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한계 직면, 한양증권 인수 추진
OK금융 대주주 적격성 리스크 직면
한진칼·오스템임플란트 등 행동주의 성과
KCGI자산운용 출범 후 행동주의 내세우지 않아
[Gettyimage]
KCGI는 지난 2018년 애널리스트 출신인 강성부 대표가 설립한 행동주의 펀드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수년간의 활동 끝에 행동주의로만은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 인수와 올해 한양증권 인수 시도를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KCGI로서는 행동주의 펀드라는 꼬리표가 딜레마이자 주홍 글씨다. 당장 운용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기업과 마찰을 일으킨 이력은 종합금융그룹을 지향하는 KCGI의 자금조달과 영업활동에서 발목을 잡는 부담이 될 수 있다.
2020년 2월 20일 강성부 KCGI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진그룹 정상화를 위한 주주연합 기자간담회’에서 ‘한진그룹의 위기 진단과 미래 방향,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OK금융그룹 지배구조 살피는 금감원
KCGI는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KCGI자산운용을 출범시킨 데 이어 올해는 한양증권도 인수해 증권사-자산운용사로 이어지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었다.
KCGI는 지난 7월 한양증권 경영권이 매물로 나오자 지난 9월 최대주주인 한양학원, 백남관광, 에이치비디씨 등이 보유한 한양증권 지분 29.59%(376만6973주)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제시했던 가격은 주당 6만5000원, 총 2448억원이었고 이후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과정에서 주당 5만8500원, 총 2204억 원으로 10%가량 낮췄다. 한양증권 주가가 지난 8월 당시 1만 원대 후반까지 뛰었던 점을 고려해도 시세 대비 최소 3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KCGI는 한양증권을 인수할 자기자본이 부족했기에 투자자를 모집하고 펀드를 조성해 한양증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가 매입 논란에 당초 참여하기로 했던 투자자가 발을 빼면서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KCGI가 새로 구한 투자자는 OK금융그룹과 메리츠증권이었다. OK금융그룹은 출자자로, 메리츠증권이 후순위대출로 각각 1000억 원 안팎을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CGI는 예상치 못한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급하게 투자자로 참여한 OK금융그룹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 여부가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인수를 위해 펀드를 조성할 경우 30% 이상 출자한 투자자라면 실질 인수 주체로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6개월마다 이뤄지며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OK금융그룹은 대부업이 근간인 회사로 러시앤캐시 등으로 유명하다. 2014년 예주저축은행과 예나래저축은행 인수 당시 5년 내 대부업 자산의 40%를 감축하고 2024년 말까지 대부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금융당국으로부터 저축은행 인수를 승인받았다. 이후 사세를 빠르게 확장해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OK금융그룹은 과거 증권업 진출을 여러 번 시도했다. 2015년 LIG투자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과 2016년 리딩투자증권 인수를 모색했지만 실패했고, 2017년 이베스트투자증권(현 LS증권) 인수전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대부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으며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OK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 러시앤캐시의 대부업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하지만 대부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로 지난 6월부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정길호 OK저축은행 대표이사가 10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OK금융그룹은 대부업 철수를 약속했음에도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최호 씨가 여전히 대부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대부업체들은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 당시 OK금융그룹의 계열사로도 포함됐다.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최대한 빨리 지분명령을 내리겠다”고 답했다.
국정감사 이후 KCGI의 한양증권 인수에 필요한 OK금융그룹의 대주주 적격성 통과는 한층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다. 당장 KCGI가 호언장담했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신청부터 미뤄지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신청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완료하는 것이 원칙으로 자료 보강 등이 필요할 경우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KCGI가 우여곡절 끝에 금융당국으로부터 한양증권 인수 승인을 받는다면 행동주의펀드의 첫 증권사 인수 사례가 된다. KCGI는 ‘강성부 펀드’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자리 잡는 데 큰 공을 세웠고 다른 행동주의 펀드들의 지침서 역할도 해온 ‘큰형님’에 해당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한양증권 전경. [한양증권]
KCGI, 첫 타깃 ‘한진칼’로 4년간 2배 수익
2018년 KCGI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증시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사실상 외국계 사모펀드의 전유물이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시초로는 2000년대 등장한 장하성 펀드가 꼽힌다. 장하성 펀드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 교수 시절 미국계 라자드자산운용이 내놓은 한국지배구조펀드에서 투자고문을 맡으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하성 펀드는 당시 돌풍을 일으켰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손실이 이어지자 결국 2012년 청산됐다. 이후 10년간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의무)가 도입되면서 국내도 상황이 바뀌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행동 지침을 말하는데 국내 증시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하면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가 자라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이 기회를 노려 강성부 대표는 2018년 7월 1일 KCGI를 설립했다. 강 대표는 1973년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2001년 대우증권 입사해 채권 애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았다. 2004년 동양종합금융증권과 2012년 신한투자증권을 거쳐 2015년부터 2018년까지 LIG그룹 계열 투자사 LK투자파트너스의 대표를 맡았다. 이 같은 경력을 살려 행동주의 펀드에 도전한 것이다.
