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개월간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남재준 육참총장이 전역한 직후 종결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 수사를 주도했던 군법무관들은 만기제대, 변호사 개업을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사건에 대한 ‘신동아’의 심층취재도 막을 내릴 것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것은 육본 문서 ‘간사의 임무’를 통해 본 진급심사체계의 이면이다. 간사란 갑·을·병 진급추천위원회(이하 진급추천위)와 선발심사위원회(이하 선발심사위), 4개 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에 참석해 심사위원들에게 참고자료를 건네주고 총장의 지침을 설명하는 등 심사를 보조하는 장교다.
대령-준장 진급심사의 경우 중령인 진급계장이 주 간사를 맡고 그의 지휘를 받는 소령급 간사 세 명이 갑·을·병 진급추천위에 한 명씩 들어간다. 또 선발심사위에는 준장인 인사관리처장(일명 진급처장)이 간사로 배석한다. 인사통인 군 관계자는 “어차피 자력(自力·경력, 근무평정 점수)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간사의 평이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간사의 임무’에 따르면 간사는 사전에 내정된 유력 진급대상자들이 심사위에서 추천되도록 심사에 적극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심사위원들을 ‘유도’하고 ‘통제’하고 압박함으로써 ‘반란표’가 나오지 않게 한다. 간사가 왜 이런 임무를 맡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번 수사의 쟁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총장의 인사 재량권
무릇 세상사에는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두 면을 다 봐야 한다. 어느 한 면에 집착하거나 다른 면을 무시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할 가능성이 높다. 육군장성진급비리수사를 둘러싼 육본과 군검찰의 갈등은 바로 이런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면도 있다.
보이는 면만 놓고 말하면 육본의 주장도 맞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급대상자를 추리고 심사하고 선발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진급비리인 뇌물수수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들어 ‘무리한 수사’라고 항의하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군검찰이 기존 관념으로는 시빗거리에 지나지 않는 ‘관행’을 수사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군검찰의 칼끝은 진급심사체계의 이면을 겨누고 있다. 군검찰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며 육본의 주장을 평가절하 한다. 또한 육본의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거나 부차적인 문제를 부각시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어이없어한다. 사태의 본질과 상관없는 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군검찰이 문제를 삼은 것은 육본 진급관리과(이하 진급과)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무자료를 마치 인사검증위원회(이하 인사검증위)를 거친 공식자료인 것처럼 꾸며 심사위에 제출한 것이다. 그것도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는 선별적용방식으로(‘신동아’ 2005년 3월호 참조). 또한 진급과에서 심사위에 자료를 제출하면서 일부 진급대상자들의 비위기록을 고의로 누락해 공정한 심사를 방해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것이 바로 공소사실의 핵심인 허위공문서 작성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군검찰도 보이는 면에만 집착했는지 모른다. 어느 조직에든 인사권이라는 것이 있다. 인사권은 포괄적인 개념이라 법의 잣대로 재기에 곤란한 면이 있다. 상명하복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군이라는 특수집단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군검찰 수사는 육군참모총장의 인사 재량권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만약 육본이 밖으로 드러난 진급심사시스템만 열심히 설명할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총장의 인사 재량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했더라면 자칫 군검찰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남재준 총장이 인사잡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그렇지만 총장의 인사권을 존중해달라. 실무자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총장의 인사지침을 따른 것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은 앞으로 개선하겠다”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말이다. “시스템이 인사했다”는 비현실적인 얘기를 할 게 아니라.
그런데 육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군검찰의 ‘법률적 추궁’이라는 구체적 질문 앞에 총장의 인사 재량권이라는 추상적 답변을 내놓는 순간 ‘관행적 비리’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해서였을까. 그래서인지 육본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진급심사절차를 하나하나 따지며 시시비비를 가려보자고. ‘법적으로는 (군검찰이) 쉽지 않을 텐데’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