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법 바꾸고 원칙 뒤집는 ‘야바위 정치’
집단 린치 수준이던 국힘의 나경원·안철수 때리기
김기현·한동훈마저 피해 가지 못한 尹 격노
윤한 갈등 원인이자 핵심, 윤의 맹목적 김건희 숭배
4·10 총선은 속된 말로 ‘윤석열이 말아먹은 선거’
“보수는 배신자 용납 않는다” 배신자론의 치명적 약점
민주당, 尹과 국힘 ‘독박 씌우기’ 성공
민주당, 국힘과 도긴개긴 조폭 정당… 단 자폭은 안 해
배신자라 욕하는 이들의 ‘사익 추구’가 한국 정치 죽여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28/4b/678f284b14bad2738276.jpg)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중에 시간을 주시면 찾아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정치인은 조폭과 유사하다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검사 김웅은 2018년 1월에 출간한 책 ‘검사내전’에서 정치인은 조폭과 유사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혼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늘 떼로 몰려다니는데, 고향이나 출신지에 따라 모이며 주로 검은 차나 승합차를 타고 다닌다. 조직의 이름은 주로 모이는 곳이나 오야지가 사는 동네, 그게 아니면 오야지의 이름이나 별칭을 따서 만든다. (…) 범죄를 저지르면 늘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아랫사람이 몰래 한 짓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조폭과 다를 바 없다.”(344-345쪽)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정민은 2020년 11월 좀 다른 맥락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처리를 놓고 벌이는 여당의 행태는 조폭을 방불케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야당에 공수처장 비토권을 주는 것을 미끼로 야당을 안심시켜 법을 통과시켜 놓고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로 공수처장 후보를 확정짓지 못하자 다수 의석을 이용해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려 들고 있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그때그때 법을 바꾸고 원칙을 뒤집는 ‘야바위 정치’가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법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야바위 정치’는 워낙 자주 일어난 탓에 ‘민주당 정치’의 본질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는데도 유권자들이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주니 어쩌겠는가. 계속 조폭처럼 구는 수밖에. 사실 문제는 국민의힘(국힘)이다. 유권자들이 조폭 행태를 자주 보이는 정당에 더 많은 표를 준다는 건 그들의 눈에 국힘이 더 한심한 조폭 행태를 보인다는 게 아닌가. 왜 그렇게 된 걸까. 멀리 갈 것도 없이 2023년 1월 국힘에서 집단적으로 벌어진 ‘나경원 모욕 주기’에서 시작해 보자.
‘조폭 리더십’이 휩쓴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거론되던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023년 1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어두운 표정으로 참석했다. [공동취재사진 ]](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8f/28/da/678f28da0631d2738276.jpg)
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거론되던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023년 1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 어두운 표정으로 참석했다. [공동취재사진 ]
나경원이 2023년 1월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당내 친윤계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자 친윤계와 한 몸인 대통령실은 ‘해임’으로 대응했다. 기후환경대사직도 동시에 해임함으로써 윤석열의 응징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보수 원로인 전 환경부 장관 윤여준은 사흘 뒤인 16일 KBS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이 나경원을 해임한 것을 두고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며 “사표를 냈는데 그걸 굳이 해임한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좀 옹졸한 처사 아니냐. 대통령이 나라의 어른인데 뭘 저렇게까지 하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나경원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에 대한 해임은 분명 최종적으로 대통령께서 내린 결정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대통령께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저의 부족도 있었겠지만 전달 과정의 왜곡도 있었다고 본다.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4·10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닌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을 에워싸서 눈과 귀를 가리는 여당 지도부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 지지 세력을 서로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2023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기후환경대사 해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29/0d/678f290d126ad2738276.jpg)
김은혜 홍보수석이 2023년 1월 1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나경원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기후환경대사 해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유력 후보가 당대표에 출마하는 게 그렇게까지 큰 죄란 말인가. 대통령의 ‘큰 그림’을 훼손했기 때문에? 더 기가 막힌 건 즉각 초선의원 48명 일동이 ‘대통령 모욕’ 운운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를 촉구한다”는 해괴한 입장문까지 발표한 점이다. 이들은 나경원을 향해 “대통령과 참모를 갈라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을 전당대회 출마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건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게 도대체 정당인가, 아니면 조폭 집단인가. 국힘과는 아무 관계도 없던 ‘용병’ 대통령의 심기는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살피면서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은 그렇게 함부로 비난해도 되는 건가.
