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에도 50여 개국 수출
완성도 욕심 많은 감독의 전화위복
1~2년 개봉 연기가 완성도 높이는 데 기여
모두를 감동시킨 스페인산 제육볶음
김윤석은 와인, 조인성은 소주 체질
“류승완의 아내보다 딸이고 싶어라”
극장은 철통 방역 중, 하루 4회 이상 통소독
올해 하반기 스크린 기대작인 ‘모가디슈’와 ‘인질’을 제작한 강혜정 대표. [지호영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에도 50여 개국 수출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봉 일정을 미루는 영화가 속출하는 가운데 7월 28일 상영을 시작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 ‘모가디슈’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로는 처음 1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가장 먼저 200만 고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와중에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영화는 8월 6일 북미 시장과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해외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스릴 넘치는 액션과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절묘한 조화”(버라이어티), “영리하고 사려 깊은 영화”(마크 리뷰 무비스) 등 외신들의 찬사 속에서 전 세계 50여 개국에 판매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과 영화 촬영지인 모로코를 비롯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봉을 확정했다. 일본,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도 개봉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모가디슈’는 1991년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됐던 남북한 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류승완 감독이 영화적 재미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상상력을 가미하고, 김윤석·조인성·허준호·구교환 등 많은 배우가 탄탄한 연기력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촬영은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4개월 동안 모로코에서 진행됐다. 여기에 투입된 제작비는 총 250억 원에 달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여건을 만든 이는 류 감독의 아내이자 제작사 외유내강을 이끄는 강혜정 대표다. 강 대표는 충무로에서 탁월한 안목과 추진력을 겸비한 제작자로 정평이 나 있다. ‘베테랑’ ‘베를린’ ‘군함도’ 등 류 감독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엑시트’ ‘너의 결혼식’ ‘사바하’ 등 여러 작품을 흥행 궤도에 올려놓은 전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8월 18일 개봉된 필감성 감독의 데뷔작 ‘인질’도 외유내강이 제작했다. 황정민이 주연한 이 영화는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톱 배우가 납치되는 사건을 그린 액션스릴러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쫄지 않고 철통 방역으로 대응하며 두 영화를 연거푸 스크린에 띄운 강 대표를 ‘인질’ 언론 시사회 다음 날이자 ‘모가디슈’ 북미 개봉날인 8월 6일 만났다.
김윤석과 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모가디슈’(왼쪽)와 황정민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 ‘인질’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NEW 제공]
완성도 욕심 많은 감독의 전화위복
- 눈이 충혈됐다. 잠을 설친 것 같다.“잠을 잘 못 잔 지 꽤 됐다. 한두 시간마다 깨서 예매 사이트 검색하고 언제 잤는지 모르게 잠들었다가 또 깨기를 반복한다. 영화를 개봉한 후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갱년기 증상이라고 한다. ‘우리, 다 그래’라면서 지극히 정상이란다(웃음).”
- ‘모가디슈’에 이어 ‘인질’도 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영화를 본 소감이 어떤가.
“만감이 교차한다. ‘인질’ 촬영이 2019년 여름에 끝나 2년 만에 개봉하게 됐는데 그사이 필감성 감독과 조연을 한 배우 김재범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그분들에게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 필 감독은 십수 년 동안 데뷔를 준비하다 이번에 그 꿈을 이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봉이 늦어졌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2년 동안 후반작업에 공들인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 편집과 음악 믹싱 작업을 다양하게 시도하며 완성도를 높인 것이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영화 참 잘 만들 감독이 데뷔했다’는 말을 들어 기쁘다.”
- ‘모가디슈’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때 개봉돼 스코어에 대한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돼 당혹스러웠다. 올림픽까지 이슈가 되면서 개봉 첫날 스코어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였다. 다행히 좋은 평이 이어지며 관객이 끊이지 않아 감사한 마음뿐이다. 배구, 축구 빅 매치가 있는 날에도 12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지금은 장기 흥행으로 롱런할 작품이라는 평을 관객들에게 듣고 있다. 이번처럼 관객의 소중함을 절감한 적이 없다.”
- ‘모가디슈’ 관람 평을 살펴보니 완성도를 극찬한 이가 정말 많더라.
