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도전으로 점철된 여성 CEO 스토리

  •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입력2008-12-0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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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과 비슷하다. 새로운 운동, 새로운 식이요법, 새로운 골프 스윙, 새로운 일. 처음에는 무척 어렵다. 부자연스럽고 노력이 많이 요구된다. 때로는 포기하고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해나가면, 시간이 흐르면서 새 습관이 점점 수월해지다가 결국 몸에 배게 된다. 나는 변화에 익숙했다. 변화를 겪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화에 당면하면 기회와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도전으로 점철된 여성                  CEO 스토리

    <b>칼리 피오리나·힘든 선택들</b><br>칼리 피오리나 지음 공경희 옮김 해냄

    휴렛패커드(HP) 전 최고경영자(CEO) 칼리 피오리나는 미국 대통령후보 중 누구를 지지했을까. 변화 지향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매케인을 지지했다. ‘성장을 통한 파이 키우기’ 경제 정책을 주장하는 매케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경영 철학 역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그녀는 성장을 위해 HP에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도입했다. 물론 결과는 아직 미지수다. 불명예스럽게 해고를 당했고 그녀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칼리 피오리나·힘든 선택들’은 세계적인 여성 경영자인 칼리 피오리나가 도전했던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다. 도전과 성공, 실패와 좌절, 그리고 용기와 두려움을 통해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되는 값진 과정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글로벌 인재를 꿈꾸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피오리나는 비록 HP에서 갑자기 해고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지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6년 연속 ‘세계 최고의 여성 CEO’로 선정했을 만큼 글로벌 인재를 꿈꾸는 여성들의 살아 있는 모델이었다. 그는 철학을 공부한 인문학도였지만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디딘 이후 팀장, 임원을 거쳐 마침내 HP의 CEO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Abstract

    피오리나는 지금까지의 성취는 부모가 준 선물 덕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품 있는 중산층 가정이었다. 전업주부인 어머니와 학자인 아버지, 그리고 세 자녀가 있었다. 부모님은 엄격하고 자제심이 강하며, 요구가 많고 도덕적으로 판단했다. 두 분은 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내가 딸이라는 사실은 기대 수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지만, 나중에서야 드문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순종적이고 근면하며 활달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끼는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학계에서 위상을 높여가면서 가족은 자주 이사했다. 나는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에서 초등학교를, 캘리포니아와 영국에서 중학교를, 아프리카와 캘리포니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렇게 이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 대해 많이 배웠다. 변화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나는 높은 기대치의 힘을 경험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면 많이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재능을 선물 받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부모님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물론 피오리나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사생활 측면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다. 첫 남편과 결별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녀는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평생의 친구이자 역할모델이 된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도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의 애환과 좌절을 겪었다. 1982년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나는 팀원 각자와 만남을 가졌다. 누구도 이 팀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고위층에서는 우리 고객이 잠재성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들을 묶어서 팀을 만들었다.…내 직속 상관은 고객들을 방문해서, 새로 온 세일즈 관리자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칼리랑 인사하시지요. 우리 얼굴 마담입니다.’ 그 회의가 끝나자 상사에게 말했다. ‘다시는 저한테 그러지 마세요.’ 그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꾸했다. ‘알았다고. 미안. 말해 봐. 혹시 치어 리더였나?’ 나는 조직 내부에 얼마나 편견이 잔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전으로 점철된 여성                  CEO 스토리

    2002년 11월 칼리 피오리나 당시 HP 회장(오른쪽)이 한국을 방문,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과 만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1999년은 피오리나에게 역사적인 해였다. 여러 굵직한 회사를 다니면서 경력을 쌓아온 그녀에게 황금 같은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HP 신임 사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그녀는 HP의 첫 외부 출신 CEO였다. 엔지니어를 숭배하고, 남성 중심 문화인 HP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HP의 속은 겉과 달리 많은 문제가 있었다.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기업 내부에서 어떤 변화를 이뤄야 할지 알고 싶다면 고객에게 물어보면 된다. 제너럴 모터스(GM)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한 사람은 말했다. ‘칼리, 당신 회사 직원들은 업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난 누구한테 연락을 취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미리 알아서 움직이기보다는 요구에 대응하는 식이고, 우리가 너무 느려서 같이 비즈니스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HP는 고객에 주력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변혁은 우리가 어떻게 고객들에게 서비스하느냐로 시작해야 했다.”

