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 대한 평가는 첫인상이 80%를 차지한다. 그 첫인상의 절반 이상은 옷차림에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두 명의 영업사원이 새 거래처를 뚫기 위해 나섰다. 길을 걷던 중 흙탕물이 튀어 구두가 더러워졌다. 점심시간이라 배도 고팠다. 수중에 있는 돈은 3000원. 한 명은 그 돈으로 라면을 사 먹었고, 다른 한 명은 그 돈으로 구두를 깨끗이 닦았다. 당신이 거래처 사장이라면 구두까지 말끔한 차림으로 들어서는 영업사원과 흙탕물 범벅이 된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영업사원 중 누구에게 더 호감과 신뢰를 갖겠는가.
불편한 진실

요즘에도 일부 가격 거품이 있는 매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원단값에 적절한 재단비를 받는다. 저가 40만 원, 중가 80만 원, 고가 200만 원대 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싶다. 가격 거품과 고급화는 다른 개념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로로피아나 등 이탈리아 최고급 원단은 입어보면 그 가치를 안다. 또한 제대로 된 맞춤 슈트와 기성복을 비교해 입어보면 오랫동안 기술을 연마한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홈쇼핑에서 10만 원대 슈트를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홈쇼핑 업체에 지급하는 마진을 고려하면 한 벌에 10만 원도 안 받고 제품을 공급한다는 의미다. 도대체 어떤 원단을 쓰고 어떻게 바느질을 하기에 저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다. 묵은 원단, 조잡한 바느질, 외부 하청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가격 파괴를 표방하는 몇몇 프랜차이즈 맞춤 슈트집도 마찬가지다. 어떤 업체는 소셜커머스 업체와 손잡고 25만 원짜리 맞춤 슈트를 내놓았다. 35만 원짜리 맞춤 슈트를 구매하면 맞춤 드레스셔츠와 넥타이를 선물하는 업체도 있다. 가산디지털단지의 아웃렛에서 유명 기성복 업체들의 슈트 한 벌 가격이 통상 35만~50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런 맞춤 슈트 업체의 가격은 뭔가 석연치 않다. 기성복보다 싼 맞춤 슈트라니?
포털사이트의 유명 여성 전문 커뮤니티에선 ‘맞춤 슈트가 몸에 맞지 않는다’는 성토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도 “프랜차이즈 슈트집에서 옷을 맞췄는데 도저히 못 입겠다”며 찾아온 고객을 여럿 만났다. 원가를 무리하게 낮추다보니 조악한 원단을 쓰고, 직접 재단하지 않고 기성복 만들 듯 하청업체에 맡기고, 맞춤에 걸맞은 고급 바느질을 하지 않고 대충대충 만든 결과다.
이런 슈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재로 값싼 걸 쓰기 마련이다. 가령 양복은 원단과 안감 사이에 심지를 넣는다. 심지를 안 넣고 접착제로 붙이거나 싸구려 심지를 사용한 양복은 몇 번 클리닝을 하고 하면 옷 모양이 틀어져 입을 때 겉도는 느낌을 받는다. 그 차이는 제대로 된 옷을 입어봐야 알 수 있다.
얼마 전 웨딩플래너의 꾐에 넘어가 엉터리 예복을 샀다는 남성 손님을 만났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옷의 하나가 결혼예복일 터인데, 결혼 준비에 바쁜 나머지 함량 미달 업체를 찾은 것 같다. 맞춤 슈트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오랜 기간 기술이 숙성돼야 가능하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슈트 장인들이 대개 지긋한 나이인 건 그 때문이다.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옷감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옷값은 옷을 만드는 데 써야 한다’는 한 업체의 광고가 생각난다. 맞춤 슈트는 아무리 싸도 수십만 원대다. 당연히 고객들은 그에 걸맞은 고품질의 제품을 원한다. 그런데 슈트 제작에 들어가야 할 돈의 상당수가 소셜커머스 업체의 마진,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광고비 등으로 나간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요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유행이다. 소비자의 기호, 취향,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희귀하면서도 특색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가전업체는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구현하는 멀티 가전제품을 내놓았고, 의류업계는 소비자가 원하는 모양이나 문구를 넣어준다. 현대자동차는 튜닝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