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집하→회수…폐가전에서 찾는 자원순환의 길
파쇄기 거친 냉장고는 ‘두부 조각’…자석으로 고철 회수
금광석 1t에 금 5g, 폐휴대전화 1t은 400g 추출
판매업체에 연락, 주민센터 스티커 구입, KERC 수거
폐가전 무단 폐기? 대기오염·지구온난화 유발!
잘 버리기…환경오염·자원 낭비 막는 첫걸음
“내놓으신 분 2000원 스티커 붙여주세요.”
10월 13일 오전 9시 반 경기 용인 기흥구의 한 아파트 단지. 분리 배출 장소에 버려진 청소기엔 위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스티커를 붙이지 않은 채 배출된 폐가전제품은 수거해 가지 않는다. 스티커 미부착 폐가전제품은 대개는 그대로 방치될 때가 많아 단지 내 ‘애물단지’로 전락하곤 한다.
폐가전을 배출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 첫 번째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판매업체의 무상 수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새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기존에 쓰던 제품의 수거를 요청하면 된다. 소형 폐가전은 서비스센터에 방문해 폐기를 요청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공짜’다.
두 번째는 관할 읍면동 주민센터에 폐기물 배출 스티커를 구입해 붙여 내놓는 방법, 그리고 세 번째는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KERC)의 폐가전 무상방문수거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KERC는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부와 전자제품 생산기업, 지자체가 모여 결성한 조합이다. 폐가전 무상방문수거 서비스와 자원순환, 재활용 기술 개발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비영리법인. 인터넷이나 전화로 폐가전 방문 수거를 예약하면 조합 측에서 이를 무상으로 수거한다. 단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대형 가전은 하나라도 수거하지만, 전기밥솥이나 선풍기·약탕기 같은 소형 가전은 5개 이상이어야 한다.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KERC)은 폐가전제품 무상방문수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가전제품을 잘 버려야 하는 이유
하지만 이러한 배출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날 폐가전 수거를 위해 동행한 양정모 KERC 기획관리팀 과장은 “매일 배출하는 생활폐기물과 달리 가전제품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넘는 교체 주기를 갖는다. 그렇다 보니 폐가전을 어떻게 배출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민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가전제품엔 중금속이 함유돼 있는 만큼 부적절하게 배출된 폐가전을 매립·소각할 때는 대기오염과 공해병을 유발할 수 있다”며 “특히 냉장고, 에어컨 등에 포함된 냉매는 기후생태계변화유발물질로 무단 방출되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우려도 있다”고 강조했다.폐가전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한국은 ‘자원 빈국’으로 꼽힌다. 한국광물공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광물 수입의존도는 93%가 넘고, 금속광물의 경우 99%에 달한다. 원유가 나지 않는 만큼 에너지 수입의존도도 90%가 넘는다. 반면 가전제품의 회로와 부품엔 금, 은, 구리, 니켈, 리튬, 코발트 등의 귀금속과 희귀 광물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폐가전에서 이를 추출해 산업 연료로 재공급하는 ‘도시광산’ 사업은 자원 추출 효율성이 높다.
실제 금광석 1t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은 약 5g이지만, 같은 양의 폐휴대전화에서는 400g의 금을 추출할 수 있다. KERC가 폐가전 수거 및 재활용 사업으로 2000~2019년 얻은 경제적 효과는 약 8조7000억 원에 달한다. 연간 40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둔 셈이다. ‘애물단지’였던 폐가전이 귀중한 자원으로 탈바꿈한다. KERC의 자원순환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수거된 폐가전이 한데 모여 분류되기까지
이날 수거 작업은 오전 10시 무렵 시작됐다. 단지 내 분리 배출 장소에 놓인 냉장고가 수거 대상이었다. 수거 작업을 담당하는 류재천 차장은 “원래 가정을 방문해 직접 수거하는 게 원칙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비대면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며 “현관 앞이나 분리 배출 장소에 내놓으면 수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을 수거하는 것은 아니다. 빌트인 제품, 안마의자, 5개 미만의 소형 가전은 수거하지 않는다. 전자제품 이외의 폐기물도 마찬가지. 류 차장은 “음식물쓰레기, 폐가구 등의 폐기물을 함께 버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는데, 이런 폐기물은 관할 지자체에 문의해 배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수거한 가전제품은 상차를 거쳐 집하장으로 운반된다. 도착한 용인시 처인구의 집하장엔 용인시 각지에서 수거한 폐가전이 한데 모여 있었다. 집하된 가전은 냉장고, TV, 모니터, 세탁기 등 품목과 크기에 따라 분류된다. 같은 품목이라고 해도 세부 종류별로 다시 구분한다. 같은 모니터일지라도 LCD, LED, OLED 모니터로 나누는 식이다. 이처럼 품목을 자세히 분류하는 이유에 대해 양정모 과장은 “업체마다 처리 가능한 폐가전이 다르고, 크기와 구성 성분이 무엇인지에 따라 재활용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특히 에어컨 등 냉매가 포함된 가전은 처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하장에서 분류된 폐가전은 각자 처리 가능한 자원순환센터로 운반된다. 대형 제품을 처리하는 센터는 전국에 총 12곳, 중·소형 제품을 담당하는 센터는 40여 곳이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용인시의 ‘수도권자원순환센터’는 냉장고, 세탁기, TV, 기타 소형 폐가전 처리를 담당한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주의 사항에 대해 안내받은 뒤 향한 작업장엔 폐냉장고 처리 라인이 활발히 돌아가고 있었다. 처리 공정은 크게 전처리 공정과 후처리 공정으로 나뉜다. 전처리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린 냉장고의 전면과 후면에 각각 인력이 배치된다. 전면에 위치한 사람은 선반과 기판, 전선 등을 분리하고 후면에 위치한 사람은 냉매와 컴프레서를 떼어낸다. 이 중 냉매는 길쭉한 관을 통해 추출된 후 별도로 설치된 저장탱크로 회수된다.
