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김건희 기자의 ‘윤미향 사태’ 40일 취재기

李할머니, 비리 폭로 1년 전부터 고민…의연한 태도로 기자회견장 압도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6-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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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할머니와 ‘22초’ 통화

    • 李할머니 최측근 수양딸 곽씨와 사업가 박씨

    • 윤미향에 숙소 정보 알려준 사람 누구?

    • 흥 많고 활동적인 스타일…‘여자의 일생’ 즐겨 불러

    • 30년 만에 문제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 할머니와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 배후라니?

    • 2차 기자회견문 작성 과정 전말

    • 의원 임기 시작 10시간 앞두고 나타난 尹

    • 구글 뒤지다 발견한 사진, 전화 끊지 않은 부동산중개인

    [GettyImage]

    [GettyImage]

    5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윤미향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기자는 한 달 넘게 이 사태의 진실을 쫓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10건의 기사를 보도했고, 그중 6건의 단독 기사를 썼다. ‘신동아’ 독자에게 40여 일간의 취재기를 공개한다. 

    “할머니가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5월 21일 오후 6시,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앞서 서 대표는 기자에게 “이용수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안내해 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하지만 현재 할머니가 언론과 접촉하기를 원치 않아 당장은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게 서 대표가 기자에게 전화한 이유였다. 

    기자가 서 대표에게 연락을 취한 건 5월 7일 이용수 할머니가 1차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기자는 서 대표에게 “이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 할머니가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예고한 터였다. ‘어쩌면 기자회견 전 이 할머니를 먼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24일 새벽 6시, 기자는 노트북을 챙겨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李할머니와의 ‘22초’ 통화

    서울역에서 기차로 4시간 남짓 달려 대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4분. 대구역 앞에서 서 대표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쩌죠. 할머니가 오늘 아침 일찍 대구를 떠나셨대요. 저도 방금 연락받았어요.” 

    예상 못 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디로요? 대구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신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내일 기자회견해야 하니까 대구로 돌아오시겠죠.” 

    “그럼 기자회견은 어떻게 되나요?” 

    “원래는 오늘 오후에 할머니와 만나 기자회견 시간과 장소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어요. 회견 핵심 내용도 조율하고요. 그런데 지금 할머니가 안 계시니 기자회견도 확실치 않네요.” 

    그사이 이 할머니 소재를 두고 다양한 기사가 쏟아졌다. 한 매체는 이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을 준비하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경기 수원시로 이동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보도까지 내놨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할머니에게 직접 연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이 할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이 할머니의 목소리에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할머니는 “나 지금 말할 힘도 없어요. 나중에 통화해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 할머니와 통화한 시간은 고작 22초. 인터뷰 취지조차 전하지 못했다. 다시 연락을 시도했지만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메시지도 여러 번 남겼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윤미향에 숙소 정보 알려준 사람 누구?

    ‘신동아’가 보도한 ‘윤미향 사태’ 관련 기사들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신동아’가 보도한 ‘윤미향 사태’ 관련 기사들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5월 19일 저녁 윤미향 의원은 이 할머니가 머무는 대구의 한 호텔로 찾아와 10분가량 머물렀다. 당시 윤 의원은 이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A씨로부터 이 할머니 숙소 정보 유출에 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철통 보안 속에 관리되던 이 할머니 숙소 정보가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이 할머니의 숙소에는 박씨와 곽씨, 몇 명의 시민모임 활동가 이외에는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한다. 윤 의원과 정의연 측이 사태를 마무리하고자 회유할 수도 있다고 보고 출입을 철저하게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숙소 정보가 외부로 유출돼 윤 의원이 찾아오기까지 하자, 이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누가 내 숙소를 알려준 것이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당시 기자는 이 내용을 취재해 5월 25일 기사(“누가 윤미향 측에?” 이용수 할머니 숙소정보 유출 논란’)를 보도했다. 온라인에서 조회수 6만 회, 댓글 150여개가 달렸다. 당시 이 할머니 주변 사람들은 이 할머니와 오래 알고 지냈지만,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C씨를 의심하고 있었다. 

    A씨에 따르면 C씨와 이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 방향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A씨는 “C씨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위안부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 할머니의 견해인 것처럼 말해 이 할머니가 C씨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해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이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 통신사는 이 할머니 주변 사람의 말을 인용해 이 할머니가 평소 오른팔 상태가 좋지 않아 한방 치료를 받아왔고, 윤 의원의 ‘돌발 방문’ 이후 가슴 통증까지 생겼다고 보도했다. 오른팔에 침 시술을 받았으나, 건강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고도 했다. 

