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AI, 사람독감으로변신 가능… 얼마나 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8-06-11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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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평론가 이한음씨가 ‘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연재를 끝내고 이번 호부터 ‘과학과 살아가기’를 새로 연재합니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우리 사회와 개개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한음씨의 새 연재는 국내외에서 화제가 된 과학 이슈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얘깃거리들을 풍성하게 제시함으로써 과학 지식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편집자’
    AI, 사람독감으로변신 가능… 얼마나 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가 지난해 11월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모의환자를 임시격리실로 이송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만물을 산뜻하게 분류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초를 치는 존재다. 홀로 있을 때는 생명활동도 하지 않고 번식도 하지 않으니 무생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세포에 침입하면 딴판으로 돌변한다. 바이러스는 세포의 생명활동기구를 강탈해 자신을 복제하고 퍼뜨리는 용도로 쓴다. ‘번식하고 또 번식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세포로 이뤄져 있지 않으니 생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렇듯 조건이 맞으면 생명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주도권은 바이러스가 쥐고 있다

    바이러스는 생명의학 분야에서도 곤혹스러운 존재다. 인류에게 크고 작은 수많은 질병을 안겨주고 있음에도 퇴치할 수가 없다. 수도권에까지 상륙하는 등 전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AI(Avian Influenza·조류인플루엔자)가 보여주듯이, 주도권을 쥔 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 같다.

    바이러스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류에게 대재앙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몇 차례나 보여줬다. 1918~1919년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각각 100만명과 70만명의 희생자를 낸 1957년과 1968년의 독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또다시 대재앙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2003년에 다시 등장한 조류인플루엔자는 닭, 오리, 칠면조 등 수많은 가금류를 떼죽음으로 몰고가면서 이제 인간까지 넘보고 있다. 2003년에 4명이던 감염자 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치사율은 60%에 달한다. 지금까지 감염자들은 조류와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었고, 사람 대 사람 감염은 아직 없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사람 간에 조류인플루엔자를 옮길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대재앙이 찾아올지 모른다.



    문제는 바이러스들이 대개 그렇듯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변화무쌍하기에 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독감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꼽힌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책을 세우려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바이러스는 파고들면 들수록 더 모호해진다.

    1999년 토벤버거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한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미군 산하 병리학 연구소에서 1918년 독감에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서류와 함께 그들의 폐 조직이 든 현미경 슬라이드들을 발견했다. 당시 희생자들을 부검해 만든 슬라이드였다. 독감 바이러스의 잔해가 든 슬라이드가 두 개였다. 연구진은 1918년 알래스카에서 독감에 희생되어 영구동토층에 묻혔던 시신의 폐에서도 독감 바이러스의 잔해를 찾아냈다.

    조류독감이 사람독감 된 사례들

    독감 바이러스는 RNA로 이뤄져 있다. 그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을 이루는 RNA 조각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 중 하나인 헤마글루티닌의 유전자를 온전히 복원해냈다. HA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달라붙어 침투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다.

    연구진은 찾아낸 유전자 서열을 사람, 돼지, 조류의 독감바이러스 서열들과 비교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추정했다. 조사 결과 그 바이러스는 인간과 돼지의 독감 바이러스에 더 가까웠다.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서 직접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추정했다. 그렇다고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의 독감 균주의 근원이 조류 균주이므로 돼지 같은 중간 숙주에서 어느 정도 변형을 거친 뒤에 사람에게 옮겨갔을 수 있다.

    그와 달리 1957년과 1968년 사람들을 감염시킨 독감 바이러스는 조류 균주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과 뉴라미다아제(N) 두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구분한다. 현재 N은 16가지, H는 9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둘을 조합하면 144가지가 된다. 예전에는 H1, H2, H3, N1, N2를 조합한 H1N1, H1N2, H2N1, H2N2, H3N1, H3N2의 6가지만 사람에게 감염된다고 보았다. 1918년 스페인독감바이러스의 균주는 H1N1이었다. 1957년 것은 H2N2, 1968년 것은 H3N2였다. 조류에게 고병원성을 띠는 것은 H5와 H7형이다.

    AI, 사람독감으로변신 가능… 얼마나 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DNA가 없이 RNA만 지닌 바이러스이며, 둥근 공 같은 껍데기 속에 RNA 8가닥이 들어 있다. 그 8가닥에 적어도 10개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표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2개, 바이러스의 생활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2개, 복제를 담당한 유전자가 3개, 단백질과 핵산의 복합체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 1개, 핵산단백질 복합체를 세포핵 밖으로 내보내고 산성도를 조절하는 구실을 하는 유전자 2개다.

