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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생활 10년, 몸과 마음의 무게가 같아졌네!

산골 생활 10년, 몸과 마음의 무게가 같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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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른들과 아내의 반대, 가장의 의무, 대학까지 나온 내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회의, 정말 내가 흙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이것들을 일단 접어두자. 마지막 그 하나, 몸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몸뚱이 하나 믿고 떠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선택이었지만 그건 또 다른 선택의 시작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언제 떠날 것인가. 이럴 때 누군가 함께 살아보자고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망망대해, 무수히 널려 있는 우리 땅 곳곳, 산과 들과 강. 땅은 많았지만 오라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이야 ‘귀농’이란 말이 흔하고, 관련 단체도 많다. 인터넷 카페도 많고, 지방자치단체에선 상당히 호의적이기까지 하다. 시골 생활에 지침이 될 만한 책이 시리즈로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귀농을 고민하던 1995년엔 허허벌판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하루에도 수십번 마음속으로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1996년 봄, 서울을 떠났다.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뿐. 그동안 추구해왔던 이념도, 몇십년 맺어온 인연도 접어두었다. 처음에는 경남 산청에서 대안학교를 준비하는 어느 공동체로 갔다. 아내가 낯선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아간다는 걸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내가 먼저 내려갔고 조금 뒤 아내와 아이들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따라왔다. 워낙 많이 망가진 몸과 마음이라 산청 공동체 생활은 쉽지 않았다. 공동체의 꿈보다 자신을 치유하는 게 더 급했다. 낯모르는 이웃들과 함께 살기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우리 식구만의 땅을 마련해 농사를 짓고 싶었다.



땅을 마련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때는 ‘땅값 싸고 물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이곳 전북 무주에서 마음에 드는 논을 찾았다. ‘말뚝 박는 기분’으로 그 땅을 샀다. 마을의 서광철 아저씨는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까’ 하는 안쓰러움으로 빈집을 소개해줬다.

‘농사지을 땅도 있겠다, 살 집도 있겠다’ 생각하니 살아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면당하는 시골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내 마지막 선택을 수호(!)하기 위해 첫 해에 논밭 2000평에서 열심히 일했다. 여기서 좌절한다면 아내와 아이들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낮에 관리기로 밭을 갈다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달빛이 아까워 또 일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니라 주경야경(晝耕夜耕)이었다.

모내기철은 더했다. 어둑어둑한 새벽 4시쯤, 모판의 모가 잘 안 보여도 손에 닿는 느낌으로 모를 찌다 보면 날이 밝았다. 그 무렵 소쩍새는 얼마나 구슬피 우는지. 논밭의 물은 차갑다. 그래도 내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 열심히 일한 탓에 저녁 먹고 나서 머리를 대면 그 곳이 잠자리였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고개가 저절로 방바닥으로 기울어진다. 몸이 지구 중력을 잘 따른 셈이다.

그렇게 일해도 그해 가을걷이 전까지 돈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농사를 시작하며 6개월 만에 만져본 돈이라고는 고작 2만5000원이 전부였다. 그것도 내가 아니라 우리 딸이 번 돈이다. 초등학교 다니던(중학교를 끝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딸은 지금 열여덟 처녀가 됐다) 딸아이가 토끼를 키웠는데 새끼를 낳았다. 그 새끼를 이웃집 아저씨가 산 것이다. 시골 노인네가 건넨 꼬깃꼬깃한 돈에서 여러 사람의 몸 냄새가 났다. 가을걷이 끝나고 농산물을 정리했지만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몸으로 한 선택은 내게 자신감을 줬다. 돈으로는 맛볼 수 없었던 자신감, 잃어버린 내 분신을 찾은 느낌이었다.

내 권력이 내 상처를 치유하다

선택한 것을 기다리거나 선택당한다는 건 마음 졸이는 일이다. 보고서를 올리고 결재를 기다릴 때, 신춘문예에 글을 투고하고 발표를 기다릴 때, 아내 될 사람에게 청혼을 하고 답을 기다릴 때…. 살아오면서 그런 일들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권력과 관련이 있다. 내가 가진 힘으로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유교적이고,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권력을 갖고 싶었다. 돈을 갖고 싶었고, 명예를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몸뚱이와 시간뿐이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언저리조차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던 내가 무언가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 힘과 권력이 내 지난 상처를 치유해주고 있다.

농사에는 정말 많은 선택이 있다. 벼농사, 잡곡 농사, 약초 재배, 가축 키우기 등. 어디 그뿐이랴. 언제 씨를 뿌리고 거둘까,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심을까…. 이 모두 내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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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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