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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아들과 아버지의 e메일 대화

“스무 통의 편지가 오가는 사이 우리는 설레고 통(通)하였다”

대학 신입생 아들과 아버지의 e메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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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2006-05-23 “글을 잘 쓰려면”

대학 신입생 아들과 아버지의 e메일 대화

매일 아침 아들이 보낸 e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최영록씨.

신새벽 너의 답멜을 받으니 정말 기분이 좋구나. 네가 요즘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부모로서 정확히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글에는 그 사람이 오롯이 담겨 있다.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지? 아들아, 그렇다. 네 말처럼 글에는 그 사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오늘은 깊이 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해주마. 읽고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 그렇다고 아빠가 무슨 글쓰기 선생님처럼 표준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 길, 이왕이면 지름길을 좀 안다고 할 수 있지. 최소한 아들인 너에게 어드바이스는 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괄호 안에 한자를 가끔 쓰는데, 눈여겨보기 바란다. 살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단어와 한자와 영어가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현 문화재청장)님은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부럽지 않은 글쓰기 능력을 원한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할 일은 많이 읽는 것이다. 대학시절만큼 원하는 책을 마음놓고 읽을 시간은 살면서 많지 않다. 우선 주제를 정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濫讀)이 좋겠다. 남독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너의 특성을 계발해줄 계통의 책을 취사선택할 능력이 생긴다. 그런 후에는 일로매진(一路邁進)해야 한다. 수능시험 준비로 밤을 새운 적은 있어도 좋은 책을 읽으며 한 밤을 꼬박 새운 경험은 없겠지. 이제 그런 생생한 경험을 자주 해야 한다. 책에 몰입하다보면 어느새 희붐한 여명(黎明)을 맞게 된다. 그때의 뿌듯한 기분은 맛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나는 네가 이런 기분을 자주 맛보기 바란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자. 우선 너희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는 ‘창의적 글쓰기’라는 책을 정독(精讀)하기 바란다. 한번 훑어봤는데, 간단한 예를 많이 들어 정리를 잘 해놓았더구나. 우리 서가에도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나 ‘글쓰기의 힘’ 등 관련 책이 있는데, 그것까지 다 읽고 시작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읽을 기회가 있을 게다. 얼마 전 아빠가 선사한 어문교열기자들이 쓴 칼럼모음집 ‘한국어는 있다’를 찬찬히 읽어보면 좋겠다.

글쓰기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인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언론계에서 꼬박 20년 동안 글만 만지다 대학 교직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제 좀 익숙해졌지만. 아빠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 뉴스가 되고, 어떻게 글을 작성하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생각하고 판단한 후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언젠가 너희 논술시험 답안지를 봤는데, 모두 어떤 틀에 맞춰 쓴 것 같아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듯 자기에게 맞는 글쓰기 형태가 있다. 요즘 생각해보면 나는 ‘수상록(隨想錄)’ 형식의 글에 강한 것 같다. 반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해가는 논술에는 약한 편이다. 네 글은 몇 편 보지 않았지만, 나의 이런 기질이 네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신문(新聞)이다. 신문 한 달치를 정독한다고 생각해봐라. 300페이지 책 몇 권의 분량이다. 더구나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다. 신문이야말로 정보(情報)의 보고(寶庫)다. 아버지는 그 신문만 보면서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러니 깊지는 않지만 두루 널리 아는 박식(博識)의 경지에 오를 수밖에. 텔레비전보다 신문을 가까이 해라. 빈둥빈둥하는 자투리 시간에도, 화장실이나 지하철에서도 신문을 손에서 놓지 말기 바란다. 많이 읽는다는 것은 너의 경쟁력을 구비하는 데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집에 한우충동(汗牛充棟)이 있은들, 읽지 않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사 모은 책이 차고 넘치는데, 너는 마치 너하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모르쇠’로 일관하면 되겠느냐.

또한 많이 읽는 것 못지않게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어야 한다. 듣는 귀도 읽는 눈만큼 중요하다. 세상은 네 생각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중론(衆論)이라는 것도 있고 여론(輿論)이란 것도 있다.

또 하나, 많이 생각해라(多商量). 나는 어떤 주제로 칼럼 한 편을 쓰려면 일주일 정도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관련된 책이나 구절도 생각하고, 남의 의견도 들어보고, 나만의 창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묵새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생각이 발효되면 글이 나오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발견한 중요한 내용은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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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 최한울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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