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수많은 논란 속에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화학적 거세법)’이 통과되었다.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논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여론에 떠밀린 졸속 입법이라는 비난은 정당한가.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안’이 급작스럽게 진행된 졸속행정의 산물이라는 비난에도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최근 불거진 어린이 성폭력 사건의 잔혹성에 경악한 국민 정서가 이 법률 입안에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박민식 의원이 이 법안을 국회에 상정한 것은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008년 9월의 일이다. 검사 출신의 박 의원이 헌법과 형법, 형사정책, 의학 전문가들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하고 여론조사의 과정을 거쳐 발의한 법안이 이제야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불과 2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당혹스러움’이었다. 법안 발의 이후 지금까지 법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법안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론에 떠밀려 가시적인 행정처리를 했다는 비난은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가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다. 그럼에도 국민은 이 법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내 아이가, 우리의 아이가 안전한 세상에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은 비단 아이를 가진 부모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범죄자 재범의 특수성
롤리타 콤플렉스. 어린아이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일컫는 이 단어는 자칫 무시무시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갖지 못한 질환자에게 무조건적인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단순한 범죄 성향을 넘어선 정신질환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으므로 처벌 이전에 그 원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법적 처벌의 목적은 ‘처벌’ 자체에 있다기보다 더 이상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예방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통과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 역시 범죄자의 처벌이 단순한 ‘처벌’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범사회적 인식에 기인한다.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범죄는 단순 범죄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범죄자 중 상당수는 비정상적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운 성도착증 환자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질환자에게 기존의 성범죄자가 받던 처벌은 의미가 없다. 죄의 대가는 치를지언정 비뚤어진 성충동을 억제할 만한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재범의 가능성은 커진다.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벌을 받았다 해도 자신의 충동을 억제할 방도는 여전히 묘연한 상태인 채로 살아가는 것이 이들 성도착증 환자의 현실이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범의 특수성은 초범임에도 순수한 초범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최소 15회 이상의 범행이 있은 후에야 신고가 접수되고, 신고 후에도 2~3차례 범행이 추가로 발생한 후에야 검거된다. 법적으론 ‘초범’이라 해도 아무런 의미를 둘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성범죄는 피해 아동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겨주는 범죄임에도 의사표현에 서툰 아동이 법적으로 유용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피해 아동의 치료가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만큼 범인 검거를 위한 조사와 현장검증 등의 조치가 취해지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범인을 알고서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바로 이런 특수성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은 이들 성도착 환자에게 적절한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을 가함으로써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심리치료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범을 방지하고 건전한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상습적 성폭력을 가한 범죄자에게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결정에 의해 치료감호 형식으로 화학적 거세와 심리치료 등 알려진 의학적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다. 치료감호소에서의 치료 기간은 최장 6개월을 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되어 있다.
검사는 화학적 거세 치료 청구를 공소 제기 없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 집행 역시 검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 화학적 거세 치료와 형이 병과(倂科)된 경우에는 우선 화학적 거세 치료를 집행하고, 화학적 거세 치료와 치료 감호가 병과된 경우에는 치료감호 중 화학적 거세 치료를 실시하도록 한다. 화학적 거세 치료의 내용과 실태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치료를 받은 자는 무기는 5년, 유기는 형기의 5분의 1이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될 수 있다. 단 화학적 거세 치료를 다시 받을 것에 동의할 때만 가석방 자격 심사가 진행된다. 화학적 거세 치료 대상자가 가석방되면 보호관찰이 시행되며 보호관찰기간에 화학적 거세 치료를 실시하게 된다. 이때 보호관찰의 규정은 형법과 치료감호법,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 준하며 피보호관찰자가 법안에 규정된 화학적 거세 치료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 등에 대한 사항을 위반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안은 앞으로 1년 후인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성범죄
성에 대해 유난히 보수적인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성범죄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강력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까지 적잖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최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성폭력범죄에 관한 법령 역시 조금씩 구체화되고 강화되어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0년간의 성범죄율은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였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1997년 7120건이던 성범죄 건수는 2007년 1만5325건으로 무려 2배 이상 증가했다. 물론 이는 범죄의 특수성 때문에 저조할 수밖에 없었던 신고율이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조금씩 높아진 탓도 있겠으나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의 건수는 증가한 반면 실형선고율은 오히려 낮아진 것만 보아도 단순히 신고건수의 증가를 염두에 두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행되어온 성범죄에 관한 처벌과 법적 제재의 실효성에 상당한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논란이 되었던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조항은 시행되고 있으나 전국의 청소년 성폭력범 신상정보 등록건수 703건 중 열람횟수가 고작 53회인 점만 보아도 현행 제도가 큰 실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졸속 입법처리
실제로 1994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래 2000년에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신설되었다. 2007년에는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1994년 이후 성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각종 특별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된 것이다.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은 통과되었지만 논란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법안 통과를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법안 시행에 찬성하는 이들조차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난의 핵심은 국회의 졸속 입법처리다. 발의 후 2년여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법안을 하루 만에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시킨 ‘졸속’ 입안이라는 데 있다. 앞으로 1년 후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법안임에도 검증된 바도, 그 실효성이 입증된 바도 없어 그저 보여주기식 법안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시행 전에 개정과 보완 과정을 거친다 해도 단순한 법안이 아닌 ‘의료행위’를 전제로 하는 법안인 만큼 1년이라는 시간 안에 학술적 검증을 거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 치료를 맡았던 연세대 의대 정신과 신의진 교수 역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다. 그는 전자발찌의 도입과 마찬가지로 얼렁뚱땅 법안부터 만들고 보는 주먹구구식의 법안 처리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신체에 가하는 시술인 만큼 그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심도 있는 연구과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이번 법안 통과에는 그 가장 중요한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인권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라면 그 효과를 전혀 장담할 수 없는데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가며 약물을 투여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성 범죄자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프로파일링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법과 제도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죠. 법 시행은 법무부가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법무부가 ‘화학적 거세’의 전문부서는 아니니까요.”
