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90세까지 산다면 ‘Power Years’는 맨 끝 30년” [+영상]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前 駐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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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3-04-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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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 준비는 자기 성찰이 가장 중요

    • 인간관계는 ‘사회적 자산’이자 ‘또 다른 나’

    • 외교는 단호함과 신중함의 조화 필요

    [+영상] 오준 전 유엔대사가 말하는 일과 삶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조영철 기자]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조영철 기자]

    4월 4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21번째다. 3월 31일에는 한국 정부가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했다. 북한인권보고서는 2016년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2017년 이후 해마다 제작해 왔지만 보고서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 공개에 앞서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제라도 북한인권법이 제대로 이행돼야 할 것”이라며 “이번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북한 인권의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인사가 주(駐)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를 지낸 오준 전 대사다.

    “먼 훗날 오늘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던 2014년, 북한 인권 문제가 최초로 안보리 정식 의제로 채택됐다. 그해 12월 22일 회의에서 오준 당시 주유엔대사는 북한 인권에 대한 명연설로 회의장을 숙연하게 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북쪽에는 대한민국 수백만 명 이산가족의 가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 적힌 인권침해의 참상을 읽을 때 우리는 마치 그런 비극을 함께 당한 것처럼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유엔 안보리에서 행한 감동적 연설은 국제사회뿐 아니라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며 북한 인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명연설이 큰 몫을 차지했다.

    오 전 대사는 2015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2016년 3월 2일 안보리에서 대북제재결의안이 통과됐을 때는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앞장섰다.

    1991년 외무고시 12회로 공직에 진출한 이후 37년간 외무공무원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 온 그는 2017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하반기부터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을 맡아 외교관 시절 못지않게 활발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4월 7일 서울 마포구에서 오준 이사장을 만났다.

    2016년 북한 핵실험 이후 오준 당시 주유엔 한국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2016년 북한 핵실험 이후 오준 당시 주유엔 한국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떤 기관이고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올해로 창립 104년이 되는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NGO(비정부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19년 에글렌타인 젭 여사가 1차 세계대전 이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구호하기 위해 창설했어요. 1923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만든 아동권리선언을 이듬해 국제연맹이 채택한 것이 세계 최초 아동 권리 선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세이브더칠드런 역사와 아동 권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과는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됐나요.

    “외교부에서 퇴직하면 NGO와 대학에서 활동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세이브더칠드런의 활동을 지켜봐 왔고, 한국 세이브더칠드런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좋은 NGO라는 생각에 2018년 하반기부터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 어린이가 처한 상황은 어떠하다고 봅니까.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영양부족이나 기아, 의료혜택 부족 같은 개발도상국형 문제에서는 많이 벗어났어요. 그렇지만 학대나 결손가정 같은 선진국형 아동 문제가 늘고 있는 추세예요.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아동이 느끼는 행복도는 오히려 떨어진 상황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 때다. 전쟁고아 등 피해자 구호 활동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아동 권리 증진을 위한 캠페인, 위기 가정의 아동을 지원하는 것이 세이브더칠드런이 주로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탈북자와 이민자가정 아동 등을 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 세이브더칠드런은 국내 아동 지원은 물론 회원국과 함께 개발도상국 아동 지원도 하고 있다. 1996년 내몽골 교육 사업이 최초 해외 아동 원조 사업이다. 한국 세이브더칠드런은 세이브더칠드런 역사상 수혜국에서 원조국이 된 최초 사례다. “우리가 아이를 구하면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슬로건이 현실화한 대표 사례가 대한민국인 셈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전쟁 중인 나라의 어린이를 지원하는 활동도 하나요.

    “우크라이나 어린이 지원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소를 설립하고, 아동과 그 가족을 위해 인도적 지원 활동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직후에는 전 세계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아동을 위한 긴급 모금을 함께 시작해 1900만 달러(한화 230억 원)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펼쳤어요.”

    북한 어린이를 위한 활동 계획도 있습니까.

    “2018년 이전에는 홍수 피해 지원과 탁아소 환경 개선 사업 등 북한 아동을 돕기 위한 여러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다른 국제 NGO와 함께 북한 사업에서 철수했고 아직 복귀하지 못 한 상황입니다.”

    오준 이사장은 “아동은 인류의 미래”라며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 인종을 떠나 전 세계 아동은 누구나 보호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세종, 전주 등 전국 5개 도시에서 식량위기에 놓인 어린이를 돕기 위한 ‘국제 어린이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 참가비는 우간다 카라모자 지역 식량위기 지원과 예방 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카라모자 지역은 우간다에서 빈곤지수가 가장 높은 곳으로 인구 41%인 51만8000명이 식량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아동 인권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아동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 모든 아동이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사업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老馬知路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이 2019년 네팔 롤파 지역 사업장을 방문했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이 2019년 네팔 롤파 지역 사업장을 방문했다.

