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독자개발한 라팔(왼쪽)은 시장개발에 실패했으나 4개국이 공동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오른쪽)은 시장 개척에 성공하고 한때 한국의 KFX사업에도 ‘러브콜’을 보냈다.
땅이 좁은 싱가포르는 프랑스 공군의 카조(Cazaux)기지에 고등훈련기를 갖다 놓고 조종사를 양성해왔고, 미국에서는 루크 공군기지 등을 빌려 F-16 전투기를 배치하고 조종사 훈련을 반복해왔다. 프랑스는 한국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자국과도 연(緣)이 닿는 싱가포르를 상대로 전력을 기울였다.
한국 공군은 전선(戰線)을 갖고 있는 군대다. 따라서 다른 나라 공군보다 전투기에 대한 정보가 많다. 싱가포르 공군은 이러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에 싱가포르 공군은 한국 공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공군의 기종 선정 기준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다. 한국 자료를 검토한 싱가포르 공군은 그들의 기준을 만들어 마침내 F-15를 선택했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연패 쇼크를 받은 다쏘사의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라팔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공군과 해군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라팔은 냉전 시기 개발에 들어갔으므로 프랑스 해·공군은 라팔을 상당히 많이 사줄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후 개발이 완료됐기에, 예산 부족을 이유로 공군은 16대, 해군은 26대를 줄여버렸다. 336대의 라팔을 사갈 것으로 예상되던 프랑스 해·공군은 도입 규모를 294대로 줄였다.
새로 개발한 전투기의 손익 분기점으로는 300대 생산이 자주 거론된다. 라팔은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다쏘사는 한국에서 패배했을 때 “한국의 결정 기준이 공정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벌이는 사업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겠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판단을 잘못 내린 데 대해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라팔과 타이푼은 F-15K보다 탑재무장이나 장거리 투사능력이 달린다. 굳이 비교한다면 ‘슈퍼 호넷’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보잉사의 F-8E/F와 동급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약점 때문에 다쏘사는 한국의 FX 사업 막바지에, 시제기 4대를 무료로 제공할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시제기 4대를 보태 44대를 40대 가격에 한국에 제공하자고 한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든 무조건 회사 이익만 대변하는 ‘과잉 충성파’가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한국에 4대를 공짜로 제공하면 다쏘사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같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공들여 만든 라팔의 가격을 스스로 하락시키는 행위다. 한국에 대해 너무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자존심을 지키자”는 요지로 반발해, 이를 관철시켰다. 시제기 4대 무료 제공은 없던 일이 되었고 라팔은 한국 시장에서 패배했다.
인도 시장 개척에 운명 건 다쏘
한국은 FX 사업을 할 때 이미 “2차 FX 사업이 있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1차 FX 사업에서 패하더라도 권토중래하면 2차 FX 사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것이다. 그러나 다쏘사는 한국 시장에 대해 판단을 잘못했다는 기억과 과거의 선언 때문인지 2007년 한국의 2차 FX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패자부활전의 기회도 포기한 것이다.
한국의 2차 FX 사업은 타이푼과 F-15K만 참여해 싱겁게 진행된 끝에 2008년 4월25일 F-15K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실패하고 프랑스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한 다쏘사는 지금 인도를 상대로 라팔 판매전을 펼치려고 한다. 그러나 인도도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 인도는 프랑스 전투기와 인연이 적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영국과 프랑스는 ‘재규어’라는 이름의 경전투기를 공동 개발했다. 그리고 두 나라는 재규어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독자적으로 개량했다. 영국 공군이 필요로 하는 재규어는 영국 항공기 제작사가, 프랑스 공군을 위한 재규어는 프랑스 항공기 제작사가 제작과 개량을 맡기로 한 것이다. 두 나라는 재규어 수출도 독자적으로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