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지지율 50%→17%, ‘2년 반’ 윤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윤태곤의 정치읽기] 기존 세력 숙청했지만 권력 재편 지도가 없었다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4-11-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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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이준석 축출 몰두, 이태원 참사로 30%대↓

    • 2023년 나경원·안철수 공격, 의문의 안보 라인 교체

    • ‘여사 라인’ 뜨고 새만금 잼버리, 강서구청장 선거…

    • 2024년 한동훈 사퇴 압박에 드리운 ‘용산의 그림자’

    • ‘참사’로 전락한 尹-韓 ‘면담’, 성정 확인한 기자회견

    • 친윤 여권 재편 과정, 명분과 깃발 어디에…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하고 있다. [대통령실]

    11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11월은 이날 말고도 미 대선 등 국내외 여러 변곡점이 포진한 시기라 대통령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이틀 앞둔 날(11월 8일)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17%로, 취임 후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나 다른 정치 지표에 대한 여러 여론조사가 있지만 정례적이고 같은 방식으로 시행하는 갤럽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제일 윗길이다(이후 모든 여론조사 수치는 갤럽 기준). 이 여론조사에서 긍정 17%, 부정 평가 74%를 기록한 것이다.

    게다가 10월 3주차부터 4주간 추세를 봐도 긍정 평가는 22%→ 20%→ 19%→ 17%로 내리막길을 타고, 부정 평가는 69%→ 70%→ 72%→ 74%로 상승했다. 일회성 악재가 반영된 것도 아니고, 정파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계층, 연령, 지역, 이념을 막론하고 전체 민심이 이탈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디커플링 현상’

    대통령실도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진 않다. 10월 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면담’이나 11월 7일 대통령 기자회견이 반등을 위한 그 나름의 ‘조치’였다. 두 일정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탐탁지 않게 여겨 미루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참모들의 설득과 고언을 통해 성사됐다.

    하지만 두 일정 모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특히 한동훈 대표와의 ‘면담’은 ‘참사’에 가까웠다. 노골적인 홀대, 윤 대통령의 위압적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대통령실이 스스로 공개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사진을 통해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권력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국민은 경악했다. 부산 금정구청장 재보궐선거에서 한동훈 체제의 국민의힘이 선방한 이후 그 ‘면담’을 기점으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에 대한 양비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의 ‘디커플링 현상’까지 나타났다.

    11월 7일 기자회견의 경우, 초반 담화문 낭독 부분에선 대통령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과 더불어 목소리에서도 그 나름대로 겸허한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질의응답으로 넘어가면서 목소리가 거침없이 높아졌고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할 말은 다 하겠다’는 식의 기색이 묻어났다. 김건희 여사를 육영수 여사에 비유하는 장면에선 윤 대통령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온 국민 앞에 생중계로 진행되는 기자회견 와중에 옆에 서 있는 대변인에게 수차례 반말로 지시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대중 입장에서 보자면 이 두 행사는 보도나 전언으로 접하던 대통령의 ‘성정’을 직접 확인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친윤 인사들은 ‘소탈’ ‘진솔’ 등의 단어로 풀이했지만 말로만 듣던 윤 대통령의 평소 모습을 직접 본 대중에게는 그렇게 다가가지 않았다. 정부 정책과 기조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라서 논쟁이 벌어진다면 이념이나 수혜 여부에 따라 편이 갈라지고 상당수는 아군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덕성, 성품, 이미지가 기준이 될 경우 ‘모 아니면 도’의 게임이 된다. 김건희 여사 문제, 대통령의 언행, 대통령실이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 등 이미지 클립은 전형적으로 후자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부작용이 강해진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5년 내내 형편이 좋았던 정부도 없었고, 5년 내내 나빴던 정부도 없었다. 정권을 빼앗기기도 하고 재창출하기도 했지만 임기 중엔 좋았던 때와 나빴던 때가 엇갈렸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탈출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예외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반은 어땠을까? 압도적 여소야대 국면에서 득표율 0.73%의 근소한 차이로 신승해 집권했으니 시작이 편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2022년 4월부터 5월 기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당선인 시절에도 대통령실 이전 등이 갈등 이슈가 되면서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40%대를 기록했다.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서도 정치 경험 부족과 특유의 스타일에서 비롯된 삐걱거림 탓인지 이른바 ‘허니문 기간’에도 50% 초반(51~53%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윤 대통령 집권 초에는 민주당이 국정 운영의 일등 공신이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핵심 지지층이 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이른바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 6·1 지방선거·재보선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대선 패배 장본인은 송영길 당시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계양을을 꿰차고, 송영길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것이다. 텃밭에 나선 이재명 후보는 살아남았지만 민주당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 국민의힘은 경기도를 내줬지만 세종시를 비롯한 충청 전체와 인천을 탈환하면서 실질적으로 허니문 기간에 돌입했다. 게다가 원내에 입성한 이재명 의원은 민주당 당권에 도전하면서 ‘방탄 프레임’이 시작됐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이니셔티브를 쥐고 안정감 있게 국정을 운영하고 지지율을 저축해 놓을 호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여당 주류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 축출에 몰두하며 이 소중한 시기를 허비했다. 이로 인해 지방선거 한 달 만인 2022년 7월 첫 주,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앞자리 숫자 4를 찍지 못했다.