KCGI의 첫 타깃은 대한항공을 영위하는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이었다. 당시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의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등으로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었다. KCGI는 2018년 7월 조성된 1호 펀드를 시작으로 한진칼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입했고, 2018년 11월에는 지분 9%를 ‘경영 참여’로 공시하면서 조양호 당시 한진그룹 회장(17.8%)에 이은 2대 주주에 올랐다. 이후부터 KCGI는 2022년 3월까지 3년 반 동안 한진칼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KCGI는 2020년 1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3자 주주연합’을 구성하면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당시 3자 주주연합 측 지분율은 31.98%이고, 조원태 회장 측 지분율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33.45%에 불과했기에 팽팽한 싸움이 예상됐다. 하지만 KCGI는 2020년 3월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이후 2020년 11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요 주주로 올라선 이후부터 KCGI는 사실상 경영권 위협을 하지 못하게 됐다. 2021년 4월에는 3자 주주연합도 사실상 해체됐다. KCGI는 2022년 3월 23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도 주주제안을 했지만 다시 표 대결에서 패했다.
KCGI의 한진칼 펀드 만기는 2022년 3월 말이었다. KCGI는 펀드 만기 직전인 2022년 3월 28일 보유 주식 1162만190주(17.41%) 가운데 940만 주(13.97%)를 호반건설에 5640억 원에 매각했다. 호반건설은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잔여 주식 161만4917주와 한진칼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 80만 주에 대한 매도청구권도 획득했다. KCGI로부터 보유 주식의 대부분인 1181만4917주(17.35%)를 사들인 셈이다. KCGI의 한진칼 매입 단가는 주당 3만 원대 초반이었고 매도 단가는 주당 6만 원 수준이었다. 수치상으로는 4년간 두 배 차익을 낸 셈이다.
KCGI는 한진칼 지배구조 개선에는 실패했지만 투자자 관점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를 남겼다. 이는 KCGI는 물론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른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관 등 LP(펀드출자자)들로부터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는 마중물이 됐다. KCGI 역시 한진칼 이후 오스템임플란트와 DB하이텍 등에서 행동주의를 이어나갔고, 이익을 남기고 투자금을 회수했다.
행동주의로 얻는 수익, 가성비 떨어진다는 판단
잇따른 성공에도 KCGI가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인수를 통해 종합금융그룹 전환을 시도하는 배경에는 행동주의 펀드로서는 더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강 대표의 판단이 있다.
DB하이텍의 경우 KCGI는 2023년 3월 312만8300주(7.05%)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고, 그해 말 지주사인 DB에 250만 주(지분율 5.63%)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주당 6만6000원에 매각했다. 매입 평균 단가인 주당 5만6000원보다 18% 높은 수준이지만 투자기간과 투입비용 등을 고려하면 큰 차익을 냈다고는 보기 어렵다.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사실상 이득을 챙기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KCGI는 지난해 8월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KCGI자산운용을 출범시켰고, KCGI자산운용을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집했다. 이후 2023년 8월 23일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의 독립성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내세우며 현정은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직 사임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하면서 행동주의를 시작했다.
KCGI는 2대 주주인 쉰들러와 연대를 모색했지만 쉰들러는 KCGI를 무시하고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계속 줄여나갔다. 현 회장 역시 PEF 운용사 H&Q와 손잡고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다진 다음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서 물러났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지난해 8월부터 별다른 상승 없이 하락과 반등을 지속하며 4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KCGI가 행동주의로서 벌어들이는 수익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가 뚜렷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난립하고 행동주의 펀드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전략이 고도화된 영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투자 회수 과정에서 정작 소액투자자들을 외면한다는 평판이 쌓이면서 소액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호응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DB하이텍의 경우 소액주주들의 공개매수 요구를 무시하고 대주주와 블록딜을 통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먹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KCGI가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지난해 8월 KCGI자산운용을 출범한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강성부 대표가 행동주의 펀드와 이별할 준비를 시작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KCGI로서는 당장 운용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를 접을 수는 없다. 하지만 KCGI자산운용 출범 이후부터 KCGI는 대외적으로 더는 행동주의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을 공격하는 행동주의 펀드 이미지를 버리지 않는다면 종합금융그룹으로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KCGI는 행동주의 펀드 이미지를 장기간에 걸쳐 희석하면서 서서히 갈아타겠다는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