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당장의 지지율보다 신념에 따라 움직여
대통령 심기만 살피는 정당엔 미래 없다
親尹들은 실패한 나처럼 당 이끌어선 안 돼
호남 민심이 민주당 떠나고 있는데…
전주을 재선거 패배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영상] 윤석열과 ‘나’ |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 [홍태식 객원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남긴 말이 아니다. 7년 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전 의원의 발언이다. 평행이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올해 3월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2016년 8월 7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닮았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지도부를 장악했다.
7년 전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던 시점이었다. 2016년 초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40%로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13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며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8%. 친박계는 “분열을 막겠다”며 당권을 잡았다.
반전은 없었다.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횡보했다. 현 정부의 지지율 등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던 2016년 11월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으로 당 지도부가 채워진 지금, 보수정당이 전례를 답습하지는 않을까. 4월 7일, 7년 전 당대표이던 이 전 의원을 만났다. 그는 앉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간 대통령들은 높은 지지율을 깎아먹으며 국정을 운영해 왔다. 윤 대통령은 다르다. 최초로 앞으로의 집권 기간 내내 지지율이 오르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에서 나오길 백번 잘했다
용산 대통령실 전경. [동아DB]
“지금이라도 지지율은 올릴 수 있다.”
비책이 있나?
“비책이랄 게 있나. 이전 정부가 했던 일을 답습하면 된다. 국고 열어서 선심성 정책을 펴면 당장 지지율이 소폭 오를 것이다. 그런 방법을 쓰면 지난 정부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다르다?
“당장 지지율보다는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 근로시간 개혁, 한일관계 정상화, 연금 개혁 등 지지율을 얻기 어려운 일에만 손을 댄다. 당장은 지지율을 잃겠지만 이 정책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조금씩 오를 것이다.”
이 전 의원의 칭찬은 의외다. 윤 대통령은 그의 적이었다. 2017년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을 맡았다. 이 전 의원이 ‘모시던’ 박 전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내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가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탄핵 직전까지도 “입증된 사실이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엄호했다.
어떤 계기로 윤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게 됐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평가가 갈리지만 나는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십 년 정치하며 생각도 못 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 전 의원은 1988년 민주정의당(현 국민의힘) 특채로 당직자가 됐다. 2008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오르기까지 당내 전략분석실, 대변인실을 돌며 일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이다. 청와대 비서들 외에는 대통령이 현안을 들을 통로가 없다. 결국 비서진 중심으로 정부 대소사가 결정된다. 비서진이 보고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이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청와대 비서실이 요직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만큼 권력이 집중된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은 청와대라는 권력을 해체하고 더 가까이서 민심을 듣겠다는 의미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것이 지난해 5월이다. 지지율은 그 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청와대는 밖의 소식을 듣기 어렵고 내부 소식이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구조다. 내부에서 정책 결정을 하더라도 그 정책이 실행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용산 대통령실은 다르다. 정책 실행의 공을 각 부처에 돌리는 구조다. 당연히 대통령의 인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신 그만큼 민생은 빠르게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청와대에 남았으면 대통령은 지금보다 쉽게 지지율을 관리했을 것이다. 민생을 위해 이를 포기한 셈이다.”
대통령이라면 언행에 더 신경 써야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은?“말과 태도가 불안하다.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자리를 빌려 하겠다. 대통령은 개인이기 이전에 하나의 국가 기관이다. 개인적 감정이 태도나 말로 드러나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여러 번 설화(舌禍)를 겪었다. 지난해 9월 미국 방문 중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하면서 비속어를 썼다는 의혹이 있었다. 올해 1월 15일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을 격려하면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1월 15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의 UAE 파병 부대인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실]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개인의 발언이 아니다. 국가 기관의 성명과도 같다.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보좌 및 참모진과 확실히 약속된 이야기만 하는 편이 좋다.”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모습도 필요하다.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려다 실수하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의 태도다. 실수라면 빠르게 사과하면 별일이 아니게 된다. ‘그런 말 한 적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며 버티다가 손해가 커진다. 이 부분이 안타깝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당과 대통령이 일심동체가 된 셈이다. 앞으로 정권의 행보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보나.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비교적 거리가 먼 사람들이 당권을 잡아야 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됐다면 최악이다. 당 내부에서 대통령을 공격하면 공멸이다. 여당은 대통령을 돕는 집단이다. 대통령과 싸우는 집단이 아니다. 여당 내에서 대통령과 싸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게 맞다.”
그렇다면 지금의 지도부가 최선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들도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 전 의원은 한숨을 쉬며 답변을 이어갔다.
“여당은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이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충언도, 고언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당은 대통령을 그저 올려다보고 있다.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다.”
나는 실패한 당대표였다
당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정책을 잘 시행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음 대선 후보를 내놓고 당선시키는 것이 당의 책무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당대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해서는 당과 정권에 미래는 없다.”
어떤 부분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나.
“지도부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정치적 실적보다는 대통령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 사람이 많다. 전당대회를 치르며 이 같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당대회 국면에서 특히 아쉬웠던 부분은?
“당을 어떻게 바꿀지보다 당 내부의 다툼이 더 뉴스가 됐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전당대회에서 당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설명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서로 물어뜯기 바빴다. 일부 정치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대통령의 눈에 들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당권을 잡을 수는 있어도 민심을 잡을 수는 없다.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과는 한 발짝 더 멀어진다.”
