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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광기(狂氣)의 사회에 동참하는가

영화 ‘크루서블’ & 연극 ‘시련’[황승경의 Into the Arte]

  •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왜 우리는 광기(狂氣)의 사회에 동참하는가

  • ● 1692년 실화, 1953년 극본. 1996년 영화로 환생
    ● 틈새만 보이면 자행되는 극단의 실체, 마녀사냥
    ● 타인의 존엄을 짓밟고 얻는 것은 무엇인가
    ● 1953년에 부활한 세일럼 재판, 그리고 메카시
    ● 아서 밀러와 먼로, 作行一致에 대하여
연극 ‘시련’의 한 장면(위).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국립극단 제공,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연극 ‘시련’의 한 장면(위).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국립극단 제공,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인간의 역사에서 이성이 마비된 광기(狂氣)의 사회는 늘 존재했다.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속옷만 입고 거리 행진을 하는 임금을 보고도 누구나 섣불리 나설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거장 아서 밀러(1915~2005) 극본의 연극 ‘시련’(원제는 crucible)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크루서블’은 이처럼 부지불식간 나의 신념도 광기의 사회에 동참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시대가 변해도 공연되는 연극 ‘시련’과 꾸준히 관람되는 영화 ‘크루서블’을 통해 우리는 그 물음의 해답을 찾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집단적 패닉

‘크루서블’의 무대는 17세기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빌리지(현재의 댄버스)라는 작은 마을이다. 아서 밀러는 1692년 이곳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을 다룬다. 극작가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의한 창작물이 아니라,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희곡이다.

1630년대 세워진 세일럼 빌리지는 매사추세츠의 대표 항구도시이던 세일럼 근교의 작은 농촌이었는데, 1752년 이후 독립된 행정지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래서 당시 실제 재판은 세일럼에서 있었고, 재판소를 비롯한 당시의 모든 마녀재판 기록은 세일럼시(市)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아서 밀러의 희곡과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17세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60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영국의 왕좌에 앉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는 식민지 건설을 위해 본격적으로 탐험가들을 신대륙으로 보낸다. 이즈음,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Pocahontas)’에 등장하는 탐험가 존 스미스는 1614년 미국 동부 지역에 도착해 뉴잉글랜드라고 명명한다.



미국으로 날아온 ‘마녀사냥’ 광풍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이후 1620년 영국 성공회에 반대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 중 일부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에 첫발을 내딛고 정착하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추위와 기아, 전염병으로 정착민 절반 이상이 죽어갔지만 살아남은 자들을 살린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물고기 ‘대구’였다. 1640년대부터 뉴잉글랜드 매사추세츠는 40만 마리의 대구를 유럽으로 수출하며 경제 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지역민들의 신앙심은 나날이 깊어져 갔다. 이 지역 정착민들은 도시가 형성될 때마다 도시 중심부에 가장 먼저 교회를 세울 정도로 종교와 삶을 일치시켰다.

12세기 프랑스에서 불기 시작한 마녀재판이라는 피바람은 15세기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1431년 프랑스의 19세 잔다르크는 이단과 반역이라는 죄목으로 마녀 취급을 받아 화형당했고, 1536년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불린도 근친상간과 불륜이라는 죄목으로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 여성들은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허위자백을 하거나 교묘한 유도 심문에 걸려들어 속수무책 마녀가 돼야 했다. 16세기에 극에 달한 유럽의 마녀재판 피바람은 이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그 광풍은 미국으로 날아든다.

온갖 박해와 탄압을 피해 겨우 미지의 땅에 정착한 청교도인들은 타종교에는 지극히 배타적이었다. 그들은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율법을 따르지 않는 신자들에게는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1692년 세일럼 빌리지에서 일어난 마녀사냥 기록은 이렇다.

“1월의 어느 날, 부모가 인디언에게 살해돼 삼촌인 목사 패리스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아비가일이 목사의 딸 베티와 헛소리를 하며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2월이 되도록 증상이 지속되자 마을 의사는 ‘이들의 병은 이 마을에 스며든 마녀들의 농간’이라고 진단한다. 패리스 목사는 마녀들을 발본색원하려고 주술적인 방법도 마다치 않는다. 이윽고 두 소녀는 서인도제도 출신의 하녀인 티투바를 마녀로 지목한다. 모진 고문을 당하던 티투바는 무고한 다른 두 여성의 이름을 댄다. 설상가상 다른 소녀들도 같은 증세로 허언에 발작 증세를 보이자 마을에서는 대대적인 마녀 색출 사냥이 시작된다. 그해 5월부터 9월까지 185명이 체포돼 31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 중 19명(여자 13명, 남자 6명)이 교수대에서 처형되고, 5명은 옥중에서 사망하고 1명은 고문 중 압사했다.”

아비가일과 베스 등 이상증세를 보이는 소녀들이 마녀로 지목하는 인물들은 모두 재판을 받아야 했다. 소녀들은 모범적인 청교도 부인들까지 마녀로 지목하면서 파장은 뉴잉글랜드 전체로 일파만파 퍼진다. 인근 하버드대를 중심으로 종교의 권위에 의심을 품는 여론이 형성되자 매사추세츠 총독은 기존 재판부를 해산하고 새로운 재판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다시 재판을 시작하자 기소된 대부분의 여성 대부분은 무혐의로 풀려나고, 피바람 광풍으로 이미 죽은 25명의 원혼에 관해서는 모두들 입을 닫는다. 희생자들은 역사 속에 묻히고 만다.

