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파묵칼레로 가는 길에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창밖으로 마치 한국의 농촌 같은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나지막한 산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작은 밭들과 한적해 보이는 농가들이 이곳이 먼 이국임을 잠시 잊게 해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닮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터키인들이 유난히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터키 사람 가운데 일부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런 친밀감이 생긴 데에는 지형적인 공통점도 한 이유가 됐을지 모르겠다.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생활관습이나 심성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는 우리 역사책에도 ‘돌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정도로 꽤 친숙한 나라다. 편안한 마음으로 점점 파묵칼레에 다가갈 무렵 눈부시게 하얀 파묵칼레의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목화의 성
차에서 내려 식당을 찾다가 한국말로 메뉴를 붙여놓은 곳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라면, 볶음밥 같은 간단한 한국 음식이 있는데 그중 볶음밥을 주문했다. 훌륭한 식사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순전히 한글 메뉴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서자 금방 흰 산이 나타난다. 신기루처럼 보이는 하얀 산인데 터키어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란 뜻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오른쪽 산비탈에 있는데 산 아래에 큰 호수가 있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래로 물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벤치에 앉으니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산비탈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찌 보면 눈 덮인 설산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기할 점은 저 산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산 입구 매표소에서 조금 올라가자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흰 바위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주위를 보니 어떤 사람들은 미리 슬리퍼를 신고 와서 들고 가기도 한다. 파묵칼레는 온천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평균 35℃의 물이 땅에서 솟아 흘러내린다. 미네랄이 풍부한 이 온천을 즐기러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리면서 바위를 깎아 마치 계단식 논이나 풀장처럼 보이는 독특한 산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산의 흰색은 온천수의 석회 성분이 바위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덮은 결과다. 넓은 풀장 같은 곳에 물이 가득했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부드러운 진흙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다리를 덮는다. 새하얗게 깎여 나간 바위들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대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2 돌로 포장된 거리를 대리석 기둥과 돌조각들이 호위하고 있다.
3 산 정상에서 뜨거운 물이 도랑을 타고 콸콸 흘러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