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남성→여성 性전환 복싱선수 女대회 출전 허용

[잇츠미쿡] 美 대선 앞두고 트랜스젠더·여성 스포츠 사이 논란 불거져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4-02-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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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레이디 볼러스’로 불붙은 트랜스젠더 선수 공정성

    • 남성 땐 성적 저조했던 선수, 성전환 후 여자수영대회 제패

    • 여성선수들 “트랜스젠더 여성대회 참가 불공정” 반발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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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 전 고등학교 남자농구팀을 이끌고 미국 테네시주 리그에서 우승까지 하며 잘나갔지만 현재는 드래그 퀸(drag queen) 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별 볼일 없는 전직 농구감독 롭(Rob). 그가 우여곡절 끝에 왕년의 우승팀 농구부원이자 이제는 30대가 된 제자들을 끌어모아 다시 한번 농구 리그에 도전한다. 놀랍게도 롭이 이끄는 농구팀은 연전연승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감독인 롭이 시키는 대로 고교 시절 주(州) 남자농구 리그에서 우승했던 팀원들은 모두 자신들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이 여성이라고 선언한 뒤 여자농구 리그에 출전해 상대팀 여자선수들을 무자비하게 압도하며 이겨버린다.

    여자복싱 뒤흔든 트랜스젠더 규칙

    이 황당한 얘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다. 2023년 말 미국에서 개봉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레이디 볼러스(Lady Ballers·숙녀 농구선수들)’의 스토리다. 육체적으로 남성이지만 성정체성이 여성이라고 선언한 ‘트랜스젠더 선수’가 여성 스포츠에 뛰어들어 휩쓸어버린다는 이 영화는 우파 성향 매체 데일리와이어(The Daily Wire) 웹사이트를 통해 2023년 12월 1일 개봉됐다. 영화 개봉 한 달이 되던 12월 말. 미국복싱협회(USA Boxing)가 2024년 1월부터 적용되는 경기규칙(rule book)을 발표하자 영화가 불러일으켰던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미국복싱협회 새로운 경기규칙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복싱 경기 출전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2023년 말 미국에서 개봉해 트랜스젠더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레이디 볼러스’ 포스터. [데일리와이어 플러스]

    2023년 말 미국에서 개봉해 트랜스젠더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레이디 볼러스’ 포스터. [데일리와이어 플러스]

    미국복싱협회 웹사이트에 공개된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복싱 경기 출전 규칙은 18세 이상인 경우에 적용된다. 18세 미만인 경우엔 태어난 성을 따라야 한다고 제한했다. 육체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트랜스젠더라고 해도 18세 전에는 남성 경기에만 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8세 이상인 경우엔 몇 가지 단서를 달아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복싱 경기 출전을 허용했다. 첫째, 성정체성이 여성이라고 선언해야 하고 성전환 수술을 완료했어야 한다. 둘째, 수술 후 최소 4년 동안 분기별 호르몬 수치 검사를 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미국복싱협회에 제출해야 한다. 셋째, 여성 경기에 출전하기 전에 최소 4년 동안, 그리고 경기에 출전하는 기간 내내, 혈중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가 리터당 5 나노몰(nmol/L)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규정에 응하지 않으면 여성 경기 출전 자격이 12개월 정지되며 그 후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다시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받아야 한다. 미국복싱협회는 남성의 경우 정상 테스토스테론 수치 범위가 10 나노몰을 초과해야 하고, 여성의 경우 3.1 나노몰 미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복싱협회의 이번 발표는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비판하는 진영에선 남성으로 사춘기를 지낸 뒤 성정체성을 여성으로 선언한 트랜스젠더 선수는 성전환수술을 받고 호르몬 수치를 규제한다 해도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 선수에 비해 물리적으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골밀도와 근육량을 포함해 남성 사춘기 동안 발달한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복싱처럼 육체 접촉이 많은 운동에선 상대에게 타격을 입혀 생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성전환수술과 호르몬 수치 규제만으로 육체적 하드웨어의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2016년 미국 여자복싱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현역 복서 미카엘라 마이어(Mikaela Mayer)는 미국복싱협회의 관련 규칙이 공개된 2023년 12월 30일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호르몬 치료는 현재 금지돼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불법인 데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복싱 출전은 공정한 경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종합격투기 UFC 스타 콜비 코빙턴(Colby Covington)은 1월 4일 인터넷방송에 출연해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이건 비윤리적이고 위험하다. 나는 (생물학적 남성 선수와 격투를 하다가) 누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 여자복싱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현역 복서 미카엘라 마이어. [뉴시스]

    2016년 미국 여자복싱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현역 복서 미카엘라 마이어. [뉴시스]

    미국복싱협회 결정을 옹호하는 진영에선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해선 안 된다”며 대체로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생리적 차이는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수술 요구 같은 규제를 통해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성정체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랜스젠더 권리를 더욱 강경하게 요구하는 측에선 호르몬 수치 규제와 성전환수술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권리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단체인 운동선수동맹(Athlete Ally)은 웹사이트에 발표한 성명에서 “호르몬 규제와 성전환수술 의무 조항이 트랜스젠더 선수의 존엄과 자율성을 침해하며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 여자수영을 제패한 트랜스젠더