“류승완 감독이 완성도에 집착하는 데다 ‘모가디슈’가 CG 분량이 많아 후반작업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세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개봉을 미룬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1년 반 동안 후반작업에 몰두하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류 감독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모두를 감동시킨 스페인산 제육볶음
- 제작진과 배우들이 2019년 11월 모로코에 들어가서 지난해 2월에 나왔다. 4개월 동안 올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뭔가.“남의 나라에서 30년 전 사진 속 모습을 재현하는 미술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한국에서처럼 소품을 즉각 조달할 수 없었다. 세트 만드는 작업이 엄청난 일이었다. 차량도 너무 오래돼 시동이 꺼질까 조마조마했다. 촬영 협조가 안 되는 일도 많았다. 공항은 섭외가 전혀 안 돼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할리우드 수준의 장소 대여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어진 촬영 스케줄과 제작비를 지키는 것은 제작사에 매우 중요한 임무여서 그런 문제를 풀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가장 우려한 건 안전 문제였다. 차로 4시간 거리에 병원이 있었다.”
- 많은 외국인이 등장한다. 연기를 곧잘 하던데 모두 배우인가.
“세 명만 케냐에서 데려온 배우이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섭외한 일반인이다. 영어가 되는 흑인이 캐스팅 1순위였다. 모로코인 대부분이 중동계여서 흑인 찾기가 어려웠다. 액션스쿨을 만들어 연기를 가르치고 훈련해 가며 촬영했다. 반란군이 입성하는 몹신(대규모 군중 신)이 압권이다. 우리 스태프들이 일일이 연기를 가르치고 세트를 설치해 만든 장면이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까 완성된 장면을 보면서 울컥하더라.”
- 한국 식재료를 대량으로 가져갔다던데.
“영화 ‘베를린’을 찍을 때 매일 독일식 소시지와 빵, 감자를 ‘밥 먹듯’ 해서 식사 스트레스가 컸다. 그 일을 교훈 삼아 이번엔 한국에서 많은 식재료를 가져간 것이다.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모로코가 이슬람 국가여서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 스페인에서 돼지고기를 엄청 비싸게 공수해 와 제육볶음 파티를 하는 날은 축제 분위기였다.”
-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떠올린다면.
“감독의 지시를 다양한 언어로 출연자들에게 전달해야 해서 통역을 할 모로코인을 세 명 구했는데 모두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더욱 놀라운 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면서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익힌 점이다. 사자성어를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드라마로 말을 배워 한국말의 뉘앙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 촬영이 녹록지 않았음에도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로코를 그리워한다던데.
“숙소 앞이 지중해 바닷가였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아프리카의 겨울은 파카 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대신 광량이 일정하고 일출과 일몰 시간이 정확해 제작팀이 촬영을 준비하기가 수월했다. 배우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시간이 허락하면 일부는 서핑을 하거나 사하라사막에 다녀오기도 했다. 연출부나 미술팀은 다음 촬영을 위해 그럴 여유가 없었다.”
김윤석은 와인, 조인성은 소주 체질
- 배우들이 가족처럼 지냈다고 말하더라. 술자리에서 ‘사고’가 난 적은 없나.“반주 문화가 걱정스러웠는데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김윤석 씨는 와인을, 조인성 씨는 소주나 독주를 즐긴다. 주량이 센데도 절제를 잘하는 스타일이더라.”
- 모로코가 셧다운 조치에 들어가기 직전인 2월 초에 촬영이 끝났다. 주 52시간 근로 규정 때문에 촬영 일정이 빠듯했을 것 같다.
“그 때문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촬영하기가 어렵다. 장소를 미리 물색하고, 시간을 어떻게 쓸지도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 주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제작사나 연출자는 고통스럽지만 찍을 내용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합리적으로 촬영할 수 있다.”
- 류승완 감독은 철저히 준비하는 스타일인가.
“굉장히 합리적이다. 계획한 만큼 찍어 온다. 10개를 찍기로 해놓고 14개를 찍는 감독도 있는데 류 감독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모가디슈’도 76회차를 찍었다. 80회차 이하로 찍었다고 하면 다 놀란다. 최영환 촬영감독과 호흡이 잘 맞는다. 최 촬영감독은 류 감독이 원하는 그림 안에서 넣고 뺄 부분을 잘 안다. 영화가 그리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먼저 파악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에 해석력과 이해도가 뛰어나다. ‘인질’도 최영환 감독이 찍었다. 어떤 작품에서든 몸값 이상을 하는 촬영감독이다.”
