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안철수인터뷰➀] 文정권은 할 줄 아는 게 ‘과거 파헤치기’밖에 없나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7-01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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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인터뷰를 7월1일부터 4일까지 매일 오후 2시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기사는 그 첫 번째입니다.

    [허문명이 만난 사람]
    ●코로나 대처에 리더 역량 발휘보다 포퓰리즘 더 극성
    ●코로나는 문명 전환 계기, 文정부 기준도 없이 허덕허덕
    ●식량무기화 극복 위해 ‘공장형 농업’ 도입해야
    ●지금이야말로 ‘욕먹는 개혁’을 할 수 있는 적기
    ●높은 지지율 정권 유지에만 쓰는 건 권력 사유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조영철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조영철 기자]

    한낮의 폭염으로 뜨겁던 날, 국민의당 당사를 찾았습니다. 서울 여의도 작은 빌딩 한 개 층을 빌려 쓰고 있는 당사는 작고 조용했습니다. 오전 10시, 최고위원 회의를 마친 안철수 대표가 인터뷰 장소로 예정된 회의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책 한 권을 선물했습니다.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가 제목입니다. 올해 1월 정계 복귀를 선언한 직후 출간한 책입니다. 지난해 유럽에 머물면서 느낀 단상과 경험을 담았다고 합니다. 안쪽 표지에 이름과 날짜를 적은 필체는 담백하고 정갈했습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올해 1월 출간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조영철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올해 1월 출간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조영철 기자]

    “필체가 좋다”는 말에 “아유, 악필인데요” 멋쩍게 웃습니다. 얼굴까지 살짝 빨개지는 모습에서 거친 정치판에서 만나기 힘든, 한마디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가 테이블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때때로 파안대소를 포함해 시종일관 웃는 표정으로 모든 질문에 대해 ‘예, 예’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한번 시작한 말은 중간에 끝내는 법이 없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내 할 말은 한다’ ‘누가 뭐래도 내 길은 간다’는 집요함과 고집이 느껴졌습니다. 

    그가 책을 건네며 “제가 쓴 열네 번째 책입니다”라고 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전문 집필가도 그렇게 다작하기 쉽지 않은데 의사, 교수, 벤처기업인, 국회의원, 대선까지 출마한 정치인이 언제 그렇게 많은 책을 썼나 하는 생각에 말이지요. 이어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인데 에너지를 너무 분산시킨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문 저술인도 14권 쓰기는 힘듭니다. 

    “뭐랄까, 폭이 넓은 편입니다. 처음 쓴 책은 컴퓨터 바이러스 관련이었고, 프로그래밍 책도 있고, 경영학 교수였을 때 쓴 경영학 책도 있어요. 칼럼집도 있고요. 널뛰기가 심하죠. 참, 마라톤 책도 썼네요.” 

    -책 쓰는 일이 익숙한가요. 

    “힘은 많이 드는데 ‘제일’ 보람 있는 일입니다. 제게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머릿속이 마치 책상 같아집니다. 처음엔 깨끗하던 공간이 공부하면 할수록 책이 쌓이고 메모가 여기저기 나붙지요. 책상이 복잡하고 어지러워질 때 즈음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서 발췌하고 다시 책꽂이에 넣고 메모도 정리하면 공간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지요. 남는 공간은 새로 쓰는 공간이 됩니다. 책 쓰는 일은 무엇보다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책의 주된 내용은 현장 경험입니다. 이번에도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받은 자료와 저의 경험을 갖고만 썼습니다.” 

    -책을 쓰는 목적이 생각 정리 차원인가요.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시행착오를 줄여주려는 목적이 더 큽니다.” 

    -주로 언제 쓰나요. 

    “한권 쓰는데 보통 석 달씩 걸려요. 아침 시간이 효율이 높습니다. 새벽 5시에 시작하는데 머리도 맑고 잡념도 없습니다. (책을 집어 들더니) 이 책 마지막 구절은 일주일 고민한 겁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떠오른 구절들입니다.” 

    -한번 읽어 주시죠. 

    그가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는 모습이 낭송회 나온 학생처럼 진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한다면 그 문제는 풀리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사회는 그 방향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 미래는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가능성이며 희망이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만든다.’ 

    그가 책을 덮으며 쑥스러운 듯 웃습니다. 어색함을 줄여주고 싶어서 그에게 말을 길게 건넸습니다.

    “文정부 허덕허덕”

    -당신을 만나고 싶었던 건 많은 국민이 갈망하지만 새로운 정치 리더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기자 이전에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과학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의사와 벤처기업인이라는 이력이 어쩌면 국민이 원하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원할까요.” 