7년 전에는 어땠나.
“그때도 비슷했다. 국민들은 보수정당을 미워했다. 당은 확실한 대선후보를 내놓지 못해 정권을 놓쳤다. 비슷하게 실패해 봤으니 어디가 잘못됐는지 짚을 수 있다.”
언제쯤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직 정권 초기다. 시간은 많다. 의지의 문제다.”
당이 어떻게 변해야 하나.
“당면 과제는 총선이다. 공정한 공천 규정을 만들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당과 대통령이 함께 살 수 있다.”
공정하다는 말은 모호하다.
“이길 수 있는 공천이 공정한 공천이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정치인의 실력을 측정할 방법이 있나.
“좋은 방법이 있다. 여의도에서는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최근 TV를 보며 떠올렸다.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면 된다. 국민이 뽑을 국회의원이니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공천에 반영하자는 이야기인 것 같다. 공천에서 당원 외 의견을 반영하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야당 지지층이 약세 후보를 지원하는 이른바 ‘역선택’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나훈아, 설운도 등 원로들만 맛깔나게 트로트를 부를 줄 안다고 생각했다. 최근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젊은 가수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오히려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 판을 이끌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잘 모를 뿐이지 재야 혹은 당직자 중 역량을 가진 사람이 숨어 있다. 민심을 반영하는 공천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동시에 보수정당을 한 걸음 더 발전시킬 기회다.”
이 대목에서 이 전 의원은 “당도 당이지만 대통령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행을 조심하는 것 외에 어떤 부분에 신경 써야 할까.
“대통령도 당내 의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국회의원이다. 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당내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자유로운 토론이 어려운가.
“대체로 가능하다. 다만 각 부처 장관과 당의 의견이 다를 때도 토론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호남 포기를 멈춰달라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에는 ‘호남’도 있다. 2014년 재·보궐선거 때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했다.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직을 던지고 호남으로 내려갔다. 결과는 당선. 호남 지역에서 보수정당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은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최초였다. 이후 재선에도 성공했다. 호남 이야기가 나오기가 무섭게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다. 호남을 다시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당에 부탁한다. 제발 호남 포기를 멈춰달라.”
왜 호남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나.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8.0%를 득표했다. 2위도 아니고 5위다. 당이나 대통령이 관심이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호남지역 득표율은 전북 14.4%, 광주 12.72%, 전남 11.44%로 10%를 모두 넘겼다.
약세 지역이라 신경을 덜 썼다고 보나
“약세 지역이라는 분석 자체가 잘못됐다. 호남 민심이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 투표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북, 전남, 광주는 늘 7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표가 전부 민주당을 향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투표율은 전남 58.4%, 전북 48.6%, 광주 37.7%를 기록했다.”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민주당 지지를 망설인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전주을 선거만 봐도 알 수 있다. 원외 정당인 진보당 후보가 당선했다. 조직이 훨씬 크고 인력이 많은 국민의힘은 이 기회를 눈뜨고 놓쳤다.”
의석 하나를 더 얻을 수도 있었다?
“이 자리는 단순히 의석 하나가 아니다. 호남 지역 보수정당 국회의원 당선의 의미는 크다. 당선만 했다면 국민의힘을 두고 더는 영남 지역정당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명실상부 국내 유일의 전국정당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다음 집권을 위해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일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오니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나 당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호남을 완전히 내려놓고 집권이 가능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남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대단한 지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공천할 때 당선 가능성 있는 인재를 호남에 보내주기만 해도 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나.
“당선이 어려우니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지원자가 없으니 함량 미달의 사람을 내세우거나 지역구 공천을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이정현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만 바라보는 당은 건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다시 호남에 도전하겠다
다음 총선 때도 호남에 출마할 계획인가.“무조건 호남에서 다시 출마한다. 호남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 보수정당이 호남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
지역구이던 순천에서 다시 출마하나.
“아직 정하지 않았다. 고민 중이다.”
지금 순천에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이 있다.
“지금처럼 순천광양곡성구례 지역구가 갑·을 두 개라면 모르겠지만, 이 지역구에 의원이 한 명만 나올 수 있다면 나는 천 위원장에게 양보할 생각이다. 나는 천 위원장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
이유가 있다면?
“천 위원장이 순천에 출마하겠다면서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서른네 살 젊은 변호사였다. 솔직히 ‘조금 하다가 말겠지’ 싶었다. 대구 사람인 데다 고려대 출신이다. 호남에 연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웬걸. 순천에 이사를 와버리더라. 아내도 변호사인데 부인과 같이 순천변호사회에 등록도 했다. 서울과 순천을 오가며 지역 관리에도 힘쓴다. 나이 든 정치인은 젊은 정치인의 진심과 패기를 응원하고 지지할 책무가 있다.”
이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도 당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내 5선 이상 중진 의원 중 자신의 계파를 이끌 만한 사람이 없다.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당은 건강하지 않다.”
그가 ‘모시던’ 박 전 대통령은 정계를 떠났으나 그의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호남에서 여전히 재기를 노린다. 2013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가신이 아니다. 나 스스로 바른 정치를 꿈꿨다. 능력 있는 인물을 통해 바른 정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박근혜의 가신이 아닌 정치인 이정현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신동아 5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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