수거된 가전제품(1)은 집하를 거친 후(2) 자원순환센터로 옮겨져 분해·파쇄(3)·선별(4)·회수(5) 등의 공정을 거친다. [홍중식 기자]
파쇄, 선별 거쳐 다시 자원으로
몸통만 남은 냉장고는 후처리 공정을 거친다. 먼저 파쇄기로 보내져 두 번의 파쇄 과정을 거친다. 견고해 보이는 냉장고도 거대한 톱니바퀴로 이뤄진 파쇄기 앞에서는 ‘두부 조각’ 같았다. 1차 파쇄에서 300mm 조각으로 으깨진 냉장고는 2차 파쇄를 통해 30mm 수준으로 더 잘게 부서진다. 다음은 성분별로 조각난 냉장고를 분리하는 선별 과정이다. 자력선별기를 통한 고철 회수, 우레탄선별기를 통한 우레탄 추출 등 각 선별기를 통해 고철, 우레탄, 플라스틱(PP, ABS), 구리, 알루미늄을 분리 추출한다. 이날 가동되진 않았지만 세탁기 처리 과정도 흡사하다. 전처리 공정에서 수작업을 통해 인버터, 모터, 전장품 등을 떼어내고 후처리 공정에서 파쇄 및 선별을 거쳐 플라스틱과 고철을 회수한다.작업장 한편의 폐휴대전화 처리 라인도 눈에 띄었다. 폐휴대전화는 본체와 배터리를 수작업으로 분리한 뒤 파쇄하는데, 본체에서는 주로 금·은·구리를 추출하고, 배터리에서는 리튬을 얻을 수 있다. 일체형 휴대전화는 분리가 불가능해 바로 파쇄 공정에 들어간다.
마지막 단계는 출고다. 작업장 외부의 출고장에는 파쇄된 휴대전화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양정모 과장은 “약 1만~1만1000개의 휴대전화를 모아 배출하는데, 약 3개월마다 한 번꼴로 한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소장하거나 재판매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수집이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 맞은편 출고장에는 냉장고·세탁기 등에서 추출된 고철, 알루미늄 등의 자원이 커다란 포대 수십 자루에 나뉘어 쌓여 있었다. 추출된 자원은 제련업체로 보내져 용융(고체가 열에 의해 액체가 되는 현상)된 후 재사용된다. 파쇄된 휴대전화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친다.
경기 용인시 ‘수도권자원순환센터’에 버려진 세탁기가 쌓여 있다. [홍중식 기자]
트렌드가 된 자원순환…시작은 잘 버리는 것
양정모 과장은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적 책임, 거버넌스) 경영에 집중하면서 재활용 자원이 주목받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자원순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이 앞다퉈 재활용 자원 사용을 선언하며 ESG 트렌드에 동참하고 있다. 기아는 최근 출시한 전기차 EV6에 대당 500mL 페트병 75개에 해당하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고, 신한카드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카드를 발급한다.이 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재활용 자원의 가격도 상승세다. 환경부에 따르면, 8월 압축 페트 가격은 kg당 319원으로 집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을 세척해 분쇄한 플레이크 가격도 kg당 548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올랐다. 금융정보업체 S&P 글로벌에 따르면 6월 페트 플레이크 가격이 새 페트 가격을 앞지르기도 했다.
폐가전 자원순환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세계 전자쓰레기 현황조사’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 버려진 전자 폐기물은 5360만t에 달한다. 이 중 17.4%만 수거·재활용됐다. 금·은·구리 등 낭비된 원재료 가치는 약 570억 달러(67조 6305억 원)에 달하고,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9800만 t에 이른다. 보고서는 또 배출된 전자 폐기물의 중금속과 유독물질이 발달장애, 생식기능 장애 등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원순환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올바른 자원순환은 잘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양정모 과장은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인 만큼 폐가전을 재활용하면 부족한 자원을 보충하면서도 환경오염도 방지할 수 있다”며 “전자제품이 다시 자원으로 순환되기 위해선 시민들이 올바르게 배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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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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