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버림과 채움의 미학

  • 박노윤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인사조직

    입력2008-12-08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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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창조는 버리는 학습과 채우는 학습에 의하여 일어난다. 다만 이들 학습 사이에는 순서가 있다. 채우는 학습이 일어난 후에 버리는 학습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학습이 일어난 후에 채우는 학습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자기 창조의 핵심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버리는 학습의 시작은 자신에 대한 문제 발견에서 비롯된다. 채우는 학습은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 -본문 중에서
    버림과 채움의 미학

    <B>자기 창조 조직 </B><BR>이홍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자기 창조 조직’은 관세청 사례를 중심으로 자기 창조의 원리와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자기 창조의 첫 단계는 자기 창조의 진행 과정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야 변화를 위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한 뒤 조직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의 연구 대상인 관세청은 변화하기 힘든 정부 조직이다. 그럼에도 관세청은 일류 기업 못지않은 변화를 이뤄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조직은 많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둔 조직은 드물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개혁 주체가 돼야 할 집단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과 부분적인 효과밖에 거두지 못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동원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세청의 자기 창조 활동의 성과는 타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에도 모범이 될 만하다.

    이 책은 자기 창조 활동의 유발과 유지 측면 모두를 충실히 다루고 있다. 기존의 문헌 중 조직 변화의 유지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룬 연구는 흔치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실무자들에게 더욱 유용하게 읽힐 것이라 생각한다.

    ▼ Abstract

    자기 창조는 기존 루틴(routine)을 버리고 새로운 루틴을 채우는 현상이다. 여기서 루틴이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행동 패턴을 뜻한다. 따라서 자기 창조는 버리는 학습과 채우는 학습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일어난다. 자기 창조는 버리는 것과 채우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루틴을 변경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버림과 채움의 방향성은 개념 변경을 통해 얻게 되며, 개념 변경은 조직의 새로운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비전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최고경영층이 선정한 1차집단에 맡겨진다. 1차집단은 우선 조직의 정신모형을 변경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정신모형을 변경하는 것은 최고의사결정층에서 시작된다. 자기 창조를 위한 1차집단 활동의 성패는 성공 체험의 경험 여부에 달려 있다. 1차집단 활동에서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게 되고, 따라서 자기 창조 활동도 어려워진다.

    1차집단 활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2차집단으로의 수직적 공(共)진화(co-evollution)가 필요하다. 공진화란 원래 생태학에서 진화를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다. 진화는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말하는데, 공진화는 여기서 한 집단의 변화가 다른 집단의 변화를 가져옴을 뜻한다.

    1차집단에 이어 2차집단에서 공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객관화된 설득 증거, 최고의사결정층의 촉매 활동, 인지적 소통을 통해 2차집단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공감 기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경망 구축, 자극체계 구축, 자원 집중 등 자기 창조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기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직적 공진화 장치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다 해도 2차집단에서 실질적인 공명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2차집단이 스스로 움직이며 다른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수평적 공진화라고 한다. 수평적 공진화 현상이 온전히 일어나야 자기 창조가 가속화되며 이것을 문화화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수평적 공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진화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인식할 수 있는 성공 체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베스트 프랙티스 대회를 통해 건전한 경쟁과 공유학습이 이뤄지고, 궁극적으로 구성원 간 신뢰를 형성해 2차집단에 대한 공명이 구성원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1차집단의 활동이 2차집단으로 확산될 때 자기 창조 활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

    자기 창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시적 불안정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미시적 불안정성은 실무계층의 구성원들에 의해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상태를 뜻한다. 이것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지 않으면 자기 창조는 일회성 변화로 그치게 되고, 조직은 죽은 나무로 전락하게 된다.