친윤 정치인들, 심지어 친윤도 아니면서 친윤과 잘 지내려고 하는 중진 정치인들도 가세해 나경원에게 몰매를 때렸다. 모두 다 미쳐 돌아가더라도 중심을 잡아주는 게 원로의 역할이다. 그런 원로라고 할 수 있는 대구시장 홍준표까지 가세해 “내용 없이 이미지만으로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얕은 지식으로 얄팍한 생각으로 이미지만 내세워 그만큼 누렸으면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사실상 나경원의 불출마를 촉구했으니, 이게 웬일인가.
홍준표가 누군가. 2021년 4월 당시 ‘양강 대선주자’인 윤석열과 이재명을 향해 “조폭 리더십이 형님 리더십으로 미화되고, 양아치 리더십이 사이다 리더십으로 둔갑”했다는 독설을 퍼붓지 않았던가. 자신이 지적했던 ‘조폭 리더십’이 ‘나경원 모욕 주기’를 선동하고 있는데, 도대체 누굴 비판한 건가.
당대표 후보 지지율 1위였던 나경원은 이런 인해전술 공격으로 인해 지지율 15%로 3위까지 떨어지면서, 25일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니 대통령이 당대표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걸 옹호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당무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한 윤석열의 약속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야 정상 아닌가. 국힘 전체가 이성을 상실한 채 미쳐 돌아가자 전 국힘 의원 이언주(현 민주당 의원)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개탄했다. “철학이나 노선 투쟁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패거리 지어 왕따시키며 ‘너는 안 돼’ ‘너는 싫어’ 하는 식의 싸움은 조폭들도 안 하는 짓 아닌가.”
尹 ‘격노’ 때마다 흘들리며 춤을 춘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 14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왼쪽)과 차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29/7d/678f297d09ead2738276.jpg)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 14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집무실에서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왼쪽)과 차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월 4일 안철수는 ‘윤안연대’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대통령실로부터 “무례하고 어폐가 있다”는 ‘엄중 경고’를 받았다. 대통령실의 전언에 따르면, 윤석열도 ‘윤안연대’라는 표현에 대해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으며, 안철수의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비판에 대해선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철수 때리기’에 윤석열까지 가세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안철수와 대선후보 단일화를 시도할 때 “제 진정성 믿어주세요, 만나주세요”라며 읍소했던 윤석열, 그 진정성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윤석열과 국힘은 집단적으로 그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실은 안철수를 겨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명언을 빙자한 망언까지 남겼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일련의 공격에 대해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은 윤석열에게서 “절대복종을 요구하고, 불복에 진노하는 제왕적 권위의식이 엿보인다”고 했고, 동아일보 부국장 이승헌은 “군사정권 이후 정치권에서 이렇게 집단 린치가 집중적으로 자행된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2023년 3·8 국힘 전당대회에선 윤심의 선택을 받은 김기현이 당대표로 당선됐지만, 그 역시 나중에 윤석열의 ‘격노’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12월 13일 김기현의 ‘대표직 사퇴’ 발표는 ‘당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를 해달라’는 대통령실의 요구에 맞서 ‘당대표직을 포기하고, 지역구에 총선 출마하겠다’는 그의 의지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언론은 이를 전해 들은 윤석열이 ‘격노’했다고 보도했는데, 국힘은 이렇듯 늘 윤석열의 ‘격노’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정당이었다.
윤석열이 아무리 잘못된 길로 간다 해도 견제하기는커녕 최소한의 이의 제기마저 할 수 없는 정당, 그게 바로 국힘이었다. 3·8 국힘 전당대회가 여당을 자신의 부하처럼 다루는 윤석열의 조폭 성향이 잘 드러난 1차 시험대였다면, 제2차 시험대는 2024년 1월 윤석열과 국힘 비상대책위원장 한동훈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었다. 이 사건은 윤석열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공정과 상식’을 망각하고 배신했다는 걸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딱 한 달 만인 1월 21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윤석열이 한동훈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한동훈이 그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뉴스였다. 이젠 모든 내막이 거의 다 밝혀졌으니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자.
갈등의 원인이자 핵심 문제는 윤석열의 맹목적인 김건희 숭배였다. 그의 집착은 병적이었다. 윤석열의 지지율을 20~30%대에 묶어두는 최대 요인은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건희의 ‘대통령놀이’였다. 윤석열을 아끼고 윤 정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에게 김건희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고언했으나 매번 결과는 같았다. 윤석열의 격노와 관계 단절이었다.