    대개 생물의 핵산을 복제하는 효소는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의 효소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날 수 있고, 그에 따라 유전자 다양성이 높다. 또 핵산이 8가닥으로 나뉘어 있는 점도 유전자 다양성을 높이는 데 한몫을 한다. 한 세포에 두 종류의 바이러스 균주가 함께 들어가면 양쪽의 핵산 8가닥이 동시에 복제될 것이다. 그런 뒤 새로운 바이러스 껍데기에 핵산이 들어갈 때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핵산 가닥이 섞여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유전자 재편성이며, 독감 바이러스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조류→돼지→사람, 조류→사람

    이렇게 재편성이 일어나 유전자들이 새롭게 조합되면 바이러스의 감염 능력도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종류의 숙주에 침입할 능력을 얻기도 하고 병원성이 강해질 수도 있다. 병원성과 숙주의 면역 반응에 주로 관여하는 것은 표면 단백질이다.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이 바뀌면 거기에 대비하지 못한 숙주 세포는 바이러스의 침입을 허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독감의 대유행으로 이어진다. 1957년 독감은 H와 N 유전자가 조류 균주의 것으로 재편성되면서 일어났다. 1968년 독감은 H2가 조류에서 유래한 H3로 대체되면서 일어났다.

    대체로 조류인플루엔자는 사람을 감염시키지 못하고, 사람인플루엔자는 조류를 감염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돼지는 양쪽에 다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돼지의 세포 속에서 두 균주가 뒤섞여 유전자 재편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재편성된 균주가 사람에게 감염되면 독감이 대유행할 수 있다. 1957년과 1968년의 독감이 그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류 균주가 직접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 1997년 18명이 감염되어 6명이 사망한 H5N1형이 그렇다. H5N1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 없이 인간에게 직접 감염되어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바이러스는 변형을 거치면서 2003년 이후 해마다 발병해서 조류와 사람에게 막대한 해를 입히고 있다. 그 외에 H7H7, H9N2 등 새롭게 병원성을 얻은 균주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런 조류인플우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에서 사람독감 바이러스와 유전자 재편성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변하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아직까지 H5N1은 사람 사이에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전자 재편성을 거치면 사람 간에 전파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은 1996년 중국 광둥성 농가에서 기르던 거위 한 마리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듬해에는 홍콩의 농장 및 시장의 가금류가 감염됐으며 이후 처음으로 사람도 감염됐다. 그 뒤로 몇 년간 잠잠하던 이 바이러스는 2003년 변형된 형태로 다시 나타나더니 해마다 감염 지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어느새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까지 뻗어나갔다. 감염된 사람도 380명을 넘었으며, 사망자 수는 240명을 넘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서울까지 진출했다. 매일 수많은 닭과 오리 등 조류가 살처분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한반도로 온 것일까.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의 왕래가 적던 옛날에는 철새가 이런 바이러스를 여러 지역으로 옮기는 주요 매개체였을 것이다. 도요류와 기러기류 같은 야생 물새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자연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H와 N의 모든 유형이 야생 물새들에게서 발견됐다.

    ‘종간 장벽’ 너무 믿지 말라

    물새들은 떼지어 다니므로 여러 균주에 동시에 감염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재편성이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 물새들의 몸에서 바이러스의 증식이 이뤄지는 주된 장소는 창자다. 물새들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대개 증상이 없으며, 대량으로 증식된 바이러스는 배설물을 통해 물로 배출된다. 그 물을 다른 물새들이 마시면서 전파된다.

    철새가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에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경로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야생 조류와 기르는 가금류의 접촉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철새보다는 사람을 통한 가금류의 이동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파에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특히 홍콩, 이탈리아, 미국 등지의, 살아 있는 조류를 거래하는 시장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파에 중요한 몫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된 조류의 배설물, 조류와 접촉한 사람이 쓴 옷, 신발, 도구, 장갑, 그리고 물, 트럭 등 운송 수단도 주요 오염원이다. 공기를 통한 전염은 가까운 거리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듯하다.

    AI, 사람독감으로변신 가능… 얼마나 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에 AI 방역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동물과 사람에게 공통으로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아주 심한 해를 입히면서 말이다. 오래전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스스로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온갖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여 옆에 끼고 산 덕분에, 그 동물들이 지닌 병원체까지 도매금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인류는 자각하지 못한 채 동물들의 병원체에 오만하게 도전했다. ‘어디 내 몸으로도 들어와보라. 내가 견뎌내는지 그렇지 못한지 시험해보자’는 식이었다. 헬리코박터균을 직접 먹어서 자신의 이론이 옳았음을 입증한 연구자는 덕분에 노벨상까지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병원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때로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염병의 창궐이 그것이다.

    인류가 소규모 무리로 뿔뿔이 흩어져 있고 서로 왕래가 적던 시기에는 어느 한 집단에 전염병이 돌아도 인류 전체에는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았다. 인류의 수가 늘어나고 지역끼리 교류와 왕래가 잦아지면서 전염병의 발생 양상도 달라졌다.

    동물에게서 넘어오는 전염병이 인류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스페인 독감을 비롯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사스, 에볼라, 에이즈, 광우병까지 다양하고 치명적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병원체가 넘기 어려운 종간(種間) 장벽이 존재하므로 지나치게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최근의 질병들은 ‘그렇게 태평스럽게 지낼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해준다.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밖에는 대안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례들도 있다. 처음에는 큰 피해가 생길 것처럼 보였지만 운이 좋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증상이 약해져서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기를 기대하는 식이다.

