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 살처분에 나선 공무원들. 고글과 캡을 벗는 등 살처분 규정을 어기고 있다.
2003년 12월 충북 음성의 닭 농장에서 처음 시작된 AI(인플루엔자 A형, H5N1)는 지난 3월까지 모두 26건. 지난 4월 이후 한 달 보름간의 발생건수가 지난 4년 발생건수를 훌쩍 넘어섰고, 겨울에 발생해 3월 이전에 진정되던 예전 사례와 달리 올해는 초여름 더위가 시작된 4월에 시작해 5월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엔 ‘국내 발생 AI가 저병원성 북방형(중국 칭하이형)에서 고병원성에다 사망률도 높은 남방형(인도네시아, 베트남형)으로 변이됐다’는 설도 나온다. AI에 유독 강한 오리가 폐사한 점을 들어 더욱 강력한 AI 변종 바이러스가 해외에서 유입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AI가 도시 한복판 동물원과 재래시장에서 발생하자 정부는 그제서야 총리실 산하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서울시는 야외 사육 가금류 1만5000여 마리를 살처분하는 한편 도심에서의 닭, 오리 사육, 그리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반입을 금지했다. 이런 조치는 1997년 AI 인체감염이 처음 발생한 홍콩의 경우와 비슷하다. 17명의 환자가 발생해 그중 6명이 사망한 홍콩 AI의 확산 원인은 통제불능의 재래시장 닭 유통구조였다. 당시 홍콩 당국은 도심의 닭 150만수를 죄다 살처분했다. 한국은 5월14일 현재까지 오리와 닭 700만마리를 살처분했지만 AI 확산을 막지 못했다.
인체감염 없었다? 무증상 감염자는?
지난 2월20일 기준으로 AI(H5N1)는 14개국에서 362명의 사람을 감염시켜 그 중 228명을 사망케 했다. 사망률은 63%.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5월9일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에 닥칠 광우병보다 발등에 떨어진 AI가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그만큼 인체감염과 인체 간 감염(대유행, 팬데믹·pandemic)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실 AI가 이처럼 전국적으로 창궐하는 상황에서, 또 오리를 폐사시킬 정도의 AI가 판치는 현실에서 인체감염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5월7일 질병관리본부는 전북지역에서 살처분에 참가(4월18, 19일)했다가 폐렴증세를 보여 AI 의심환자로 분류된 육군 모 부대 소속 조모(22) 상병에 대해 최종적으로 AI 감염 음성 판정을 내렸다. 실험실적 검사 결과와 함께 발표된 이날 보도자료의 제목은 ‘현재까지 AI 인체감염은 없어…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도록 당부’였으며 조 상병의 병명은 ‘세균성 폐렴’으로 확진됐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체감염은 아직 없으니 불안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듣기에 따라선 “인체감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불안조장세력’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인체감염은 없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비록 무증상 감염자이지만 2003년부터 2006년까지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10명이나 된다. 무증상 감염자는 환자는 아니지만 감염자인 것은 맞다. AI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투해 증식했지만 질병을 일으키진 못했거나 감염자가 이미 바이러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돼 몸 안에 강력한 항체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 침투한 바이러스가 힘이 약한 저병원성 바이러스였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AI 환자(확진환자)가 아닌 것은 AI 감염으로 인한 질병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병관리본부의 보도자료 제목은 ‘감염 확진환자는 없어…’라고 했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