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생기가 감돌고 공화당은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1994년 의회 장악과 2000년 대선 승리를 통해 워싱턴을 완전히 장악했던 공화당이 ‘로비스트 그룹도 공화당 중심으로 바꾸겠다’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이른바 ‘K스트리트 프로젝트’는 이제 부메랑이 되어 공화당 로비스트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간 대표적인 수혜자인 BGR홀딩스 같은 공화당 중심 로비회사들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발 빠르게 민주당과 가까운 로비회사를 인수했다. 이제 그들은 지난 8년간 자신들이 해온 일들은 까맣게 잊은 듯 ‘초당파적 업무’를 공언하고 있다.
오바마는 과연 대선기간에 한 약속처럼 기존의 워싱턴 문화를 개혁하고 새로운 정치를 이뤄낼 수 있을까. 지금 워싱턴의 눈과 귀는 모두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다. 단순히 그가 대통령 당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당선이 갖는 역사성, 현 상황이 주는 긴박성, 그리고 무엇보다 워싱턴이 오바마라는 인물과 그의 리더십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큰 이유다.
워싱턴은 단순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다. 워싱턴은 자기만의 활동방식을 가진 일종의 생명체다. 이제 이 생명체는 앞으로 최소 4년 동안은 오바마에게 적응해야 한다. 대통령 오바마의 스타일이 워싱턴 문화 전반에 미칠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 뒤집어 말하면 오바마 역시 워싱턴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성공적인 국정운영은 물론 재선(再選)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의 워싱턴, 워싱턴의 오바마
분명한 것은 오바마의 리더십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리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강렬한 경험에 따라 세상을 본다. 매케인이 베트남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며 ‘국가는 절대 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면,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동안 미국을 주시하는 세계의 눈은 ‘힘의 미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미국 내에서 그가 소수인종으로서 살아온 다문화, 다인종의 삶은, 최소한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간 백악관의 주인이었던 주류 정치인들이 경험한 바 없는 소수의 시각에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바마 리더십이 항상 자상하거나 진보적이기만 할 것이라고 보면 큰 오산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조건이 자칫하면 대중에게 약자의 모습으로 비치거나 자신이 소속된 집단만을 대표하는 것처럼 규정될 위험이 있음을 그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터득하고 있다. 오바마는 분명 이전의 미국이 갖고 있던 리더십과는 다른 관점으로 미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협력에 나서겠지만, 필요할 경우 더 강경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역시 오바마 대통령이 이끌어갈 한반도 관련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그가 대선과정에서 한 언급이나 민주당 주변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면면에만 주목해서는 곤란하다. 그가 새롭게 시작할 워싱턴 정치, 백악관 정치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48년 독립을 선언한 이스라엘을 정식국가로 승인해준 미국의 중대한 결정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조지 마셜 국무장관 등 당시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클라크 클리퍼드 같은 정치분야 참모들의 자문을 토대로 내린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입장에서 오바마의 워싱턴, 워싱턴의 오바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살펴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