    치명적 전염병, 인간이 자초했다

    최근의 인수공통전염병은 가축에게도 큰 해를 입히는 양상을 띤다. 오랫동안 인간의 손에 길러진 가축은 야생에 사는 친척과 유전적으로 많이 달라진 상태다. 최근 들어 품종 개량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유전적으로 다양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풍족하게 사료를 먹이면서 키우는 대량 사육 방식도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허버트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에는 지구를 침략한 화성인들이 승승장구하다 뜻하지 않게 지구의 병원체에 감염되어 모두 죽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구인이 화성인의 병원체에 감염돼 죽는 설정이 과학적으로 더 그럴듯한 일이다. 잉카문명이 정복자 유럽인들이 옮긴 천연두 때문에 몰락한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좋아진다고 질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의학기술은 대체로 건강 상태를 양호하게 유지하고 감염을 예방하거나 증세를 약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 이래 새로운 질병이 30종 이상 늘었다고 본다. 사라진 듯하던 질병이 다시 위세를 떨치는 경우도 있고, 전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드물던 질병이 갑자기 확산되기도 한다.

    많은 학자는 이런 새로운 질병들을 발생시킨 원인제공자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라고 본다. 자연의 생물들은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조화 속에는 온갖 병원체도 포함돼 있다. 기생충, 세균, 바이러스 등은 어느 한 생물이 지나치게 늘어나지 못하게 억제함으로써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포식자도 마찬가지다. 포식자와 먹이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계속하여 자신들의 전략과 전술을 다듬어간다. 그러면서 상대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못하게끔 막는다.

    인간은 그런 자연의 균형을 깨뜨렸다. 인류는 수가 엄청나게 늘었고 자연에 대규모로 개입할 능력도 갖췄다. 인류는 그 능력을 알게 모르게 균형을 깨는 데 이용했다.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주면 어때? 소에게 소를 먹이면 어때? 버리는 내장과 뼈를 잘 갈아서 섞어주자.’ 이런 관점에서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니 성장 속도도 빨라지고 고기 맛도 좋아졌다. 그러나 초식동물을 잡식동물로 바꾼 대가로 인류는 광우병을 대면해야 했다.

    고릴라, 고양이, 박쥐까지 먹다가…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다국적기업들은 아프리카 밀림 깊숙한 곳까지 도로를 뚫고 개발을 했다. 없던 길이 새로 나자 원주민들은 과거에는 안 가던 숲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야생동물들을 사냥해 고기를 내다 팔았다. 여기에는 침팬지 고기도 있었다. 침팬지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 침팬지는 그 바이러스에 걸려도 별 증상이 없다. 그러나 그 바이러스는 침팬지 날고기를 지속적으로 접촉한 인간들에게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인간의 놀라운 이동 수단에 힘입어 전세계 인류로 퍼졌다.

    지구 전체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바이러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1990년대 초 미국의 사막 기후대 인디언 보호구역에 한타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폐에 물이 차서 죽는다. 연구자들은 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쥐들이 크게 늘어나며, 그때마다 한타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온난화로 그곳의 사막 기후는 몬순 기후로 바뀌고 있었다. 한타 바이러스가 풍토병이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H5N1형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함께 중국 광둥성에서 처음 발생한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 즉 사스도 인간이 자초한 질병에 속한다. 사스는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 중 하나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친척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연구자들은 사향고양이의 몸에서 사스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이 고양이는 중국에서 약재와 요리 재료로 쓰인다. 이 고양이와 접촉한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2년 사스가 발병하자 중국은 사향고양이 거래를 금지하고 1만 마리가 넘는 사향고양이를 살처분했다.

    그런데 후에 박쥐에게서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사스바이러스의 숙주는 고양이가 아니라 박쥐라는 주장이 나왔다. 고양이는 오히려 인간에게서 옮은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의 박쥐 식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면서 온갖 동물을 사고팔고 키우고 먹는 세상에서 그런 전염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AI, 사람독감으로변신 가능… 얼마나 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現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만들어진 신’ 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인간은 매일 수만, 수십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하면서 감염지역을 제한하려고 애쓴다. 또 인간에게로 옮겨지는 종간 전염을 막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그런 조치들에 힘입어서인지, 스페인독감에 맞먹는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던 사스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일부 새로운 유행병도 예상보다 큰 해를 입히지 않고 잠잠해졌다.

    모든 식품에 찾아온 위협

    그러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아직 확산되는 추세다. 이 유행병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새로운 유행병이 등장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류는 심각한 불안에 직면할 것이다. 닭고기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쇠고기는 광우병으로 인해, 돼지고기는 구제역으로 인해, 생선회는 또 다른 여러 감염원으로 인해, 콩 등 곡물류는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안전이 상시적으로 위협받는 시대가 찾아왔다. 이제 국가와 국제사회는 미래를 내다보며 자연친화적인 대응에 나설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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