    미시적 불안정성은 구성원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비대칭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형성된다. 또한 미시적 불안정성을 조직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자극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 책은 지속적인 자기 창조가 이뤄지는 상태를 메타루틴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메타루틴이 조직 차원에서 체계화돼야 반복적인 자기 창조를 위한 거시적 자극 기제가 생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세청의 메타루틴은 성과 갭 인식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동기유발체계 구축, 공정한 평가체계 구축, 피로감에 대한 관리체계를 사용했다. 자기 창조는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행위로, 이 변화 행위가 목적한 방향으로 정렬돼야 효과적으로 자기 창조를 할 수 있다. 자기 창조의 핵심은 자기를 변화시켜가는 과정과 이를 반복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버림과 채움의 미학

    2005년 12월 서울세관 대강당에서 열린 ‘관세청 6시그마 선포식’에서 성윤갑 당시 관세청장이 관세청기를 흔들며 ‘핵심인재 양성으로 관세행정 무결점화’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 About the author

    이홍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한 뒤 KAIST에서 경영과학 분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지식과 창의성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기업을 위한 지식경영’ ‘지식점프’ ‘지식과 창의성 그리고 뇌’ 등의 저서가 있다.

    지식경영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사람인 이홍 교수는 기업 현장을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 기업 현장을 잘 알아야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논문과 저서에는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그는 사례가 주는 풍부한 의미를 해석하고 이것을 이론화하는 것이 학자의 임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도 지식경영 분야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이 분야의 이론을 사례를 곁들여 알기 쉽게 풀어쓰고자 한다.

    ▼ Impact of the book

    일반 사람들이 공공기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아마도 매스컴을 통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비리 등의 문제점이 종종 노출됐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독자는 ‘자기 창조 조직’을 읽고 공공기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일반 독자에게는 저자가 제시한 지식 창조의 원리와 방법보다 관세청의 혁신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그러나 기업들은 관세청의 변화 자체보다는 그 원리와 방법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것 같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홍 교수가 저술한 ‘지식점프’를 읽고 살아남기 위해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최고경영자들은 다시 직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조만간 자신의 회사를 자기 창조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 Impression of the book

    이홍 교수의 연구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 책을 접하면서 또 한 번 가진 의문이다. 그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썼는지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그 내용도 언제나 새롭다. 지금까지 그가 쓴 책들이 그랬듯 이번 책 또한 현장 속에 있는 듯한 생동감을 줬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이고 한국적 상황에 적합한 이론을 개발하려는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관세청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본 원리와 과정을 발견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넓은 자기 창조 스펙트럼 중에서 조직 차원의 자기 창조로 연구범위를 좁혔고, 현상을 원리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이론과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피상적인 관찰이 아니라 관세청의 자기 창조 활동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결과를 이론과 연결시켰다. 이것은 한국 경영학 발전에 고무적인 연구 방법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전문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쉽게 새로운 개념을 설명해나갔다. 자기 창조가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어려운 활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활동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일반 독자들은 새로운 개념이 낯설었겠지만 이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강호동과 최홍기의 예와 맞닥뜨렸을 때는 친근감도 느꼈다. 하지만 경영학 관련 용어가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파트별로 주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제시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통합모형이 제시됐다면 조직 변화의 전체 흐름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어 각각의 내용이 변화 과정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고, 무엇과 연결되는 것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Tips for further study

    버림과 채움의 미학
    지식 경영과 관련된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노나카와 타게우치의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의 저서 ‘지식창조기업’(The Knowledge Creating Company, 장은영 옮김, 세종서적·사진)은 지식 창조 이론을 담은 대표적인 지식 경영 서적이다. 일본 기업의 지식 창조 사례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와 함께 레오나르드 바턴의 ‘지식의 원천’(Wellsprings of Knowledge)도 추천한다. 서구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지식 창조 이론을 제시한 책이다. 이홍 교수의 ‘자기 창조 조직’과 함께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지식 창조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상황에 잘 적용될 수 있는 보다 실제적인 지식 창조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이홍 교수가 저술한 다른 두 권의 책도 도움이 된다. ‘한국 기업을 위한 지식경영’(이홍 지음, 명경사)은 현대자동차가 지식을 축적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지식점프’(이홍 지음, 삼성경제연구소)는 여러 한국 기업이 지식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분석해 다른 기업이 지침으로 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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