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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백악관의 미래 & 숨은 파워 엘리트 14人

오바마 백악관의 미래 & 숨은 파워 엘리트 14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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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악관 비서실장의 정치방정식

조지아 주 출신으로 사실상 무명인사나 다름없었던 지미 카터는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주지사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백악관과 내각을 채웠다. 이른바 ‘조지아 마피아’다. 특히 카터 대통령은 연방의회와 워싱턴 언론을 다뤄야 할 비서실장과 대변인에 핵심참모인 해밀턴 조던과 조디 파월을 임명하는 등 전통적인 워싱턴 정치와 거리를 유지했다.

더욱이 민주당은 1976년 경선 당시 ‘진정한 민의를 반영한다’는 취지로 연방의원들이 주로 맡던 당연직 대의원을 거의 두지 않았기 때문에, 카터 후보는 선거기간에도 의원들을 접촉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의회 역시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긴 했지만 카터의 공약이나 정치노선을 낯설어했고 신뢰하지도 않았다. 워싱턴에 편입되기 위해 필수관문 격이었던 워싱턴의 사교문화가 막 조지아에서 날아온 이들에게 익숙할 리 없었다. 결국 카터 대통령은 고립됐고, 그의 초당파적인 국정운영 시도는 번번이 민주당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쓴맛을 봐야 했다. 그렇다고 공화당이 도와줄 일도 없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은 이러한 교훈을 무시하지 않았다. 1980년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 역시 캘리포니아 인맥으로 참모 진용을 꾸렸지만 비서실장만큼은 대표적인 워싱턴 인사이더였던 제임스 베이커를 임명했다. 기실 베이커는 공화당 내에서 레이건의 최대 정적(政敵)이던 조지 부시의 가장 절친한 참모였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레이건 대통령은 워싱턴에 연착륙하는 데 성공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초반 아칸소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토머스 맥라티를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등 워싱턴을 등한시했다. 지나친 자신감과 준비 부족의 결과였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은 위기에 이은 1994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빠르게 워싱턴 문화에 적응해 나갔고, 결국 빼놓을 수 없는 인사이더가 됐다.



이렇게 볼 때 오바마 당선자가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것은 그가 냉철한 현실주의자임을 보여준다. 그가 상원의원으로 워싱턴에 들어온 것이 불과 4년 전이다. 누군가는 의회와 워싱턴을 꿰뚫고 있어야 하고, 또 대통령이 ‘초당파적 국정운영’을 말할 때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 혹은 협박(?)하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램 이매뉴얼은 누구보다도 적격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백악관뿐 아니라 의회에서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 대통령으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카리스마형 지도자였고, 워싱턴에 풍부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의 경우,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주의적인 남부 출신 다선 의원들이 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원의 상황을 무릅쓰고 ‘위대한 사회’를 기치로 하는 각종 민권정책과 빈곤층 지원정책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는 아직 보수화하지 않았던 북동부 공화당의 도움과 함께 민주당 의원들을 각개격파한 존슨 대통령의 탁월한 의회장악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바마에게는 본인 대신 존슨 같은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비서실장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려면 세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 우선 대통령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대중적인 무게가 있어야 하며, 워싱턴 정치에 능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매뉴얼을 능가하는 적임자는 없다.

악역을 맡을 사람

이매뉴얼은 1992년 대선 당시 클린턴 캠프에서 일했던 베테랑이다. 1993년 백악관에 입성한 그는, 맥라티 비서실장이 젊은 직원들을 정리한다며 사직을 권고하자 “대통령 본인이 내 눈을 쳐다보고 직접 말하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고 버텨 끝내 생존했을 만큼 만만찮은 공력의 소유자다. 이후 그는 2000년 퇴임까지 승진을 거듭해 클린턴의 핵심참모로 거듭났다.

기본적으로 그는 이념적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 사고로 가운뎃손가락이 절단됐지만 화가 나면 욕설을 내뱉으며 그 짧은 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독한 캐릭터는 정평이 나 있다. 백악관을 다룬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의 주인공 조시 라이먼이 바로 그를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훨씬 순화된 성격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당초 비서실장으로 함께 거론됐던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매뉴얼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스’하다는 점이 한계였을 것이다.

오바마 백악관의 미래              & 숨은 파워 엘리트 14人
데니스 맥도너

톰 대슐 상원 원내대표 외교정책보좌관을 역임했고, 에너지 문제와 환경정책에 특별한 관심과 전문성을 보였다. 오바마 캠프 외교안보정책팀 간사를 맡아 후보에 대한 현안보고를 담당했고, 미국진보센터(CAP)에도 소속돼 있다. 과감한 환경정책 제안으로 친(親)기업 세력과 충돌할 우려도 있다.

리처드 덴지그

클린턴 행정부에서 해군장관을 역임했고, 국방부 생물테러 관련 컨설턴트로 일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법률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민감한 군 정책을 사려 깊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다. 국제적 군비감축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레고리 크레그

클린턴 행정부 백악관 참모를 지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장관 재임 시절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냈다. 워싱턴 로펌인 윌리엄스&코널리의 파트너 변호사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예일대 로스쿨 동기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외교안보분야 보좌관을 지냈고 남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앤서니 레이크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 교수다. 케네디 시절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헨리 키신저가 이끌던 NSC에서 근무하다 닉슨 대통령의 베트남전 확전 결정에 반대해 사임했다.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역임했다.

수전 라이스

클린턴 행정부 국무부에서 아프리카담당 차관을 지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다. 수단 내전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며, 국제적 빈곤문제를 미국의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대선캠프에서도 수석외교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마크 리퍼트

오바마 상원의원실의 외교분야 보좌관 출신으로, 그전에는 패트릭 리히 버몬트주 상원의원(법사위원장) 외교안보 보좌관을 지냈다. 해군 정보장교로 이라크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다. 안보정보와 예산문제를 전담하고 있다.

물론 이매뉴얼에게도 오바마 백악관의 비서실장 자리는 정치적 도박에 가깝다. 현재 민주당 하원 서열 4위, 이대로 가면 하원의장도 가능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그가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은 분명 결단이다. 바로 그 때문에 대통령과 동향인 그는 특별한 실수가 없는 한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훨씬 능가하는 강한 권위와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매뉴얼이 이스라엘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올 정도로 철저한 친(親)이스라엘주의자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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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재 미국변호사·정치컨설턴트 kyj@one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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