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서가에 꽂힌 한 권의 책 | 희망을 눈뜨게 하라

절망 딛고 새로운 길 연 한국 신협 운동 선구자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6-1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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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협중앙회 지음, 동아일보사, 500쪽, 1만8000원

    신협중앙회 지음, 동아일보사, 500쪽, 1만8000원

    ‘신협중앙회’라는 저자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이 책을 외면하지 않으면 좋겠다. ‘희망을 눈뜨게 하라’를 읽은 뒤 처음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신협중앙회가 한국 신용협동조합(신협)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펴냈다. 일반적으로 이런 책은 재미가 좀 덜하기 마련이다. 단언컨대 ‘희망을 눈뜨게 하라’는 다르다. 책을 펼치면 독자는 곧장 한국인이 피폐한 삶을 살아가던 1950년대 어느 날로 순간 이동하게 된다. 

    저자가 묘사한 당시 ‘나라꼴’은 말이 아니다. 구한말부터 반복된 외세 침략과 일제 강점, 6·25 전란을 잇달아 겪은 사람들은 극한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현대사’에 따르면 1950년대 말 한국 총수입의 6분의 5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무상 원조였다. 산업이랄 게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렸다. 식구 가운데 한 명만 아파도 집안 전체가 무너지는 절대 빈곤. 살아남자면 구걸에 나서거나 고리대(高利貸)에 의지해야 했다. 

    그 시절 은행은 가난한 사람이 발조차 들이기 힘든 일종의 성채였다. 입성이 허술하면 입구에서부터 퇴짜 맞기 일쑤였다. 은행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을 노린 고리대금업자들은 막대한 이자를 챙기며 서민 삶을 파멸시켰다. 큰돈을 융통할 대안으로 많은 사람이 사용한 계(契) 역시 문제를 일으키기는 마찬가지였다. 계주는 곧잘 곗돈을 떼먹고 달아났다. 친척이나 친구에게 배신당한 피해자는 가난에 더해 심적 고통까지 짊어져야 했다. 사회 전체 신뢰가 바닥을 쳤다.
    바로 그 시절,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1900~1993) 수녀가 신협 운동을 시작했다. 서민이 적은 액수라도 마음 놓고 저축하고, 필요할 때는 적정한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목표였다. 당시 가브리엘라 수녀가 소개한 신협 개념은 이렇다. 

    “서로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끼리 푼돈을 계속 저축해 필요할 때 싼 이자로 빌려 쓰는 협동 조직.” 



    가브리엘라 수녀를 비롯해 장대익(1923~2008) 신부, 강정렬 (1923~2009) 박사 등 한국 신협운동의 선구자들은 이 정신을 세상 곳곳에 널리 알렸다. 그 노력은 불신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고, 신협은 이 땅에 빠른 속도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960년 5월 1일, 부산에서 조합원 27명 출자금 3400환 규모의 ‘성가신협’이 문을 연 게 시작이었다. 이후 60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아시아 1위의 신협 강국이 됐다. 공동체 신뢰가 회복되고 ‘자조’와 ‘자립’이라는 신협 정신이 전국 각지에서 구현되게 됐다. ‘희망을 눈뜨게 하라’에는 그 과정이 선각자들의 삶을 통해 생생히 기록돼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신협운동 초기 아리랑을 개사해 만들었다는 신협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청청하늘엔 별들이 빛나고 우리 모임에는 희망이 빛나네. 우리 서로 도우면 하늘도 돕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손에 손잡고 넘는 희망의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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