    화제를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에서 유엔대사를 지낸 ‘외교전문가 오준’으로 옮겼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외정책 기조가 전임 문재인 정부와 크게 달라진 모습입니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 대북정책 등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조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까.

    “문재인 정부 대외정책이 남북관계 개선에 지나치게 치우쳐 왜곡된 부분이 있었기에 그러한 점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됩니다. 다만 한반도 평화라는 큰 목표는 힘의 우위만으로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대위변제 방식으로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일본 측에서 1965년 한일협정으로 정리가 됐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측 대법원 판결 이후 해법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 등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은 대체로 맞는 방향 인식입니다. 다만 우리 기업의 재원 조달에 의한 배상이라든지 하는 구체적 방법은 좀 더 신중하게 협상을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외교관으로 37년 일하면서 얻은 교훈은 ‘외교에서는 단호함과 신중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이 됐습니다.

    “2019년부터 4년간 우리가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습니다. 요즈음 유엔 총회나 인권이사회 모두 북한 인권결의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하기 때문에 공동제안국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별도의 지지 표명 기회가 없습니다. 또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다가 빠지는 것은 입장 변경이므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한반도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한 것은 인권 문제에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건가요.

    “인권결의안 내용에 있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관련 사항이나 서해공무원 사건, 북송 선원 사건 등을 계기로 추가한 내용은 북한 인권과 관련한 이번 결의안이 최근의 진전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는 취지로 볼 수 있습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려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국은 우리 스스로의 입장을 정리해 미·중 양측에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우리 입장을 이해시키는 방법 외에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한미동맹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미국에는 중국에 대한 수출 등 우리의 핵심 경제문제에 대해 미국 측이 양해하도록 설득해야겠지요.”

    고도화하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까.

    “올해 안에 북한이 7차 핵실험까지 단행해 도발이 최고조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식량위기 등을 감안하면 그 후에는 미국과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한 대처가 중심이 되겠지만, 평양의 체면을 살려줘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할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마지로(老馬知路, 늙은 말이 길을 안다)라고 했던가. 37년 관록의 외교전문가는 어떤 물음에도 막힘없이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백전노장의 지혜가 외교안보 일선 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의 후배들에까지 전달돼 대한민국 국익 극대화라는 외교 결실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건강, 인간관계, 두 번째 직업

    다시 대화는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그의 현재 삶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20년쯤 전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이던 ‘The Power Years’라는 책이 있어요. 인간 수명을 최장 90세로 보고 인생을 3등분해 첫 30년은 교육, 두 번째 30년은 첫 직업, 마지막 30년은 두 번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마지막 30년은 인간관계의 폭도 넓고,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상황에서 맞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가 이른바 황금기라는 ‘Power Years’가 아닐까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도 연장돼 무엇을 하든 과거보다는 10년 정도 더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 삶이 황금기인 까닭은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죠. 퇴직하고 나서 9시 출근, 6시 퇴근이 요구되는 자리를 제안받은 적이 있습니다. 거절한 가장 큰 이유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자리를 무조건 지키는 상황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버킷 리스트’ 같은 게 있나요.

    “은퇴 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NGO 활동과 대학 강의는 다음 세대와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저 스스로 어떻게 하는 것이 제한된 시간에 좀 더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나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모색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버킷 리스트인 것 같습니다.”

    현역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습니까.

    “은퇴 후 갖게 될 두 번째 직업을 첫 번째 직업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직업 선택 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준비했듯이 두 번째 직업도 그처럼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진출을 앞둔 20대에는 어떤 직업을 가질까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도 길게 하지 않습니까. 은퇴 후 두 번째 직업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직업의 연장선에서 사무실과 월급 주는 곳에서 자문역을 하면 길어야 2∼3년이고 그 이상 지속하기 힘듭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필요하다면 재교육을 받아 두 번째 직업을 충분히 준비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2∼3년이 아니라 2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될 수 있으니까요.”

    인생 2막을 알차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꼽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졸업 후 사회에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 자기 성찰(soul-searching)’이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일은 자기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인생 2막을 준비할 때도 그런 자기 성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인간관계와 건강도 중요합니다. 퇴직하면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중요치 않은 듯 생각하는 분을 가끔 보는데,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인간관계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온 ‘사회적 자산’이자 ‘또 다른 나’ 아닌가요. 인생 2막을 풍요롭게 해주는 게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않다면 하고 싶은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건강을 유지하고, 좋은 인간관계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에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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