    문득 그의 표정에 허탈감이 스쳤습니다. 에너지 가득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습니다. 정치와 관련해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처음부터 분위기를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금방 잦아들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문명의 전환까지 이어질까요. 어떻게 보세요.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전과 똑같은 사회생활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지속가능한 형태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을 최종 목표로 둔다면 거기에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도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전환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매일매일 허덕허덕합니다. 미래를 고민해야 미래가 열립니다. ‘과거 파헤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주제만 갖고 계속 이야기한다면 의도적인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이 그거 밖에 없어서라고 하더군요. 의학적으로만 보면, 치료제와 백신이 없었던 스페인 독감(1918년 발생해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은 사라지는 데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코로나19는 언제쯤 끝날까요. 

    “집단면역 이야기도 있긴 한데, 인구의 최소 60%가 항체를 갖게 되면 전파 속도가 느려진다는 거죠, 관건은 백신인데 보통은 동물실험부터 사람에게 적용되는 안전성, 효능 검증까지 최소 5년 정도 걸립니다. 이번엔 획기적으로 절차를 단축시켜 개발까지 향후 1년 정도를 예상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위해 한 달이라도 더 단축시키려고 한다는 말도 있더군요. 어쩌면 조금 빨라질 수도 있겠지요. 내년 초나 중반?”

    “포퓰리즘 극성”

    그가 동의를 구하는 듯 눈을 맞춘 뒤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백신이 나왔다고 해도 끝난 건 아니죠. 78억 명이 모두 맞아야 하는데 누가 먼저 접종할지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백신이 나온다 해도 내가 맞을 때가지는 6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왜 영화 ‘컨테이젼’ 보면 나오잖아요. ‘뽑기’로 당첨됐는데 1년 지나야 기회가 오고, 그 전에 걸려서 죽기도 하잖아요. 실제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갈 길이 멉니다. 지금 형태의 재택교육, 재택근무가 지속가능한 형태는 아니잖아요. 어떻게 지속가능한 형태를 찾을지 사회적 에너지가 총동원돼야 하는데 우리 정치는 뒤돌아보고 싸우기만 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도 바뀔 것 같지 않나요. 

    “처음 바이러스가 확산할 때 스트레스 테스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 테스트요? 

    “각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의 실체가 드러나는 거죠. 방역 시스템은 물론 의료 자원에서부터 마스크 생산 능력까지. 문제 해결을 못하는 리더들의 민낯이 드러나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포퓰리즘이 더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국가 간 실력 차이가 완전히 드러날 거예요. 우리가 방역을 잘했다고 하지만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정말 지금 필요한 건 각 분야 실력자들을 한데 모아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이를 제도화해 미래를 대비하는 겁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판단에 따라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당신의 지난 이력이 새로운 시대와 잘 맞을 것도 같은데요. 

    그는 이 질문에 답 없이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비대면이 확산된다면 정치도 비대면화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악수라는 오랜 관습도 주먹 부딪히기로 바뀌었습니다. 불과 넉 달 만에 새로운 문화가 생겼어요. 해외 출장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가 진행될 겁니다. 교육도 많이 바뀔 것이고요. 어떤 비즈니스가 흥하고 망할지 살펴보면 재미있는 아이템이 많아요.” 

    -어떤 비즈니스가 뜰까요. 

    “가정 간편식 시장이 뜨잖아요. 제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사는데 거기가 베드타운이어서 상업가가 잘 발달돼 있지 않습니다. 집 주변 상가나 슈퍼가 활성화하고 있는 게 달라진 모습인 것 같아요,” 

    비대면 사회의 정치와 비즈니스 변화에 대해 그만의 독특한 시각에서 나오는 답변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것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정부가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 열어줘야”

    -일각에서는 농업이 유망산업으로 뜬다고도 하는데요, 

    “농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많이 걱정되기도 하구요. 수년 전부터 정부가 에너지 장기수급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식량장기수급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식량자급률이 꼴찌인데 무조건 해외에서 싼 곡물만 들여와 그렇게 된 거죠. 지금 세계 인구가 78억 명인데 2030년만 되도 100억 명을 넘어섭니다. 지구온난화 등 기상변화로 인해 농업대국들의 생산량이 급감하면 당장 내년, 아니 올해라도 식량 무기화가 현실화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최대 피해국이 대한민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건데….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면 공장형 농업을 당장 도입해야 하는데 농민들 반대가 심하지요. 정부가 나서야 할 지점이 그곳이에요. 이른바 ‘타다 금지법’ 논란에서 보듯 민간에서 새로운 영역이 열리고 그것이 세계적 트렌드라면 정부는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열어주되 피해가 우려되는 기존 산업 종사자들을 향해서는 욕을 먹더라도 설득하면서 그 분들이 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특히 요즘처럼 정부와 여당을 향한 높은 지지율은 그 자체가 국가로서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욕먹는 개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 그 적기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정권 유지하는 데만 에너지를 쓰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국가의 소중한 자산을 사유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 유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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