‘인질’은 유덕화가 주연한 중국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를 리메이크한 범죄스릴러물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강 대표에 따르면 기획과 배우 캐스팅 단계에서 주연 황정민이 기여한 바가 크다. 영화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은 배우 오디션과 캐스팅도 감독과 함께 진행했을 정도다.
- ‘영화계의 미다스손’으로 불릴 만큼 작품 보는 안목이 남다르다는 평을 받는다. 제작을 결정하는 기준이 뭔가.
“시나리오가 재미있는지, 해볼 만한 이야기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독을 본다. 필감성 감독이 신인임에도 높이 평가한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 필 감독은 그만큼 열린 사고를 갖고 있기에 찍어 온 내용의 부족함을 후반작업으로 채울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감독은 프로듀서나 제작자나 배우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자기가 놓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류승완 감독이 그런 걸 잘한다. 감독으로서 오래가는 비결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류승완의 아내보다 딸이고 싶어라”
강혜정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어떤 제작자가 되고 싶은지가 선명해졌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 감독으로서 류승완을 평가한다면.
“나보다 프로듀싱 능력이 좋다. 편집이나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감각이 뛰어나다. 주어진 예산과 촬영 스케줄을 잘 지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제작자가 느끼는 압박 이상을 감독도 짊어져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 회사의 대표감독이 그런 마인드로 일하니 ‘외유내강이 예산과 일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한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거다. 류 감독이 회사에 한 명만 더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회사의 보석 같은 존재다.”
- 남편으로서는 어떤가.
“감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존경스럽지만 남편으로서 보면 많이 속상하다. 오로지 영화에만 관심이 있다. 그나마 즐기는 다른 것이 있다면 아이들과 옛날 ‘개콘(개그콘서트)’을 보며 낄낄거리는 게 다다. 건강을 챙기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 술은 안 하는데 담배를 즐긴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금단현상으로 어쩔 줄 모른다. 갑자기 끊기 어려우니 병원에서는 흡연량을 줄이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에게는 남편을 많이 칭찬한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아빠의 이런 면을 존경하고, 너희도 아빠에게 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 류 감독은 자녀에게 어떤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가.
“자기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류 감독은 하겠다고 한 건 반드시 한다.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노력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 하고 바로 인정한다. 아이들 앞에서 가부장적이지도 않다. 남편으로서 그런 점이 참 만족스럽다. 농담처럼 내가 ‘이 집의 딸이면 좋겠어’ ‘저 아버지의 딸이면 좋겠어’라고 말할 정도다. 훌륭한 가정을 만드는 데는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시그널로 있어주느냐에 따라 가정의 클래스가 달라진다. 남편으로서 그런 면이 참 만족스럽다.”
극장은 철통 방역 중, 하루 4회 이상 통소독
- 코로나19 사태로 OTT(Over The Top) 시장이 엄청 커졌다. 그쪽으로 진출할 계획이 있나.“넷플릿스 같은 OTT 채널이 늘어나 영화 콘텐츠의 판로가 넓어지고 소비하기가 편해진 것은 고무적이다. 지난해에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고 바로 OTT 시장에서 선보인 작품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OTT 시장 진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1~2년 동안 개봉을 연기해 완성도를 높인 ‘모가디슈’와 ‘인질’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기술시사회를 했을 때 아드레날린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2시간을 내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몰입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개봉하면서 ‘관객이 내주는 2시간을 절대 헛되게 만들지 않는 제작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것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자 선물이다.”
-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뭔가.
“영화산업에 대한 지원까지 바라지 않는다. 영화관이 방역을 철저히 하는 가성비 높은 문화 공간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적극 알려주면 좋겠다. 극장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음식물 반입도 안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좌석이 배치돼 있다.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관객이 한꺼번에 들고 빠지기 때문에 하루 4회 이상 통소독이 이뤄진다. 한국영화를 보며 관객들도 위로와 감동이라는 선물을 받아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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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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