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에서 본 2층집. 대문이 없고 담은 1m 높이의 관목이 대신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큰 부자가 아니어도 애는 셋 정도씩 낳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면서 살았잖아. 그런데 요즘에 서울에서 애 셋 낳고 마당 있는 집에서 개 키우고 산다면 굉장히 잘사는 집 아닌가? 그런 거 보면 국가 전체는 30년 전보다 잘살게 된 게 사실이지만, 과연 우리 개개인의 삶은 높아진 생활수준만큼 행복해진 게 맞나 의심스러워.”
영국 집으로 이사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던 건 바로 이 말이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잘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문제라는.
지난 6월 중순, 9개월간 살던 플랫(Flat·연립주택 같은 구조의 3~4층 집합주택)을 떠나 2층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 이사에는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긴 사연이 얽혀 있다. 그리고 짐을 싸서 옮기는 이사의 과정도 한국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결행하고 난 지금, 나와 내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사를 전후해서 내가 겪어야 했던 무지막지한 고생이 약간이나마 보상되는 듯싶다.
플랫 1층에 살고파라
긴 사연을 대강 설명하자면 이렇다. 유학생들은 대개 영국에 처음 오면 기숙사에서 살거나 집을 세낸다. 혼자 오는 유학생이라면 대부분 학교 가까이에 있고 집세도 싼 기숙사를 선호하지만 나같이 가족이 딸린 사람들은 가족용 기숙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셋집을 알아봐야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부동산’에 가서 집을 찾는 것이다. 영국, 아니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는 ‘전세’가 없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집을 렌트한다’는 건 매달 월세를 내고 집을 빌린다는 의미다. ‘디포짓(Deposit)’이라고 해서 한 달이나 두 달분의 집세를 미리 내고 집을 나갈 때 돌려받는 금액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영국의 셋집은 모두가 월세다.
월세 금액은 집의 상태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런던 같은 곳에서는 사람이 살 만한 집이라면 최소한 1200파운드(220만원) 정도의 월세는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시골 도시인 글래스고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500파운드(90만원)에서 700파운드(125만원) 사이면 그럭저럭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다.
여기서 ‘살 만한 집’이란 방이 두 칸 있고 거실이 하나, 식당이 하나 있는 플랫이나 하우스를 의미한다. 영국의 셋집은 대개 ‘Furnished House’라고 해서 침대 책상 의자 식탁 등 살림에 필요한 가구들이 전부 갖춰져 있다(심지어 그릇과 냄비, 숟가락까지 다 있다). 세간살이가 모두 구비된 점을 따져보면 방 두 칸짜리 플랫의 월세 100만원은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글래스고에 와서 구한 집도 월세 650파운드의 방 두 칸짜리 플랫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 플랫에서 채 한 달도 살기 전에 이 집이 우리에게 적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영국 플랫의 방음 구조, 특히 층간 소음 문제는 한국에 비하면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윗집과 아랫집의 쿵쿵대는 발소리, 물 트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책 떨어뜨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그러니 매일 싸우고 뛰고 울고 소리 지르는 게 일과인 희찬, 희원이를 키우는 내 처지에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우리는 영국에 오기 전부터 플랫의 형편없는 방음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기를 쓰고 플랫의 1층(영국식으로 따지면 0층. 영국에서는 1층을 0층이라고 하고 우리 식의 2층을 1층이라고 한다)을 찾아 헤맸지만, 이상하게도 부동산시장에서 플랫 1층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