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칼라일의 한미은행 변칙인수 논란

금감위는 ‘편법’ 알고도 모른 척, 칼라일은 허위 신고 의혹

  •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3-23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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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기관 아닌 사모펀드’ 알면서도 눈감아줘
    • 칼라일 법률자문 로펌 끌어들여 ‘문제없다’ 결론
    • J.P.모건-칼라일 컨소시엄은 눈속임용
    • 금감위 승인 필요없는 ‘바지’ 투자자 동원(?)
    • 당시 금감위원장 “반대할 명분 없었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변칙인수 논란

    칼라일 펀드는 한미은행 인수 과정에서 편법을 눈감아준 금감위의 ‘특혜’ 덕분에 3년 뒤 씨티그룹에 매각해 7000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지난해 한미은행을 씨티그룹에 팔아 7000억원의 차익을 남긴 칼라일 그룹이 애당초 J.P.모건을 동원해 편법적으로 한미은행을 인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승인권을 가진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이를 사전에 알고도 칼라일 측의 법률자문을 맡은 로펌의 법률 해석만을 근거로 이를 승인했다.

    이 같은 사실은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지난 2000년 제18차 금감위 의결사항 ‘J.P. 모건에 대한 한미은행 주식취득 승인안’에서 밝혀진 것이다. 금감위는 이 승인안에 담긴,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방식을 밝힌 투자구조 설명서에서, J.P.모건이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케이먼에 설립한 사모펀드와 칼라일의 합작법인이 한미은행의 인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당시 은행법상 은행 주식의 4% 이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금감위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국내 은행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은행업·증권업·보험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융기관이거나 당해금융기관의 지주회사’로 제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라일과 J.P.모건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사모펀드’ 방식의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한미은행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금감위는 그 동안 한미은행의 인수 주체가 ‘은행+사모펀드’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신동아’가 입수한 금감위 의사록을 보면 금감위 역시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금감위가 칼라일과 J.P.모건의 한미은행 인수를 승인하면서 작성한 투자구조 설명서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175쪽 표 참조).

    컨소시엄에 참가한 ‘J.P.모건’은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세계 굴지의 은행지주회사 ‘J.P. Morgan & Co. Incorporated’가 아니라 이 지주회사가 출자해 만든 ‘J.P.Morgan CorsairⅡ’라는 자회사다. ‘코세어(Corsair)’라는 명칭은 19세기 중반 J.P.모건을 창업한 J.피어폰트 모건 가문이 소유했던 요트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J.P.Morgan CorsairⅡ’가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J.P.Morgan CorsairⅡ Offshore Capital Partners, L.P.’라는 긴 이름의 사모펀드를 만든 뒤 이 펀드가 칼라일 측과 합작, ‘KAI(Private)Limited’라는 투자회사를 세워 한미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투자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J.P.모건’이라는 말만 듣고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J.P.모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미은행을 인수한 주체는 금감위의 설명대로 ‘은행+사모펀드’ 또는 ‘은행 자회사+사모펀드’가 아니라 칼라일과 똑같은 사모펀드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칼라일이나 J.P.모건 측 관계자들 역시 한미은행을 인수한 주체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금감위만이 이들이 펀드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회사이며 단지 투자 손익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복잡한 투자구조를 갖췄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은행이니까 괜찮다”더니…

    칼라일의 한미은행 변칙인수 논란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승인한 제18차 금감위 결정문.

    미국에서도 사모펀드가 은행을 소유할 경우 은행지주회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이 한미은행과의 계약서에 한미은행 로스앤젤레스(LA) 지점을 폐쇄하는 조항을 넣은 것도 은행지주회사법을 피해나기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곧 J.P.모건이 출자한 ‘코세어’ 역시 은행지주회사법 적용을 받지 않고 한미은행을 인수하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동아’가 입수한 ‘J.P. 모건에 대한 한미은행 주식 취득 승인안’은 금감위가 처음부터 J.P.모건 코세어가 출자한 사모펀드의 한미은행 인수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편법을 동원해 결과적으로 칼라일에 특혜를 주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금감위는 이 승인안에서 은행지주회사인 J.P.모건이 직접 한미은행 주식을 취득하지 않고 ‘코세어’가 주식을 취득한 경우 J.P.모건을 실질적 주식 취득 주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김&장과 법무법인 세종의 법적 해석을 인용하고 있다. 두 로펌은 금감위 승인 한 달 전쯤 보낸 의견서를 통해 약속이나 한 듯이 ‘자회사를 통해 투자하는 외국 금융기관의 관행 등을 고려할 때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인수는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문제는 두 로펌 모두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인수할 당시 칼라일의 법률자문 파트너였다는 점이다. 또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던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칼라일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게다가 칼라일 김병주 당시 회장을 인터뷰한 경제전문지 ‘파이낸스아시아’에 따르면 이 의견서 역시 김 회장의 요청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180~183페이지 기사 참조). 말하자면 주식 취득 승인 신청을 한 칼라일측 이야기만 듣고 법적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논란의 핵심은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이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로 모아진다. 은행법 시행령 5조는 외국인이 금융기관의 주식을 4% 이상 보유하고자 할 경우 ‘은행업 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따로 정하는 금융업을 영위하는 금융기관’으로 그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은행이나 금융지주회사가 아닌 칼라일과 같은 사모펀드는 은행법상 국내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다.