    변화는 큰 아이디어에서 소소한 세부사항까지 모두 해당되었다. 꿈쩍도 하지 않던 엄청난 덩치의 조직이 피오리나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결실은 2000년 9월 출시된 유닉스 서버 ‘수퍼돔’이었다. HP 직원들은 ‘수퍼돔’을 출시할 때 처음으로 경계를 허문 협동 작업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새로운 작업 방식은 차츰 습관이 됐다. 피오리나가 몰고 온 변화 바람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컴팩 인수 건이었다. 피오리나는 그 과정을 ‘최악의 더러운 싸움’이라고 묘사했다. 2001년 9월4일, HP는 컴팩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요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했고 언론과 애널리스트들도 합병에 부정적이었다. 내부 직원들도 반대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결국 특별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졌다. 피오리나는 주총 직후 “적지만 충분한 격차를 두고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피오리나가 원하는 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피오리나에게 부메랑이 됐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갑작스러운 해고는 이때부터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2월6일 일요일. 나는 집에서 월요일에 있을 이사회 회의를 준비했다. 최근 이사회의 움직임이 미심쩍었다. 월요일, 역학관계는 분명했다. 나를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문건을 읽었고, 질문을 예상했지만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고, 방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회의에 다시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고 회의장에 가자, 이사 둘을 제외한 전원이 떠난 상태였다. 나는 해고당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되새길 시간이 필요했고, 열기를 가라앉혀야 했다. 나 자신과 회사의 품위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피오리나는 2005년의 실적을 예로 들며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2005년 결과를 보면 HP가 정말 변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수도 했지만, 변화를 이루어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와 내가 믿는 것에 내주었다. 나는 힘든 선택을 했고, 그 결과를 안고 살아갈 수 있었다. 잃어버린 사람들과 목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내 영혼을 잃었다는 슬픔은 없었다….”

    ▼ About the author

    칼리 피오리나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HP의 CEO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이사회 의장을 겸직했고, HP에 부임하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AT&T와 루슨트 테크놀로지에서 일하면서 고위관리자 자리에 올랐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중세역사와 철학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MIT의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레볼루션 헬스케어 그룹, 타이완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을 비롯해 세계적인 기업의 이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Impression of the book

    칼리 피오리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2006년 5월24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결국, 피오리나가 옳았다!’는 기사를 통해 그녀를 옹호했다. 문제가 많았던 HP의 체질을 개선시킨 변화 주도자라는 것이다. 반면 HP의 CEO로 있던 동안 그녀에 대한 내부 평가는 냉정하고 무섭다.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회사에 최악의 상황을 몰고 온 실패한 CEO였다는 주장이다.

    칼리 피오리나가 없었다면 HP가 더 성장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다만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칼리 피오리나가 말하고 싶었던 것, 즉 그러한 결정이 ‘매우 힘든 선택’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HP의 기업문화는 상호 배려와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시한다. 반면 피오리나는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녀 말대로 ‘힘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점이 해고의 한 요인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섭섭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빌과 데이브(HP의 창업주)는 한때 급진적이고 선구자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너무나 성급하게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그건 HP 방식이 아니다’라는 말로 제쳐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HP 방식’이라는 말이 변화를 막는 방패로 이용되고 있었다.”

    ‘성장’ ‘변화’ ‘파이 키우기’ 등 피오리나가 지향한 방향은 결과적으로 HP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규모와 전통을 믿지 않고 대대적인 혁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던 피오리나는 용기 있는 CEO임에는 틀림없다.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거대 기업의 CEO가 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걸어온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Tips for further study

    도전으로 점철된 여성                  CEO 스토리
    ‘칼리 피오리나 - 세계 최고의 여성 CEO’(조지 앤더스 지음, 이중순 옮김, 해냄·사진)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집단인 HP에서 어렵게 모셔간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성공 스토리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성공기까지 세세하게 그리는 데 반해 이 책은 제3자의 입장에서 군더더기를 빼고 철저히 그녀의 경영철학과 경영전략에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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