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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재미학’ 강의 2

재미없는 대한민국 사내들의 5가지 키워드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 안마시술소, 독수리 5형제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가경영학 entebrust@naver.com

재미없는 대한민국 사내들의 5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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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대한민국 사내들의 5가지 키워드

중년 남성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달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은 과연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존재일까.

생각해보라.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가슴’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이해하는 ‘가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똑같다고 도대체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근거 없어 보이는 ‘상호주관성’의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바로 어머니의 가슴에서부터다. 어머니와 피부를 맞대고 정서를 교환하는 행위로부터 인간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과 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신념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소통이 어려워질수록 인간은 불안해진다. 이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극히 원초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완벽했던 정서의 소통 경험에 대한 기억이 큰 가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기가 자라나면, 어머니 이외의 사람들과 또 다른 정서공유의 소통 경험을 하게 된다. 놀이다. 놀이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경험했던 의사소통의 원형적 경험이 확대되는 과정이다. 이를 사회화라고 한다. 놀이에 참여하는 이들은 동일한 성질의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된다. 재미다. 놀이에서 경험되는 ‘재미’라고 하는 심리적 경험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경험했던 상호주관성이 확대된 형태다. 결국 나와 같은 철없는 중년들이 김혜수의 가슴에 열광하는 것은 소통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이다.

왜 죽어라 뛰는가

소통부재의 불안에 시달리며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삶에 지친 한국의 중년들에게 최근 나타난 이상현상이 있다. 마라톤이다. 몇 년 전부터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사람들로 미어진다. 대부분 40, 50대 중년들이다. 대개 건강을 위해 뛴다고 한다. 그러나 왜 하필 마라톤인가. 군대에서 10km 구보를 해본 남자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42.195km를 안 쉬고 달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죽어라 하고 달린다.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면 절대 적자 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전국에서 고통을 사서 겪겠다는 사내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들의 마라톤 완주 횟수는 1년에 10~20회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봉주 선수와 같은 전문 마라토너의 1년간 완주 횟수는 3~5회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번의 마라톤 완주는 엄청난 체력 소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중년들은 죽어라 하고 뛴다.

잘못하면 생명까지 위협받는 이 고단한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 달리는 이도 많다. 내가 궁금한 것은 ‘느닷없는’ 마라톤 열풍이다.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하필 그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세상과 더는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선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이들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자신과 소통하는 행위를 철학에서는 자기반성(self-reflection)이라 한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듯 자신과 마주 보며 스스로 이야기하는 행위가 자기반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자신과 마주하며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내 진정한 존재가 회복될 수는 없다. 소통행위의 부재로 야기된 불안은 소통의 회복으로만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달린다. 이것이 사는 게 도무지 재미없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나타나는 두 번째 현상, 즉 ‘자학적 존재 확인’이다.

세 번째 현상은 ‘폭탄주’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마라톤은 그 자체로 해결책은 될 수 없으나, 그래도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진지한 노력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마라톤에 비해 폭탄주는 아주 악질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하지만 폭탄주는 문제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주 심각한 퇴행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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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명지대 교수·여가경영학 entebru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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