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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캐나다 교포가 한국 노동계에 던지는 고언

“전부 아니면 무(無),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투쟁하는가!”

한 캐나다 교포가 한국 노동계에 던지는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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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망진창이다. 일파만파로 번진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사건, 폭력사태로 비화된 민주노총의 극심한 노선 갈등, 노사정 대화 복귀 무산, 한국노총 소속 부산항운노조의 ‘취업장사’의혹…. 작금의 한국 노동계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우려는 커지고 있다.
  •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해외동포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
  • 한 캐나다 교포가 20여년 전 캐나다에서 경험한 일을 반추하며 ‘민주노총, 그리고 노조원들에게 드리는 쓴소리’라는 제목의 서신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다소 거친 감이 없지 않지만, 해외에서 고국을 바라보는 절절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어 축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한 캐나다 교포가 한국 노동계에 던지는 고언

노조의 지루한 파업 끝에 굴뚝과 보일러실만 앙상하게 남은 캐나다의 파이어스톤 타이어공장.

민주노총과 한국의 노조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노조가 너무 강경해 영국의 산업경제가 30년은 후퇴하고 말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한국의 땅덩이가 얼마만한지 진정 알고 있는가. 그 좁디좁은 땅덩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끓듯 살아가고 있는지 또한 제대로 알고 있는가. 북한보다도 작은 9만8000㎢ 안에 5000만명이 무엇 하나 풍족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직 두뇌와 인력만 믿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곳 캐나다의 영토는 한국의 40배에 이른다. 온갖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석유, 천연가스에서부터 금, 은, 동, 다이아몬드, 심지어 우라늄까지 생산된다. 그런데도 인구는 3000만명이 안 되고, 임금은 한국보다 높지 않으며, 상여금이란 것은 알지도 못한다.

두 장의 사진이 주는 교훈

이 편지에 동봉한 두 장의 사진을 당신들이 봤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25년 전쯤에 내가 직접 찍은 것이다. 한 장은 파이어스톤(Firestone) 타이어 공장인데, 건물은 다 헐리고 보일러실과 굴뚝만 앙상하게 남았다. 다른 사진에 담긴 건물은 번스(Buns)라는 육류가공 회사로 캐나다에서는 꽤 규모가 컸던 업체인데,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건물 형태만 겨우 남았다. 도무지 양보라고는 모르는 노조의 지루한 파업 끝에 결국 직장폐쇄로 인해 허물어져버린 모습이 가슴 아파 찍어둔 것이다.



당시 이 두 회사의 폐쇄로 1000명이 넘는 노조원이 직장을 잃고 실직자가 됐다.

1980년대 초, 유가(油價)가 계속 하락해 경제불황이 닥쳤을 때가 떠오른다. 내가 살고 있는 앨버타주(州)는 캐나다 석유의 95%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가가 오르면 지역 경기도 호황을 누리고 유가가 내려가면 침체된다. 당시는 유가가 배럴당 13.5달러까지 곤두박질(배럴당 20달러 이상은 돼야 먹고살 만했다)치는 바람에 유전(油田)마저 폐쇄되고 유전 장비를 제작하는 앨버타주의 여러 공장이 뒤따라 도산하거나 폐쇄돼 매일 수백명이 실직하는 판국이었다.

당시 나 또한 일시적으로 직장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었는데, 어느 날 노조에서 소집통보가 왔다(캐나다에선 감원을 당해도 노조원 신분은 유지할 수 있다). 혹시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좋은 소식이라도 있을까 해서 지정된 날짜에 노조 사무실로 갔더니 넓은 강당에 꽤 많은 노조원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날 소집의 주제는 노임(이곳에선 시간제 노임을 채택, 일을 하면 노임을 주고 일을 안 하면 안 준다. 회사가 바쁘면 채용하고 한가하면 언제라도 종업원을 감원한다. 평소 임금에서 실직보험료가 자동으로 공제되고, 감원될 경우 회사는 1개월분의 노임을 더 준다. 실직보험료는 1년간 기존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다)을 1.5달러 인상해달라고 회사측에 요구하고 만일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을 할 것인가를 토의하자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다른 일거리나 직장은 있는가? 나는 노임 인상 대신 임금이 다소 삭감되더라도 안정된 직장만 있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동료인 길모어가 하는 말이 이랬다.

“리(Lee), 이건 저들의 잡(job)이야.”

말인즉슨, 노임 인상 요구는 노조 간부들의 공적 쌓기(사정이야 어떻든 자신들이 노조 간부로 있을 때 임금을 인상시켰다는)를 위한 연례행사라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이 10대 초반일 때다. 하루는 막내가 멀리 지나가는 긴 열차 행렬(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데, 많게는 120량이나 된다)을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아빠, 나 못 봐.”

이 말은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서툰 한국말로, 근래(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는 한국의 한진, 현대 상호가 써 있는 컨테이너 상자가 열차에 실려 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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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성근 캐나다 앨버타주 거주 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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