이게 널리 알려지면서 김건희는 윤 정권의 절대 성역이 됐다. 공적 마인드가 전혀 없음에도 자신이 정치를 잘 안다고 착각한 김건희는 잦은 사고를 치면서 윤석열의 지지율을 갉아먹고 국민적 반감을 키우는 최대 요인이 됐다. 한동훈이 이런 ‘김건희 리스크’를 정면으로 대응한 것은 옳았지만, 윤석열의 극대로에 그만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배신자론’의 치명적 약점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건 사과 문제를 놓고 두 사람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가 이 만남으로 봉합됐다. [대통령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29/9d/678f299d24f5d2738276.jpg)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건 사과 문제를 놓고 두 사람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가 이 만남으로 봉합됐다. [대통령실]
4·10 총선 패배 이후 4월 20일 대구시장 홍준표는 “한동훈의 잘못으로 역대급 참패를 했고, 총선을 대권놀이 전초전으로 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윤통도 배신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다”고 밝혔다. 그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도 했다.
홍준표의 비판은 좀 이상하다. 그 역시 다른 맥락에서 김건희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곤 했다. ‘역대급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이 한동훈에게 있다는 건 한동훈이 윤석열에게 김건희 문제로 대들지 말고 윤석열 이상으로 김건희를 추앙했어야 했단 말일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힘이 참패했단 말일까. 그리고 명색이 국민 세금으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면 ‘배신’이란 말을 쓸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닐까. 홍준표의 주장이 시사하듯이, “보수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배신자론의 치명적 약점은 반드시 섬기거나 성역으로 남겨둬야 할 군주를 염두에 둔 정략적 담론이라는 점이었다.
지난해 6월 29일 국힘 7·23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희룡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한 갈등에 대해 “자신을 20년 동안 키웠던 인간관계에 대해 하루아침에 배신해도 되느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윤상현 후보 역시 “절윤(絶尹·윤 대통령과 절연)이 된 배신의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한동훈을 공격했다. 한동훈이 “공적 관계는 친소 관계에 좌우되면 안 된다”며 배신자론을 부인하자, 원희룡은 “(윤 대통령과) 20년 동안 검찰에서 서로 밀어주고 충성하던 게 바로 한동훈 후보”라고 날을 세웠다.
이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윤석열은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 시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 자격으로 참석해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발언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덕분에 검찰총장 자리에 오르고 결국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자해만 일삼는 김건희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침으로써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동시에 국정 운영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원희룡과 윤상현이 윤석열에게 그런 모순을 지적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공사 구분을 엄격하게 하겠다는 한동훈에게 배신 운운한 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이었을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었는지 배신자론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몸이 단 김건희가 뛰어들었다. 사실상 선거 개입에 나선 것이다. 7월 4일부터 김건희가 한동훈에게 보냈다는 사과 논의 문자 ‘읽씹’ 논란을 매개로 한동훈을 진짜 나쁜 배신자로 몰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윤석열도 친윤 인사들에게 ‘읽씹’을 언급하면서 “이런 XX인데, 어떻게 믿냐”는 취지로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걸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12년 전 발언은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었나.
‘미치광이를 끼고도는 미치광이’
![2021년 12월 2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29/d1/678f29d10c92d2738276.jpg)
2021년 12월 2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조갑제는 12월 18일 조갑제닷컴에 올린 칼럼에서 국힘을 ‘미치광이를 끼고도는 미치광이’라고 했다.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라도 이성이 온전했다면 계엄 선포라는 최악의 파국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힘이 국힘을 부하처럼 생각하는 윤석열의 조폭 성향에 브레이크를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아첨과 더불어 지원사격을 하지 말고 잠자코 구경만이라도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이후 벌어진 윤석열과 한동훈의 충돌, 그리고 4·10 총선 참패 후에라도 제 정신을 차렸더라면 계엄이라는 미친 짓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국힘은 이후 8개월간 윤석열을 옹호하겠다며 배신자 타령으로 세월을 탕진했고, 그 결과가 바로 12·3 계엄이었다.
그간 점잖은 언론에선 윤석열을 대놓고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12·3 계엄 이후 달라졌다. 그래서 아예 ‘입벌구’라는 그의 별명을 소개하는 칼럼마저 등장했다. “‘입벌구(입만 열면 구라)’라는 세간의 멸칭이 상징하듯,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거짓말 중독’은 증세가 위중하다. 평생 법 위에 군림하며 필요할 때마다 둘러댄 거짓말이 처벌을 받기는커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반복되자 아무런 죄의식 없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스스로 사실이라고 믿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한겨레, 2025년 1월 1일자, 이재성 논설위원)
‘입벌구’로 치면 김건희도 윤석열 못지않았다. 김건희는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2021년 12월 26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쏟아놓은 자신의 약속을 다 결과적인 거짓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12·3 계엄은 김건희가 그런 맹세를 전혀 지키지 않고 정반대로 나아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비록 실패로 돌아갔을망정 국힘 내에서 김건희 문제를 가장 강도 높게 제기했던 한동훈을 돕지 못해 주저앉게 만들었다는 반성과 참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정반대로 엉뚱한 배신자 타령만 난무했으니, 국힘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집단이다.
