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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 SF] 차원이동자(The Mover) 10-2

아이히만 체포 작전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윤채근 SF] 차원이동자(The Mover) 10-2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편집자 주>
1
추격자가 히펠에게 육화한 건 크림힐트 작전 직전이었다. 숙주인 히펠은 원래 아돌프 아이히만에 육화된 이탈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중간 다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에바 브라운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히틀러를 만나본 추격자는 생각을 바꿨다. 정교하게 위장돼 있었지만 히틀러 내부엔 분명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게 만약 두더지라면 이탈자를 잡는 건 다음 문제였다. 

히틀러 주변에 거미줄을 치고 결정적 순간을 노리던 추격자는 에바 브라운 설득에 공을 들였다. 예술적 상상력이 풍부했던 에바는 자신의 오랜 연인이 악귀에 빙의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한때 순수한 예술가였던 히틀러를 애도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녀는 히펠을 통해 조직에 연결됐다. 

아이히만에 육화된 이탈자는 주로 베를린 외곽 반제 지역 지하 벙커에 머물며 유대인 최종 해결책 실행에 몰두해 있었다. 수많은 유대인이 수용소로 옮겨져 학살됐고 그건 아이히만의 무심한 펜대 위에서 결정되곤 했다. 친위대 소속 히펠은 여러 차례 그와 마주쳤지만 어느 선 이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히만은 사인 한 번으로 수만 명씩 살해하는 인물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다. 총통 이외 사람과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낯선 이와의 교제를 극도로 꺼린 그는 사무실의 고독한 서류 업무를 병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2
대위는 배꼽이 떨어져라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당신과 아이히만이 외계인이라고?” 



히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대위가 다시 물었다. 

“아이히만 속의 다른 외계인을 추격하고 있었다고? 지금 그런 말을 한 건가?” 

대위 쪽으로 의자를 조금 끌어당겨 앉은 히펠이 속삭였다. 

“대위가 믿건 말건 이건 사실이오. 난 저항 조직을 이용해 아이히만을 체포하려 했소. 당신들 미군은 믿을 수 없으니까. 실제로 나치 고위 장교를 다 놓치지 않았소?” 

“그거야 패전 상황이 혼란스러웠으니까. 아무튼 정리하자면 아이히만이 최근까지 포로수용소에 있었다는 건가?” 

“그렇소. 나치 장교 대부분이 일반 포로 속으로 숨어들었소. 얼굴이 알려졌거나 동료에 의해 밀고된 자들 말고는 결국 모두 탈출에 성공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대위가 외쳤다. 

“외계인 운운한 건 용서해 주지. 하지만 아이히만은 전범이야.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 행동을 했나? 소련 놈들과 연결된 건가?” 

“소련과는 무관하오. 다시 말하지만 난 아이히만이 아니라 그 안의 존재를 추격하고 있었소. 거의 잡을 뻔했지만 녀석이 조금 빨랐지.” 

대위가 미세한 웃음을 머금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이히만은 이미 놓쳤고…, 그리고 당신이 소련 스파이가 아니고 외계인이라면…, 왜 수용소에 남아 있다가 우리에게 발견됐지? 뭔가 할 일이 더 있었나?”
 
히펠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어 담배를 요구했다. 담뱃갑을 구겨 뒤쪽으로 집어던진 대위가 거칠게 말했다. 

“대답이나 하지? 지금 심각한 상황이야. 소령이 저항 조직 단원이었다는 건 인정하겠어. 하지만 세상엔 이중스파이가 널려 있지. 난 당신이 진짜 외계인이라 해도 관심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 공산주의자만 아니면 돼!” 

길게 한숨을 내쉰 히펠이 두 손을 깍지 끼며 대답했다. 

“수용소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자면, 아이히만은 다른 나치 장교처럼 이탈리아나 중동을 경유해 남미로 밀항할 거요. 히틀러가 그랬듯이.” 

“히틀러는 자살했어!” 

“자살하지 않았소. 그는 남미로 도주했고 친위 조직 역시 건재하오. 내가 왜 수용소에 남아 있었느냐고? 실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우리를?” 

“그렇소. 정확히 말해 당신들 SSU를. 아이히만 동선을 추적하는 부대가 틀림없이 따로 있을 거요. 날 그들에게 인계해 주겠소?”

3
와인 바 테라스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리카르도 클레멘트는 안쪽에서 바텐더와 마주 앉아 수다를 늘어놓고 있던 사내의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대낮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축치고 영양가 있는 경우는 없었지만 상대가 구사하는 스페인어에 담긴 강한 독일식 악센트가 자꾸 귓가를 파고들었다. 흥미가 동한 클레멘트가 천천히 바텐더 앞으로 다가가며 독일어로 인사했다. 그제야 클레멘트를 힐끗 쳐다본 사내가 무심하게 속삭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독일인이라니!” 

주문한 칠레산 와인을 들이켠 뒤 클레멘트가 물었다. 

“내 또래인 듯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슈?” 

다소 긴장한 표정이 된 사내가 어깨를 죽 펴며 대답했다. 

“세자르요. 그냥 세자르! 바르셀로나에서 권투를 했었다니까 그러네. 아까부터 다 들은 거 아니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클레멘트가 친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듣긴 했소만. 그나저나 재밌는 양반일세. 독일에서 권투선수를 했수?” 

“암! 이래봬도 히틀러 총통 앞에서도 경기를 했지.” 

“스페인 분이 어쩌다 독일까지 가셨을까나?” 

“그럼 여기 아르헨티나까진 어찌 왔겠나? 난 떠돌이외다. 얘기인즉슨 지금이 1960년이니까 바야흐로 20여 년 전 일이라 이거요.” 

세자르는 파란만장했던 자기 인생을 떠벌이기 시작했다. 스페인 북서부 살라망카 출신이던 그는 바르셀로나 부두노동자로 하역 일을 하다 복서가 됐다. 한 독일인 사업가가 나타나 스카우트 제의를 할 때까지 그는 무패였다. 이후 베를린에서 링에 오른 그는 이름을 독일식으로 짓고 전승가도를 내달리다 히틀러 눈에까지 들었다. 

“그런 분이 어쩌다 아르헨티나까지 흘러들었을까나?” 

머리숱이 별로 남지 않은 정수리를 긁적이며 클레멘트가 물었다. 쿠바산 시가에 불을 붙이며 세자르가 대답했다. 

“팔자 아니겠소? 실은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독일인으로 귀화했거든. 뭐 오른손 손가락이 골절돼 포기했소만. 근데 덕분에 독일 군대에 징집됐지 뭐겠소? 패전 후 포로수용소에서 아무리 스페인 사람이라 주장해도 양키 놈들이 안 믿어줍디다! 여기저기 떠돌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갔지. 그러다 배를 탔고…, 여기 아르헨티나에 오게 된 거요. 됐소?” 

고개를 끄덕인 클레멘트가 말없이 와인 잔에 입을 가져다댔다. 둘은 한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머쓱해진 바텐더가 다른 손님들에게 옮겨가고 나서야 클레멘트가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실은 나 독일인이요. 베를린 시절이 가끔 그립다오.”


윤채근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신동아 2020년 7월호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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