어낼지도 미지수다.

이어지는 파격 행보

지난해 매카트니는 두 가지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나는 70대의 그가 증손자나 즐길 법한 X박스, 플레이스테이션용 1인칭 슈팅게임 ‘데스티니’의 엔딩 송을 작곡해 부른 것이다. 그 곡, ‘Hope for the future’를 그는 내한 공연 때도 불렀다. 무대에 선 팝의 전설 뒤로 보인, 컴퓨터그래픽 액션 장면이 펼쳐진 대형 스크린은 좀 비현실적이었다.

또 하나, 그는 지난해부터 미국 래퍼 카니에 웨스트와 합작한 신곡을 시리즈로 내고 있다. 웨스트의 ‘Only one’ ‘Four five seconds’ ‘All day’에 기타나 건반 연주가, 보컬, 공동 작곡자로 참여한 것이다. 웨스트는 미국 유명 래퍼 제이지의 프로듀서로 출발해 스스로 최고의 래퍼가 됐으며, 전자음악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의 형식을 힙합에 꾸준히 도입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온 21세기 팝의 혁신가다. 팝스타 리아나, 웨스트와 매카트니가 나란히 포즈를 취한 ‘Four five…’ 싱글 앨범 표지가 이채롭다. 1982년 스티비 원더(‘Ebony and Ivory’), 마이클 잭슨(‘The Girl is Mine’)과 듀오로 명곡을 만들어낸 그가 33년 뒤 21세기 팝스타와 또 천연덕스레 협업하고 있는 것이다.

매카트니가 비틀스 시절(1960~ 1970), 10년간의 천재적 폭주로 이후 45년을 편하게 산 것만은 아니다. 그는 비틀스 해체 후 첫 번째 아내 린다를 비롯한 다른 연주자들과 새 밴드 윙스를 결성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70년대 ‘Another Day’ ‘My Love’ ‘Live and Let Die’ ‘Band on the Run’ ‘Silly Love Songs’ ‘Maybe I‘m Amazed’ ‘Mull of Kintyre’부터 1980년대 ‘No More Lonely Nights’, 1990년대 ‘Hope of Deliverance’, 2000년대 ‘Jenny Wren’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작력과 도전 정신은 좀처럼 녹슬지 않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2회 헌액, 그래미 트로피 21회 수상,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 32편 작곡, 음반 1억 장 이상 판매, 영국 기사 작위…. 매카트니의 족적은 이런 숫자나 명예로만 환산되지 않는다. 비틀스 시절인 1966년, 비틀스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합작한 영화 음악 ‘The Family Way’는 매카트니의 클래식 작곡에 초석이었다. 그는 이듬해 나온 비틀스의 불가사의한 대곡 ‘A Day in the Life’에서 마틴과 함께 40인조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고 훗날 ‘Liverpool Oratorio’(1991) 이후 두 번째 오라토리오 작품인 ‘Ecce Cor Meum’(2006)으로 영국 클래시컬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앨범상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그가 악보도 볼 줄 모른다는 사실. 작곡할 때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머릿속에 든 청각 이미지에 의존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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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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