본인 동의 없이도 거세 가능
신 교수는 국가조직 전반은 물론 현장의 인력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뤘을 때만 가능한 사안이 기본적인 과학적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탁상공론에 빠져 있는 국가기관들이 최대한 빨리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법’은 단순히 간호사가 약물주사를 한 대 놓아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약물치료 이상으로 심리치료가 중요한 만큼 한 달에 한 번은 의사와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이때는 여자 의사보다 남자 의사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남성인 성범죄자들이 여자 정신과 의사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상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성범죄가 발생하면 여자 정신과 의사들은 피해 여성을, 남자 정신과 의사들은 범죄자의 상담과 치료를 전담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1년 안에 그만한 인력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제대로 된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단순한 법 시행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정신과협회 등이 제도적으로 공조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 따로, 예산 집행 따로, 관리 따로, 현장상황 따로…. 현장에 있다보면 법 시행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동성범죄 상담기구인 해바라기센터와 지속적으로 연계하며 현장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분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이 실적 위주의 게임에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려의 목소리는 또 있다. 7월8일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한국사회의 변화와 여성’ 정책 세미나에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성폭력의 실태, 원인 및 여성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대중의 법감정에 기초한 화학적 거세제도는 또 다른 국가폭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번 법안의 경우 본인의 동의 없이도 화학적 거세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는 법원의 선고와 별도로 약물을 투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중처벌에 해당할 수 있다. 반면 화학적 거세 제도를 시행하는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가해자의 인권을 고려해 징역형과 거세형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양 교수는 또한 비정상적인 성충동에 의해 저지르는 성폭행이라는 전제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왜곡된 성의식을 바로잡는 국가 차원의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두 가지 오해
도둑이 증가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대책을 세운다. 담벼락을 높이고, 방범장치를 설치하기도 하며, 방범을 강화한다. 국가는 제도적으로 절도범에 대한 형량을 늘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왜 갑자기 도둑이 늘어났는지 고민해보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흉년이 들어 먹고살기 어려워졌을 수도 있고, 의외의 문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 하물며 절도의 경우에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할진대 아동 성범죄의 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그 죄질이 몹시 나쁘고 피해자에게는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무시무시한 폭력임에도 처벌과 재발방지에 어려움이 몹시 커서 기존의 법적 잣대만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급증하는 범죄를 막아내기 힘들다.
박민식 의원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아동 성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슈화되기 전의 일이다. 검사 재직 당시 법조계 비리까지 속속들이 파헤치며 맹활약을 한 그였기에 초선의원답지 않은 ‘당돌한’ 법안 발의도 그다지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그는 이 법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가며 해외 사례를 모으고 전문가에게 용역을 의뢰했다. 개인이 해내기엔 분명 벅찬 일이었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꼭 제대로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무리를 했다.