    권력의 구심력을 강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윤 대통령을 비난할 순 없다.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집권 전후로 전임자를 격하하거나 당내 기존 주류 세력을 재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 연합을 해체하고 권력을 집중시켰다.

    이에 비하면 이준석 대표 축출은 큰일도 아니다. 이준석 본인은 젊은 지지자들을 유입시켜 국민의힘을 일신했고, 대선에 공이 크다고 자부하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이 입당하기 불과 한 달 반 전에 대표로 선출됐다는 이유로 자신을 거칠게 견제하던 모습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대통령들은 기존 세력을 숙청하면서 권력 지도를 새로 그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와 깃발을 내세웠다.

    노태우는 ‘5공 청산’과 민주화라는 국민과 야당의 요구를 앞세워 전두환 세력을 쳐냈다. 민주 투사에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 후보로 변신해 집권한 김영삼은 3당 합당의 원죄, 군부 정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야당과 국민의 요구가 커지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이 요구한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해 김대중과 차별화를 시작하더니 아예 새천년민주당을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여권 재편하면서 내세운 명분과 깃발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준석을 축출하고 친윤으로 여권을 재편하는 과정에 명분과 깃발을 내세우지 못했다. 이준석은 거칠게 저항했고, 젊은 남성 보수층도 윤 대통령을 떠났다. 심지어 이준석을 축출하는 데 법적 공방이 오가며 시간도 오래 걸렸다. 2022년 9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후엔 ‘바이든-날리면’ 사태가 터졌다. 그에 앞선 나토 정상회의 때 김건희 여사가 사적 지인을 동행시켰다는 뉴스 이후 윤석열 외교에 심각한 타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10월 말엔 이태원 참사. 참사 자체도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무적 무능력은 아직까지도 심각한 후과를 남기고 있다. 허니문을 누리고 각급 인사를 하는 와중에 지지율을 높이고 권력 기반을 다져야 할 집권 1년차가 이렇게 흘러간 것이다.