그로부터 5년 뒤, 문제의 재판부에서 보조 판사를 했던 새뮤얼 시월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7명의 재판부 중 유일하게 양심고백을 했지만, 관련된 다른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천수를 누렸다.

150여 년이 흐른 후,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재판부 중 한 명이었던 자신의 고조부 존 호손(1614~1717)의 죄를 참회한다. 그리고 청교도사회의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상을 묘사한 소설 ‘주홍글씨(1850)’와 ‘일곱 박공의 집(1851)’에 투영했다. 특히 ‘일곱 박공의 집’은 탐욕에 눈이 멀어 무고한 땅주인을 마녀재판에 회부해 사형시키는 판사가 종국에는 자멸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호손이 선조에 대한 죄의식에서 나온 일종의 참회록이었다. 호손은 이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영문 성인 호손(Hathorne)에 ‘w’를 추가(Hawthorne)해 개명하기도 했다.

마녀재판은 미국 세일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세일럼의 마녀재판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재판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재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따라서 세일럼의 재판 기록은 당시를 가늠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녀사냥 도시’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지만, 오늘날 많은 연구자와 관광객들은 세일럼의 마녀재판 기록을 보려고 세일럼을 찾고 있다.

연극 ‘시련’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연극 ‘시련’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위)과 포스터.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위)과 포스터.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1953년에 부활한 세일럼 재판, 그리고 메카시

1953년 호손 이후 한 세기 뒤에는 아서 밀러가 세일럼의 마녀재판을 예술계에 회자시켰다. 아서 밀러는 4년 전인 1949년에는 자본주의의 허상과 아메리칸드림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극작가로서 그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아서 밀러는 당시 미국을 휩쓸던 메카시 열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50년 2월 위스콘신주 상원위원인 조셉 메카시는 난데없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205명의 리스트를 들먹이며 반공(反共) 선동을 했고, 1949년 8월 예상보다 빨리 소련의 핵실험이 성공하자 미국 내 여론은 뒤숭숭해졌다. 뒤이어 발발한 6·25 전쟁과 소련에 핵 비밀을 넘겼다는 로젠버그 부부 간첩사건은 여론의 불에 기름을 부었다. ‘타도 공산당’ 깃발이 미 전역을 강타했다. 비미(非美)활동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완장을 찬 메카시는 사회에 비판적인 여지만 보이면 청문회로 소환해 망신을 주거나 스파이라는 족쇄를 채워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연극 ‘시련’의 장면들과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아래). [국립극단 제공,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연극 ‘시련’의 장면들과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아래). [국립극단 제공,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대공황의 여파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중반, 미국 공산당 당원은 10만 명에 달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아서 밀러는 당시에 공산당에 가입했다. 물론 이후 탈당했지만 과거 이력 탓에 마구잡이 공산당원 색출 작업 탓에 피소되면서 그는 마녀재판을 떠올렸다. 아서 밀러는 250년 전 세일럼 마녀재판 기록에서 실존 인물이던 존 프록터라는 인물에 주목했다. 결국 한 남자를 통해 미쳐가는 세상을 고발하고 인간에 내재된 추악한 본성을 풍자하는 희곡 ‘크루서블’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아서 밀러는 실제 재판 기록에서는 11세이던 아비가일(위노나 라이더 분)을 17세로 나이를 불려 존 프록터(다니엘 데이 루이스 준)와의 불륜관계를 새롭게 설정한다. 사랑하던 존 프록터가 정숙한 아내 엘리자베스(조안 알렌)에게로 돌아가자 질투에 불탄 아비가일은 마침 마을에 불어온 마녀재판을 복수에 이용한다. ‘질투의 화신’ 아비가일이 질투 때문에 아내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만들었다는 확신을 한 존 프록터는 다른 마을 소녀에게서 “아내 엘리자베스는 마녀가 아니다”라는 진술을 받는다. 이후 아비가일의 간계에 넘어간 마을 소녀는 생각이 바뀌게 되고, 존 프록터는 아비가일의 반격으로 “악마와 거래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다. 죄를 인정하면 목숨만을 살려준다는 재판부의 선처에 엘리자베스는 남편에게 눈물겨운 간청을 하고, 존 프록터는 결국 허위자백서를 쓰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재판정에서 “내 이름을 지킨다”라고 절규하며 허위자백서를 찢는다.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영화 ‘크루서블’ 스틸컷.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제공]

아서 밀러와 몬로, 作行一致에 대하여

희곡은 소설처럼 직접 독자를 만나지 못한다. 연극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크루서블’은 절대적인 순응을 강요당하는 피해자들의 시련을 나열해 감정을 격화시키는 선동 작품이 아니다. ‘크루서블’이 간직한 내면의 울림을 느껴야 한다.

1956년, 아서 밀러는 메카시즘이라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준 톱스타 매릴린 먼로와 결혼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손가락질에도 두 사람은 ‘백치미와 지성미의 결합’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여러 논란 끝에 5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이혼 도장을 찍는다. 그다음 해, 먼로는 사망한다. 이후 밀러는 이미 고인이 된 먼로에 대해 “극도로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라는 등의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많은 관객에게 인간의 존엄에 대한 불씨를 남긴 밀러였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작행일치(作行一致)’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크로서블 #시련 #아서밀러 #황승경 #신동아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1년 9월호

황승경 공연 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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