물론 그가 제출한 법안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이번 법안 통과에 많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법안 자체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세간의 잘못된 인식이 법안에 대한 오해를 낳고 그 오해가 오해의 꼬리를 물고 있어 조금은 답답한 심정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소문난 잔치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그 누구보다 이 법안이 실효성을 갖추고 제대로 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법안을 발의한 박민식 의원은 “아동대상 성범죄는 다각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통과된 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쪽, 반대하는 쪽 모두에게서 법안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평소 인터넷 등을 통해 여론을 자주 살피는 터라 네티즌의 의견은 그가 의정을 운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가 발의한 법안을 찬성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 법안만 통과되면 아동 성범죄가 모조리 사라질 것처럼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고 한다. 과도한 기대와 맹신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제도와 법은 없기에 오히려 다양한 의견을 통해 이 법을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게 장기적으로 어린이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학적 거세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보완처분입니다. 위험성을 우려해서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죠. 물론 처벌이냐 아니냐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인권단체에서 제기하는 인권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인 편입니다. 도둑을 감옥에 가두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침해 아닙니까. 모든 범죄에 같은 유형의 처벌과 예방책을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동 대상 성범죄는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막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화학적 거세 역시 그 한 방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처음 그가 발의한 법안에는 범죄자의 동의가 필수 조건으로 전제됐다.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해낸 조치였으나 실제 통과된 법안에는 이 조항이 삭제됐다.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처벌처럼 국가로부터 내려지는 불이익 처분에는 기본권 제한이 필요악처럼 따라오게 마련이다. 박 의원 역시 불이익을 감수할 때는 언제나 인권침해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범죄자의 기본권 제한은 범죄를 예방하고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합의된 범위 내에서 행해진다. 물론 화학적 거세의 경우 기존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단순한 신체구속 수준을 넘어서는 신체적 억압이 이루어지므로 이를 여타의 처벌과 같은 수준의 것이라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든 범죄자에게 같은 잣대, 같은 형태의 대응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는 그에 적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이번 법안을 준비하면서 당혹스러웠던 또 다른 오해는 이 법안이 마치 성범죄자를 돌로 무자비하게 쳐서 생매장하는 듯한 구시대적 발상을 담고 있다는 시각이다. 어떠한 효과도 검증된 바 없는 무시무시한 법안을 함부로 준비해 가시적인 성과만 얻어내려 한다는 주장에는 맥이 풀릴 지경이다. 처음 제안했던 ‘화학적 거세법’이라는 용어 자체를 순화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으로 바꾼 것도 이러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된다.
“용어 자체에서 오는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외과적 거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성욕억제 치료법’입니다. 법안의 내용 또한 단순한 성욕억제 약물 투여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교육과 상담치료 등이 골자를 이룹니다. 과거의 성욕억제제는 여성호르몬을 투여해 남성을 여성화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화학적 거세는 그런 유치한 방식의 약물 사용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호르몬을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이러한 법안이 발의되거나 새로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올바른 비판은 발전을 위한 훌륭한 디딤돌이 되지만 덮어놓고 반대부터 하다가는 그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안일함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편의주의적 발상은 우리나라 사회 전체에 만연한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때로는 법원의 온정주의가 독이 되기도 한다. 초범이 결코 초범이 아닌 아동 성범죄사범에게 온정을 베푸는 법원 판결은 지금까지 아동 성범죄자의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그나마 40% 정도가 1~2년의 가벼운 실형을 선고받는 데 그치는 경악할 만한 상황을 연출했다. 아동 성범죄에 대해 법원은 심하게 관대했다.
물론 사법부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의 판결이 이러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성문화 의식을 꼽을 수 있다. 어린아이에게 가하는 성적 학대나 추행이 ‘귀여워서 한 행동’으로 인식되던 과거의 잘못된 성문화가 지금까지도 재판부의 온정주의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그릇된 장유유서(長幼有序) 의식도 한몫했다. 아이들에게 한 행동이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넘겨버리는 어른들의 무개념이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피해자가 지나치게 어린 나머지 의사 표현 부족으로 법에서 정한 피해자 진술의 기준에 부합하는 진술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판결에 크게 작용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피해자 대부분이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한다.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게 마련이지만 어린이에게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반복해서 진술을 요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해도 피해자가 받은 충격을 치유하기 위해 1차 진술만은 확보할 것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누가 봐도 범죄자임이 확실한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정황증거만으로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에 대해서는 기존의 범죄와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법부의 판결은 앞으로도 지금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동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 중에는 부모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빈민층이 꽤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해 당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500만~1000만원의 합의금에 합의를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 당사자가 합의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합의를 명목으로 어른들끼리 돈을 주고받은 것이죠. 이런 경우 합의라는 것 자체가 모순일진대 법원은 법 앞에 눈뜬장님이 되고 맙니다.”
아동 성폭력에 대한 법적 대안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예방과 재발 방지를 국가 제도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며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
아동 성폭력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임을 인식하고 경계의 날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소박한 행복조차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은 결코 만능열쇠가 될 수 없지만 비판적 지지를 통해 충분히 나은 방향으로 수정·보완될 수 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자발적 감시자가 되어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