    집권 2년차인 2023년은 여당 전당대회 국면으로 시작됐다. 관리형 후보인 김기현이 친윤 간판으로 나온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대 출마 뜻을 피력한 나경원을 ‘반윤 세력의 우두머리’로 규정하고 공격한 모습, 단일화 파트너였던 안철수를 ‘국정 운영의 방해꾼’ ‘적’으로 지칭하며 색깔론적 공격을 가하는 모습은 상당한 충격을 남겼다. 이는 외견상으로는 대통령실의 압도적 힘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취약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측근들이 당내에서 일정한 권위나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지 못하고, 진영 내에 대통령의 대중적 지지층도 조직화돼 있지 못하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고 더 강한 발언으로 상대편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 한동훈 대표 측과의 갈등에서도 드러나는 모습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2023년까진 ‘윤의 힘’이 그래도 통했지만 2024년부터는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이후 2023년 봄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비서관-외교비서관-안보실장 순으로 이어진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이 줄줄이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납득하기 어려운 공식 설명과 함께 ‘여사의 일정과 의전을 둘러싼 갈등’이 문제였다는 뒷말이 따라붙었다. 대통령실 내 ‘여사 라인’이 본격화하는 시점이었다. 그해 여름이 가까워오면서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을 언급하면서 이념 무장을 강조했고, 광복절 이후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이슈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대통령실과 여권 주류 진영이 이념 드라이브를 강화했지만 그사이엔 김 여사와 관련된 양평고속도로 논란이 터졌고, 새만금 잼버리에서도 일이 터졌다. 교권 침해 논란이 확산된 것도 그해 여름이다. 민생과 국정 운영의 역량을 묻는 이슈들이 연달아 터지는데 정권 핵심부는 이념으로 답한 형국이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검찰수사관 출신으로 국민의힘 소속 구청장의 낙마로 생긴 재보선에 여당 지도부는 신중하게 접근할 계획이었다. 무공천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광복절에 사면된 당사자를 당이 공천하고 판을 키우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적 결정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선거 결과는 김태우 후보의 17.15%포인트차 대참패.

    재보선 이후 한동안 변화의 기운이 느껴졌다. 용산발(發) 이념에 경도된 발언도 많이 사라졌고 “지지율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반대가 많아도 할 일은 한다”라는 식의 오만한 발언도 자취를 감췄다. 실질적 성과에 몰두하는 모습이 한동안 보였다. 하지만 기대를 한껏 모았던 엑스포 결정 투표에서 대참패,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수수 논란 본격화 등으로 다시 참혹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2년차 연말이 다가왔다. 완연히 체력을 회복한 민주당은 그해 12월에 ‘김건희 특검법’을 띄웠고,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대통령 등장 빈도와 여당 지지도 반비례

    이렇게 윤석열 정부 2년차가 저물었다. ‘용산픽’이라는 간판을 달고 한동훈 비대위가 총선용으로 출범하면서 2024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강압적 모습을 보이면서 비명계가 꿈틀거렸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스타일상으론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김건희 여사 이슈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민심에 부합하려는 듯한 노력을 했다. 그러자 용산에서 한동훈을 노골적으로 비토하는 메시지가 연달아 나왔고, 실제로 비대위원장 사퇴 압박도 나타났다. 이른바 1차 윤한 갈등. 한동훈은 강골의 결기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고, 이는 오히려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극심한 공천 갈등과 더불어 윤석열 vs 이재명 프레임이 한동훈 vs 이재명 프레임으로 변화하면서 여당의 총선 전망이 밝아졌다.

    하지만 3월이 되면서 용산의 그림자가 다시 짙게 드리웠다. 채 상병 이슈의 상징적 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당시 홍보수석의 ‘망언’ 이후 버티기, 대통령의 전국 순회 일정 강행,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 고집 등. 그리고 사전 투표를 며칠 남겨둔 4월 1일 대통령이 “정치적 득실을 따질 줄 몰라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는 등의 강한 어조로 의대 증원 확충 관련 담화문을 발표했고, 그것으로 총선은 끝이 났다. 총선에서 국민들이 보낸 신호는 분명했다. 선거 기간 내내 대통령의 등장 빈도와 여당 지지도는 정확히 반비례했다.

    총선 이후 또 “이제는 변하겠다”며 한동안은 낮은 모습을 보였지만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교체 외엔 인사 쇄신도 없었고, 오히려 총선을 진두지휘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여러 방향의 공격과 압박이 시작됐다. 이 압박과 공격은 오히려 한동훈의 길을 열었고, 총선 패배 직후임에도 전당대회에 출마할 수 있는 명분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동훈의 압도적 승리와 당권 쟁취로 이어졌다

    전대 이후에도 대통령실은 또 “민심과 당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면서 변화를 약속했지만 한동훈 체제에 대한 못마땅함을 표출하며 추경호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었고,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철통 방어 태세를 풀지 않았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고 10%대 지지율로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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