    기자는 바로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박씨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만큼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1차 기자회견 이후 살이 많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에게 검사라도 받아보라 권했지만, 할머니는 남의 이목을 끄는 걸 원치 않는다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고 전했다. 대신 이 할머니는 측근들에게 “당장은 몸을 추스르는 것보다 생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주변인들은 이 할머니에 대해 “흥이 많고 활동적”이라고 평했다. 가수 이미자의 노래 ‘여자의 일생’을 즐겨 불렀으며 포항 죽도시장에서 회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흥 많고 활동적인 스타일…‘여자의 일생’ 즐겨 불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5월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5월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자는 대구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5월 25일로 예정된 2차 기자회견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당초 예정됐던 기자회견 장소는 처음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연 대구 남구의 한 찻집이었다. 이곳은 2차 기자회견 당일 오전 7시부터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오가 넘어서는 취재진이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국내 언론사는 물론이고 일본 주요 매체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다수의 유튜버도 취재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이 찻집은 이 할머니의 단골집으로, 찻집 사장은 이 할머니는 물론 곽씨와도 친분이 깊다. 

    오후가 되자 기자회견 장소가 바뀌었다. 찻집에서는 많은 취재진을 한꺼번에 수용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서 대표는 “할머니가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면서 “장소가 너무 협소해 안전상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장소를 대구 수성구 수성호텔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다시 한번 장소가 바뀌었다. 결국 기자회견은 예상보다 40분 늦어진 2시 40분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개최됐다. 기자는 회견장 앞쪽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그 덕에 이 할머니를 근접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이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소문대로 1차 기자회견 때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지고 기력이 쇠한 모습이었다. 이 할머니는 박씨 등 주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나 단상에 올랐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물과 함께 액상용 감기약도 마셨다.

    30년 만에 문제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하지만 막상 회견이 시작되자 할머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흔둘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성량이었다. 하루 전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할 힘도 없다”고 한 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날 이 할머니는 1차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정의연 측의 잘못을 강조했다. “정의연과 윤 의원을 용서할 수 없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사건들을 언급할 때면 시간, 장소, 관계자들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밝혔다. 윤 의원이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졌다”고 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이날 이 할머니에게 ‘이제야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바른말을 하니까, 정대협(정의연 전신)과 윤미향이 나한테 제대로 얘기도 안 해주고 전부 다 감췄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니 수요집회를 그만두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1년 전부터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제야 말하기로 결심했다”고 답했다. 

    기자회견 후 이 할머니는 단골 찻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1시간가량 휴식을 취한 뒤 숙소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는 박씨와의 전화통화에서 “할머니가 취재진과 카메라 세례에 긴장한 나머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해 아쉬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기자의 기억은 다르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면서도 불필요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는, 강단 있는 이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튿날,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을 두고 배후설이 제기됐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 할머니의 배후에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가 있다고 주장한 것. 김씨는 “지금까지 할머니가 얘기한 것과 최 대표의 주장이 비슷하다”며 “할머니가 굉장히 뜬금없는 얘기를 하셨는데 여기서부터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할머니와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 배후?

    김씨가 언급한 최 대표는 이 할머니가 윤 의원의 일본군 위안부 성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1차 기자회견을 주선한 인물이다. 최씨가 속한 가자평화인권당은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을 수호하고자 만든 진보 성향 정당이다. 최 대표는 4·15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에 소수 정당 몫 공천을 신청했다가 후보 검증 과정에서 탈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민주당이 자신을 공천에서 배제한 이유가 윤 당선자 때문이라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들어 윤 의원은 5월 13일 김씨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해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공천에서 배제된 최 대표가 앙심을 갖고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도운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김씨 주장에 대해 서혁수 대표는 “최근 할머니와 최용상 대표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기자회견 핵심 내용에) 최 대표의 의도가 반영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복수의 관계자는 이 할머니가 3월 말부터 기자회견을 준비해 왔고, 최 대표는 1차 기자회견 때 기자들을 모아주는 역할만 맡았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기자에게도 “할머니 스스로 기자회견을 기획하고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며 “할머니는 성격이 대담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분이다. 누군가 옆에서 부추긴다고 해서 떠밀려 기자회견을 할 만큼 어수룩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할머니가 ‘기자회견 배후설’ ‘기자회견 사주설’이 또다시 제기된 데 대해 불쾌해하며 크게 화를 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배후설’을 제기하는 김어준 씨의 주장과 달리,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최 대표는 2차 기자회견에는 관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자회견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내용의 ‘신동아’ 기사(2020년 5월 26일자 ‘[단독] 김어준 ‘배후설’에 “李할머니 불쾌해하며 크게 화내”’)는 온라인에서 조회수 45만 회, 댓글 5600여 개를 기록하며 누리꾼의 주목을 받았다.