    복싱 이전에도 여성 스포츠계에서 트랜스젠더 선수 논란은 지속돼 왔다. 대학수영이 대표적이다. 2022년 3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수영대회 여자 자유형 500야드(457.2m)에서 펜실베이니아대 수영선수 리아 토마스(Lia Thomas)가 우승했다. NCAA 스포츠를 통틀어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트랜스젠더 선수였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윌리엄 토머스라는 이름으로 같은 대학 남자수영팀 선수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성정체성이 여성이라고 선언한 뒤 테스토스테론 억제 치료를 거쳐 2021년부터 여자팀 선수로 뛰었다. 성기를 바꾸는 성전환수술은 받지 않았다. 펜실베이니아대는 남자수영팀 선수이던 토머스가 트랜스젠더라고 선언하자 그가 여자팀 선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같은 대학 여자수영팀 선수들에게서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남자수영팀 선수로 활동한 2018~2019 시즌 자유형 500야드 65위를 기록한 토머스는 여자수영팀에서 활동한 2021~2022 시즌엔 같은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NCAA 수영대회 우승 이후 불공정 경쟁 논란이 커지자 2022년 5월 31일 ESPN 인터뷰에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성을 바꾼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진실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 스포츠에서 경쟁하는 게 여성 스포츠 전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3년 12월 5일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연방하원 감독위원회(Oversight Committee) 청문회. 하원 다수당 공화당이 주도한 청문회 주제는 ‘트랜스젠더 선수로 인한 여성 스포츠의 위기’였다. 청문회에는 과거 켄터키대 여자수영팀 선수로 리아 토머스와 경쟁하던 라일리 게인스(Riley Gaines)가 출석했다. 그는 리아 토머스가 NCAA 자유형 500야드에서 우승한 대회에서 자유형 200야드 경기에 출전해 리아 토머스와 공동 5위를 차지한 엘리트 수영선수다.

    2022년 3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수영대회 여자 자유형 500야드(457.2m)에서 우승한 펜실베이니아대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Lia Thomas). [뉴시스]

    2022년 3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수영대회 여자 자유형 500야드(457.2m)에서 우승한 펜실베이니아대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Lia Thomas). [뉴시스]

    라일리 게인스는 트랜스젠더 선수와 연방 수정교육법(Education Amendments of 1972) 9조에 대해 발언했다. 트랜스젠더 선수와 관련된 쟁점엔 육체적으로 남성인 트랜스젠더 선수가 여성 선수들과 같은 탈의실을 사용하도록 해야 하느냐의 논란이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수정교육법 9조를 둘러싼 논란이기도 하다. 수정교육법 9조는 연방정부에서 돈을 지원받는 학교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성에 기반한 차별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내용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K-12), 그리고 대학까지 연방정부 지원을 받는 교육기관은 모두 수정교육법 9조를 지켜야 한다.

    차별 금지인가 공정경쟁 금지인가

    대학의 경우 학교는 대부분 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남성 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학생과 여성 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학생은 차별 없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에서 수정교육법 9조에 대학들이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육체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여성 선수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고, 육체적으로 남성이었던 적이 없는 여성 선수 중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선수에게 가야 할 재정 지원이 트랜스젠더 선수에게 가기 쉽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트랜스젠더 교육매체인 에듀케이션위크(Education Week)가 2023년 9월 20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바이든 정부는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에 대한 차별 금지를 포함한 수정교육법 9조 규정 발표를 미뤄오고 있다. 당초 바이든 정부는 2021년 수정교육법 9조의 성차별 보호 대상에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or questioning) 학생을 포함했고 이후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를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23개 주에서 주법으로 트랜스젠더 선수가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성정체성에 기반한 팀에서 활동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즉 바이든 정부의 수정교육법 9조 규정 최종 발표가 나오면 연방정부를 상대로 하는 주 정부의 소송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수정교육법 9조와 관련한 여러 매체의 보도를 보면, 바이든 정부가 최종 발표를 미뤄온 건 비판 여론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의회 청문회에 나온 라일리 게인스는 리아 토머스의 사례를 언급하며 수정교육법 9조의 성차별 금지가 트랜스젠더 선수에게 적용되는 건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2023년 3월 26일 ESPN이 여성 역사의 달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으로 리아 토머스 스페셜을 방영하자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다. “리아 토머스는 내셔널 챔피언 타이틀을 얻은 용감한 여성이 아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성으로부터 상을 훔친 거만한 사기꾼이다. 내가 만약 ESPN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그만두고 나올 것이다. 당신들은 줏대가 없다.”

    미국의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 논란에는 두 주장이 맞붙는다. 한쪽에는 ‘남성이었던 여성 선수’가 그렇지 않은 여성 선수와 경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쪽에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으로 포용해야 하기 때문에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민주당 바이든 정부는 후자의 편에 서서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민주당 유권자 기류는 심상치 않다. 수정교육법 9조 규정 추진 방안이 공개되고 한 달 뒤인 2023년 6월 갤럽 유권자 조사에선 트랜스젠더 선수가 성정체성을 따르게 해줘야 한다고 답변한 민주당 유권자는 47%로 2021년 조사에서 나온 55%에서 8%포인트 하락했다. 태어난 생물학적 성에 따라야 한다는 민주당 유권자는 41%에서 48%로 7%포인트 상승했다.

    2023년 말 개봉된 영화 ‘레이디 볼러스’를 시작으로 미국복싱협회 발표로 불붙은 트랜스젠더 선수와 여성 스포츠 논란의 결말은 어디로 가게 될까.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정부는 어떤 정책, 누구를 위한 정책을 택할 것인가.



    잇츠미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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