12·3 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홍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 박근혜 때처럼 적진에 투항하는 배신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그 길만이 또다시 헌정 중단의 불행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앞선 페이스북 글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충정은 이해하나 경솔한 한밤중의 해프닝”이라고 했다. 아니 겨우 ‘해프닝’에 불과한 일이었단 말인가.
홍준표는 12월 9일엔 “윤통이 자기 손으로 검사로 키우고. 자기 손으로 법무장관감도 아닌 이를 파격적으로 임명하고, 자기 손으로 생판 초짜를 비대위원장으로까지 임명했다”며 “그런 애가 자기를 배신하고 달려드니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는 도대체 전생에 어떤 배신을 얼마만큼 당했길래 이렇게 시종일관 배신 타령만 해대는 걸까. 윤석열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배신을 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아니면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정략적 계산이 그런 배신 타령을 하게 만드는 걸까.
민주당과 국힘은 도긴개긴 조폭 정당
‘조폭 리더십’이 휩쓴 2023년 3·8 국힘 전당대회 이후 국힘이 윤석열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조폭놀이’를 중단하고 이성을 회복했다면 2024년 12·3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미친 짓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쓴소리가 배신으로 몰리고 낯 뜨거운 아첨이 사기 진작으로 여겨지는 집단은 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짜 조폭조차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단순 무식한 배신자론은 배격하건만, 국힘은 그걸 무슨 종교적 신조나 되는 것처럼 신봉하고 있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국힘을 조폭에 비유하는 게 오히려 조폭에게 결례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될 정도다.
국힘에서 배신자론을 역설하는 대표 논객들이 당당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이들의 배신자론에 국가와 국민은 없다. 공적 가치도 없다. 미시적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오직 위만 쳐다볼 뿐 아래와 옆을 위한 의리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배신자론은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왜 그런가. 배신자론은 정치를 ‘사익 추구 비즈니스’로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포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익 추구”는 감춰주면서 “나는 의리를 목숨처럼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포장이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는 살아남는 덴 백해무익(百害無益)이지만 암컷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지녔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작용한다. 이런 설명을 가리켜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 디에고 강베타는 값비싼 신호 이론은 조폭이 왜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는가 하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잠재적 ‘영업 대상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문신을 통해 신호를 보냄으로써 ‘영업’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으며, 조직 내부엔 자신이 헌신적 구성원이라는 신뢰의 신호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공적 대의보다는 사적 의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과시하는 것은 한국의 후진적 조폭 정치판에서는 공천을 챙기고 같은 패거리를 확보하는 데 매우 매력적 신호다. 국힘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민주당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민주당에서 벌어진 강성 팬덤의 ‘수박 죽이기’와 연대해 이루어진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을 보라. 그거야말로 ‘조폭 문화’와 ‘조폭 리더십’을 원 없이 드러내 보여준 최악의 추태였다.
유권자들의 무서운 응징이 가해져 마땅한 작태였음에도 그걸 일시에 막아주면서 민주당에 총선 대승을 안겨준 주인공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건희를 자신의 브레인이자 여신으로 모신 윤석열 신도였다. 국힘과 민주당은 조폭 정당이라는 점에선 도긴개긴이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었으니 그건 민주당은 계엄과 같은 자폭을 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일 정도로 크다.
인하대 명예교수 김명인은 한겨레 칼럼(2025년 1월 3일자)에서 “민주당은 총선 승리 이후로부터 내란 진압 국면에 이르기까지의 일사불란한 투쟁을 통해 문재인 정권 실패의 책임을 일부 탕감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탕감받은 정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전리품을 얻은 게 아닐까. 민주당은 그간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와 과오에 대한 사면까지 받으면서 그 책임까지 윤석열과 국힘에 떠넘길 수 있는 ‘독박 씌우기’에 성공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국힘에 “당해도 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 민주당에 축하를 보내야 할 일이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안타깝다. 좋은 일이 생기면 무조건 자기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걸로 착각하는 한국 정당들의 고질병 때문이다. 민주당에 성찰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 기회마저 윤석열과 김건희가 탈취해 갔기 때문이다. 이들이 저지른 죄악의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배신자라고 욕하는 이들의 ‘사익 추구’ 광기가 한국 정치를 죽이고 있다.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