    2차 기자회견문 작성 과정 전말

    그즈음 일제강점기 피해자 관련 단체 대표로 활동 중인 D씨로부터 “할머니가 1차 기자회견 전까지, 두 달 가까이 폭로 결심을 번복하며 고민해 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할머니가 윤 의원에 대한 기부금 유용 의혹을 폭로하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는 얘기였다. D씨는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곽씨와 박씨 등과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D씨는 “3월 말 할머니가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며 “나를 비롯한 일제강점기 피해자 관련 단체장들과 최용상 대표가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돕기로 하고, 최 대표가 기자들을 직접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취소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1차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이런 일이 3~4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D씨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차 기자회견을 열게 된 것인데, 김어준이 배후설을 내놓으면서 할머니를 모욕하고 있다. 자기 진영에 불리하다 싶으면 배후설을 꺼내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아흔이 넘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5월 27일 눈에 띄는 기사가 나왔다. 한 통신사는 D씨의 말을 인용해 “2차 기자회견 전날 밤(5월 24일) 7~8명이 모여 회견문을 공동으로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회견문 작성 전문가’도 지인 중 한 명으로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보도가 사실로 굳어질 무렵 어렵사리 수양딸 곽씨와 연락이 닿았다. 곽씨는 “김어준이 제기한 ‘기자회견 배후설’ 의혹을 해소하고, 일부 언론의 보도로 근거 없이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며 ‘신동아’의 전화인터뷰에 응했다. 곽씨에 따르면 기자회견문 작성 과정 전말은 이렇다. 

    5월 24일 아침 이 할머니가 박씨에게 답답하다며 대구를 벗어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곽씨는 그날 서울에 볼일이 있어 혼자 자동차를 몰고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했고, 두 사람은 이 할머니의 남동생이 거주하는 경기 수원시로 향했다. 볼일을 본 뒤 곽씨는 그날 오후 이 할머니, 박씨와 합류했다. 이 할머니가 시간이 늦었으니 서울에서 하룻밤 묵고 가자고 해서 서울 종로구청 인근 S호텔로 이동했다. 정확한 시간이 기억나지 않지만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고 한다. 당시 호텔 방을 2개 잡았는데, 방 한 곳에서 이 할머니와 곽씨가 묵었고, 나머지 방은 박씨와 지인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호텔에 모인 지인은 곽씨와 박씨, 서울에 머물던 이 할머니의 일대기를 찍는 다큐멘터리 작가, 그리고 조계사 소속 진관 스님이었다.

    의원 임기 시작 10시간 앞두고 나타난 尹

    이날 할머니는 호텔 방에서 곽씨에게 “기자회견문을 작성해 보라”고 일렀다. 이 할머니는 시민모임 측에서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곽씨가 읽어보니 첫 대목부터 ‘윤미향’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2차 기자회견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핵심 요지만 추려서 정리하기로 했다. 이 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곽씨가 받아 적은 뒤 이를 이 할머니한테 다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여러 차례 확인을 받았다고 한다. 곽씨가 내용을 추가하거나 문장을 고쳐 쓰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7~8명이 모여 회견문을 공동으로 작성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닌 셈이다. ‘신동아’는 이 내용을 5월 27일자 기사(‘[단독] 李할머니 수양딸 “내 신상 공개한 사람들 고소하겠다…합의·선처 없다”’)로 보도했다. 조회수가 4만 회를 기록하고, 댓글은 250여 개가 달렸다. 