    칼라일과 J.P.모건이 한미은행 인수자로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6월경. 이 무렵 금감원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칼라일이 세계적 투자은행인 J.P.모건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미은행 자본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칼라일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라는 이유로 한미은행 주식을 인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세계적 투자은행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J.P.모건이 나선 이상 인수 자격을 더 이상 문제삼을 이유가 없었다.

    ‘J.P.모건이 50% 이상의 지분만 참여해준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들이 금감위 주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심지어 칼라일-J.P.모건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한 당시 금감위원들 가운데 이런 투자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없었던 듯하다.

    당시 칼라일-J.P.모건의 한미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한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도 “J.P.모건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단 주도권은 J.P모건 측에서 가져야 한다는 것이 금감위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J.P.모건과 칼라일의 투자구조를 조금만 살펴봤더라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는 이 전 위원장의 설명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당시 금감위원들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당시 이 거래를 승인한 금감위원 A씨는 “자격요건과 관련한 논란은 없었다. 한미은행을 인수한 J.P.모건이 금융기관이 아니라 사모펀드였다면 승인해주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당시 금감위원 B씨 역시 “자격요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이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것은 금감위의 승인 과정뿐만이 아니다. 칼라일이 한미은행에 투자한 금액도 투명하지가 않다. 금감위는 칼라일이 J.P.모건과 함께 한미은행 주식의 17.9%(우선주 포함)를 사들여 2200억원(2억달러)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이 차지한 사실상의 지분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아 40%를 넘는다.

    일단 J.P.모건 코세어가 내놓은 여러가지 자료를 보면 J.P.모건이 코세어를 100% 소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코세어 펀드에 J.P.모건이 100% 출자했다는 뜻은 아니다.

    금융 전문가들은 “펀드에 100% 출자하지 않더라도 제너럴 파트너(General Partner·무한책임사원)를 맡고 있는 쪽이 100%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제너럴 파트너가 중심이 돼 리미티드 파트너(Limited Partner·유한책임사원)들을 모집하는 사모펀드의 구조상 J.P.모건이 펀드 조성 자금의 일부만 댔더라도 제너럴 파트너 역할을 맡고 있으면 100%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변칙인수 논란


    결국 J.P.모건이 칼라일과 함께 한미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특수목적회사(SPC)를 공동 설립하면서 이 페이퍼 컴퍼니 구성 자본의 50%를 독자적으로 댄 것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돈을 마련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익명을 요구한 정통한 소식통은 “J.P.모건 측이 출자하기로 한 50%의 지분 중 실제 J.P.모건의 돈은 25%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J.P.모건이 25%만 출자했다면 자본금이 2억달러인 이 SPC에서 칼라일이 댄 돈은 1억달러가 되지만 J.P.모건이 댄 돈은 나머지 1억 달러 중 25%인 2500만달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J.P.모건이 칼라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돈만 집어넣었는데도 금감위는 이를 ‘J.P.모건과 칼라일이 5대5로 공동출자한’ 것으로 보고 한미은행 주식 취득을 승인해줬다는 말이다. 칼라일 김병주 회장도 ‘파이낸스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4분의 1도 안 되는 자금을 제공한 J.P.모건과 경영권을 공유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혀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코세어, “한미 인수 ‘도왔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파이낸스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그나마 J.P.모건 측이 49.9%를 초과할 경우 한미은행의 지주회사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50% 출자에 난색을 표시했고, 결국 칼라일 측은 이를 받아들여 ‘J.P.모건 49.9% 대 칼라일 50.1%’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는 금감위의 승인사항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칼라일이 J.P.모건 지분이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금감위에 허위보고했거나 금감위가 이런 사실을 알고도 한미은행을 칼라일에 넘기기 위해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욱 관심을 모으는 것은 2500만달러밖에 출자하지 않은 J.P.모건이 칼라일과 어떻게 공동 경영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J.P.모건 코세어 스스로도 홈페이지를 통해 2000년 11월에 한미은행 인수를 ‘도왔다(helped)’고 언급하고 있어 의혹을 더한다. 코세어는 한미은행 인수에 자신들이 칼라일과 공동 참여한 것이 금감위의 승인을 얻는 데 ‘쓸모있었다(instrumental)’고만 밝히고 있을 뿐 투자 규모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나마 이 홈페이지도 최근 폐쇄되어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경로에도 투명하지 못한 구석이 발견된다. 당시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인 곳은 칼라일-J.P.모건뿐이 아니었다. 이들 대주주 이외에도 채드윅, 스칼렛, 이글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적게는 1%에서 많게는 3.96%까지 한미은행 주식을 사들였다.

