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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

소설가 윤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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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어낚시통신’ ‘사슴벌레 여자’ 등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윤대녕(尹大寧·45). 문학청년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의 부채감에 시달리던 그는 ‘신화’라는 거대한 우주에 빠짐으로써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소설가 윤대녕
우리는 낡고 허름한 바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체코산 고급 맥주와 값싼 양주를 번갈아가면서 마셨다. 조금 전까지 윤대녕과 인터뷰를 했고, 목이 말랐다. 인터뷰를 하기 몇 시간 전, 나는 그의 새 책 ‘제비를 기르다’를 읽다가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책을 읽다 어느 순간부터 손으로 마음이 전해져 연필심이 촉촉해졌다.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해마다 첫눈이 오면 집을 나가서는 몇 주를 떠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둔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니 그 두 남자를 둔 어머니와 문희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도 하다.

소설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여자는 다 예쁜 거라고, 그러나 여자는 영원의 나라를 왕래하는 철새와 같은 존재라고…. 참으로 무섭고도 무서운 말이다. 집 나가는 아내에게 지친 아버지가 잠시 마음을 둔 여인이 문희다. 술집여자인데 어린 시절 주인공에겐 마음속 화인(火印)처럼 남은 여인이다. 세월이 흘러 사십대가 된 사내는 강화도의 ‘문희’라는 술집에 있는 문희를 찾아간다. 할머니가 된 문희를 만나고 사내는 무너진다.

뒤미처 참고 참았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급기야 나는 늙은 문희의 품에 쓰러져 소리내 울고 있었다. 희번덕 놀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늙은 문희가 이윽고 가슴에 나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그러다 함께 통곡이라도 하듯 이렇게 내뱉었다.

“아이고, 내 새끼! 그동안 가슴에 뭔 일이 있었던 게구나. 틀림없이 그렇구나. 불쌍한 내 새끼, 이걸 어떡하나.”




읽고 나니, 인간은 영원의 나라를 왕래하는 철새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다가 오랜만에 같이 울었다. 내가 울어서 내가 기뻤다.

작품과 상품의 경계선

소설가 윤대녕은 그동안 자주 만나던 사이라, 정색을 하고 인터뷰를 한다는 게 어색했다. 그래도 일은 일이다 싶어, 마주 앉아서는 ‘자 이제 시작합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도 나도 픽 웃음이 나왔다. 뭘 물어보지? 그는 나의 비밀 하나 둘 정도는 알고 있고, 나 역시 남에게는 말하기 싫은 윤대녕의 에피소드 하나 둘 정도는 갖고 있는 사이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언제나 반가웠고, 그의 독자가 좀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나도 어쩌면 윤대녕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다.

그의 소설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을까. 문득 반짝거리면서 떠오르는 것이 은어다. ‘은어’와 ‘은어낚시통신’은 비록 초기 작품이지만 윤대녕이라는 작가의 가운데 있다. 그는 여기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또한 벗어나 있지 않다. 벗어난 것은 작가인데, 독자는 아직도 윤대녕의 ‘은어’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단의 원로인 ‘인연’의 피천득 선생은 이제 100세가 가까워진다. 수년 전 어떤 이가 선생의 글을 받고 싶어 백지수표를 들고 찾아갔다. 선생의 어떤 글이라도 괜찮으니 한 편만 써달라고 간곡히 원고청탁을 했다. 그때 선생은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글을 씁니다. 첫째는 돈을 벌기 위해, 둘째는 명예를 얻기 위해, 셋째는 전작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쓰기 위해. 저는 이제 이 세 가지가 다 필요 없어서 글을 쓰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의 초기작인 ‘인연’보다 다음 작품들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마음은 작품의 평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지금 쓰는 작품이 항상 전작보다는 더 좋은 작품이라고 마음에 품고 가는 존재다. 마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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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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