    그사이 윤 의원이 2012년 이 할머니의 국회의원 출마 의사를 만류하는 정황이 담긴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5월 27일 CBS노컷뉴스에 따르면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가 2012년 3월 8일 통화하면서 나눈 대화였다. 그러나 박씨는 “당시 어머니가 윤 의원과 통화를 녹취한 일도 녹취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준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당사자 동의나 허락 없이 어머니와 윤 당선자의 통화를 제3자가 녹음하거나 녹화했다면 명백한 불법 행위다”라고도 했다. 이러한 내용을 보도한 ‘신동아’ 기사는(2020년 5월 28일자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과 통화, 녹취하거나 녹음파일 준 적 없다”’) 조회수 27만 회, 댓글 1500여 개를 기록했다. 

    5월 28일 오후 6시, 10일째 잠행을 이어가던 윤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자도 이튿날(5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으로 향했다. 오후 2시 윤 의원은 검은색 재킷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채 보좌진과 함께 등장했다. 윤 의원은 “그동안 저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일을 믿고 맡겨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상처와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히면서도 의원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회의원 임기 시작을 불과 10시간 앞두고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의 전화 끊지 않은 부동산중개인

    윤미향 의원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 기간에 불거진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미향 의원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 기간에 불거진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 의원은 기자회견 내내 이 할머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기자회견문 전문을 통틀어 윤 의원은 이 할머니에 대해 단 세 차례만 언급했다. 기자회견문에 이 할머니에 대한 공식 사과는 없었고,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윤 의원은 기자회견 내내 땀을 많이 흘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이 다가가자 윤 의원은 “질문을 해도 좋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기자가 윤 의원에게 물었다. “21대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가 뭡니까.” 윤 의원은 “오늘 (기자회견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이때쯤이면 제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씨는 “윤미향이 국민들께 사과를 드리면서도 어머니(이 할머니)께는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박씨는 “(윤 당선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으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한 기부금 유용 의혹에 대한 윤 의원의 소명에 대해 박씨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검찰이 밝혀야 할 일”이라고 했다. 

    기자는 윤 의원의 기자회견 이후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힐링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안성 쉼터)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이미 기자들이 안성 쉼터를 취재하면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를 벌이고 난 뒤라 새로운 내용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인터넷 ‘구글’ 검색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안성 쉼터 1층 거실 인테리어와 흡사해 보이는 사진이 올라온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했다. 유심히 살펴보니 한 부동산중개사무소가 매물을 소개하려고 2019년 11월 28일 올린 게시물이었다. 1층 현관문과 테라스를 찍은 다른 사진을 보니 안성 쉼터가 확실했다. 곧바로 부동산중개인 E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부동산 소장님이시죠. 월간 ‘신동아’ 기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기자 목소리를 듣자 중개인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윤미향 사태,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앞서 언론은 정의연이 안성 쉼터 부지와 건물을 7억5000만 원을 주고 산 것을 두고 ‘고가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성 쉼터는 800㎡(242평) 부지의 2층 건물(195.98㎡·59평)이다. 기자는 E씨가 정의연으로부터 안성 쉼터 매각을 의뢰받은 시기와 가격 등을 확인하고자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자 E씨는 “2019년 6월경 한경희 사무총장이 쉼터를 매각하고 싶다며 직접 연락해 왔다. 7억5000만 원에 물건을 샀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높은 가격에 샀느냐. 그런 물건은 못 판다’고 했더니 ‘몰랐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E씨는 “안성 지역 부동산 업계에 안성 쉼터가 매물로 나왔다고 알려진 시기는 언제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쉼터가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는 그 이전에는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기자가 재차 “2013년 당시 안성 쉼터 매입 적정가는 얼마인가”라고 묻자 E씨는 “4억 원 정도. 아무리 가격을 높게 잡아도 4억 원 초반대가 적정가”라고 답했다. 이어 “7억5000만 원에 그 물건을 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정의연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산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의연이 직접 매각을 의뢰한 중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기사로서 더욱 가치가 있었다. 

    이 내용은 ‘신동아’ 기사 ‘윤미향이 ‘안성 쉼터’ 매각 의뢰한 중개인 “7억5000만 원 말도 안 돼…매입 적정가는 4억 초반”(2020년 6월 4일자·2020년 7월호)을 통해 보도됐다. 해당 기사는 조회수 133만 회, 댓글은 7400개를 기록하며 누리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 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마포 쉼터) 소장 손모 씨가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죽음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정의연과 윤 의원을 둘러싼 회계 부정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미향’ 사태 40여 일,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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