    이들 4% 이하 투자자들이 사들인 지분은 칼라일-J.P.모건 지분보다 훨씬 많은 2800억원 어치나 된다. 이들은 누구인가. 또 이들은 왜 한 날 한 시에 ‘고만고만한’ 지분을 사들여 3년 뒤 또 한 날 한 시에 팔았을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하면 이들 소액 투자자들 역시 실질적으로는 칼라일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칼라일의 위장 지분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칼라일의 김병주 회장 역시 “직접 이들 지분을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했다”고 밝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칼라일의 투자방식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칼라일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한미은행 투자금액은 모두 4억3500만달러(한화 약 4785억원)다. 이중 4000만달러(약 440억원)는 2000년 9월의 금감위 승인과 관계없이 그 해 6월 한미은행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를 발행했을 때 실권주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이미 투자한 금액이다. 이 돈은 이미 6월말 한미은행 계좌에 입금됐다.

    나머지 3억9500만달러(약 4345억원)가 칼라일이 J.P.모건 코세어와 함께 한미은행의 주식(DR)을 인수하면서 지불한 금액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금감위가 밝힌 칼라일-J.P.모건 코세어의 투자 규모는 2억달러(약 2200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94억원어치의 우선주를 포함한 금액이므로 순수하게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을 통해 실제 투자된 금액은 2006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칼라일의 위장 지분(?)

    그렇다면 나머지 1억9500만달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돈은 칼라일의 DR 인수 당시 4% 이하의 지분을 투자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우회’투자된 것으로 보인다. 금감위도 한미은행측 자료에 의해 지분율 4% 이하 개별 외국투자자들의 DR 취득예정분을 포함할 경우 외국인 총 투자규모는 칼라일이 밝힌 대로 2200억원이 아니라 4600억원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 4% 이하의 투자자는 금감위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외면했을 뿐이다.

    칼라일은 왜 이런 복잡한 방식을 택했을까. 어차피 한미은행 주식을 ‘4% 이상’ 보유하게 되면 지분이 많건 적건 똑같은 금감위 심의대상인데도 거추장스럽게 이를 잘게 쪼갠 이유는 간단하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J.P.모건이 1억 달러 이상은 투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J.P.모건의 투자상한액 1억달러에 맞춰 5 대 5의 비율로 2억달러짜리 SPC를 만들어놓고 한미은행에 약속한 나머지 투자금액은 금감위의 승인이 필요없는 소규모 투자자들을 동원해 한미은행에 집어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칼라일과 이들 소액 투자자들 사이에 어떤 이면협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김 회장의 언급을 보면 이들 소액 투자자들이 투자한 금액 역시 칼라일의 돈과 무관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가 금감위 승인을 통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외신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금감위 승인 직후 ‘비즈니스위크’는 “‘(J.P.모건이 아닌)칼라일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한미은행 주식의 40.7%를 인수했으며 칼라일이 4억5000달러 중 3억달러를 부담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소액 투자자들 중에는 싱가포르 정부가 운영하는 싱가포르 투자청(GIC)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끈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금감위는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에 한미은행 지분의 17.9%를 넘긴 거래에 대해서만 승인해 주었지만 칼라일이 의결권을 가진 지분은 사실상 36.6%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을 7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고 씨티은행에 넘길 때도 그대로 확인됐다. 한미은행이 씨티 측과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지분 매각 사실을 최초로 공개할 때도 양측은 한미은행 지분의 36.6%를 인수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얼굴마담’ 역할을 한 J.P.모건이 그 후로도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J.P.모건의 50% 이상 의결권 보유 여부는 금감위 승인의 전제조건이었기 때문에 J.P.모건의 사후 적격성 심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대목이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경제학)는 “설령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인수’했더라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은행법이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는 이른바 ‘동태적 적격성 심사(dynamic fit and proper test)’ 조항 때문이다.

    물론 금감위가 일반적으로 한번 승인해준 은행 주식 취득에 대해 사후 적격성 심사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칼라일-J.P.모건의 한미은행 인수처럼 내부적으로도 은행법 위반 여부를 놓고 고심했던 사안조차 사후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금감위의 존재 이유가 뭐냐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수석연구원은 “금감위가 비록 승인해줬더라도 칼라일의 경우처럼 사후에 승인 조건과 다른 점이 드러났다면 승인을 취소하고 지분 매각을 명령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감위=살인마(?)’

    이렇게 수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한미은행 편법 인수에도 불구하고 칼라일은 그 후 70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채 한미은행을 떠났다. 김병주 회장은 이 거래를 성사시킨 뒤 칼라일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가 최근 칼라일을 떠났다.

    김 회장이 한국의 금감위와 재경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 칼라일 그룹의 전세계 투자 중 가장 큰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킨 것은 그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해외 언론들은 그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영웅 막시무스(Maximus)에 빗대 ‘막시무스 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들 언론은 규제 일변도의 한국 경제관료들은 ‘007 골드 핑거’에서 제임스 본드를 괴롭히는 한국인 살인마로 나오는 ‘오드잡(Oddjob)’에 비유했다.

    결국 금감위는 엄청난 특혜로 비칠 만한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통해 7000억원의 이익을 안겨주고도 그들로부터 ‘살인마’로 불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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