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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이라더니 ‘상품 판매’!

‘기부 모금’ 사칭 주의보

‘후원’이라더니 ‘상품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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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급 150만+인센티브 ‘무제한’

첨단 IT업체가 모여 있는 서울 구로구 그 중심에 위치한 A타워에 H사 본점이 있다. 장애인단체와 같은 사무실을 쓴다. H사에서 모집한 후원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준다는 곳이 바로 이 협회다. 협회 홈페이지 하단을 보면 ‘H사 기부금 발급센터’라면서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안내한다.

본점 한 층 아래에 H사 지점 한 곳이 있다. 잠시 지켜보니 젊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가끔 젊은 남성들도 보였다. 2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통신판매원으로 근무 중인 듯했다. 전화 부스처럼 칸막이로 나뉜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하는 게 이들의 주 업무였다. 물론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아이들에게 교육 후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바로 옆 건물 9층, 그리고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K밸리 8층에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두 지점 모두 통신판매원으로 가득했다. 1개 지점에 20~30명이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구로구에 위치한 3개 지점에만 최소 60명에서 많게는 100명 가까운 통신판매원이 ‘후원 모금’을 내세워 전화 영업을 하는 셈이다. 다른 지점의 통신판매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 200~3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인력을 더 늘리기 위해서인지 지금도 여러 지점에서 상시적으로 통신판매원을 모집 중이다. 전문 인력업체를 통해서 뽑는 경우도 있고, 지점에서 직접 뽑기도 한다. 채용 정보에 따르면 주5일 근무에 월평균 수입은 150만~180만 원. 추가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돼 있다. 실제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소외계층 아이들이 교육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 안내 전화를 합니다.”

▼ 텔레마케팅 같은 거죠?

“네, 쉽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 급여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근속 개월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기본급은 평균 150만 원 정도고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에 차이가 있습니다.”

▼ 실적이라고 하면….

“후원 유치죠.”

▼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요.

“제한 없어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달라지니까요.”

“이건 해서는 안 될 일”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사업을 하는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취재원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지점을 직접 운영해봤다는 B씨는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놨다.

“지금 한 달에 7억~8억 원씩 번다는데, 이 사업이 통신판매업계에서는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어요. 본점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60~65%를 지점에 수당으로 떼주고, 본점은 나머지 35~40%로 직원 월급 주고 사무실 운영하는 거죠. 기부금 영수증에 대해서는 (장애인단체에) 3% 정도 수수료를 준다고 들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인가요.

“과거 텔레마케팅(통신판매업) 조직이에요. (H사를 포함해) 이미 3개 조직이 운영되고, 또 다른 조직이 새로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돈이 되니 점점 늘어나는 거죠.”

▼ 조직들이 서로 다 연결돼 있습니까.

“안양 쪽에서 H사 지점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은 ‘S사’라고 별도 법인을 차렸죠. S사 본점 영업을 따로 하면서 아직까지 H사 지점으로도 남아 있어요. H사 본점으로 자금이체 되는 후원금에 대해 수당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거죠.”

▼ H사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됩니까.

“실질적으로 들어와서 교육받는 아이들은 거의 없어요. 후원금 받아서 지점 수당 내려가고 사이트 운영 비용 들어가고…. 제가 (지점)할 때는 노량진 학원 등에서 동영상 강의 같은 것을 월 임대해서 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했거든요. (프로그램이) 형편없었어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대화가 끝날 무렵, B씨는 “직접 해보니까 이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털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H사와 비슷한 조직이 3~4개로 늘어났다면 그만큼 통신판매원 수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B씨의 말은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지난해 6월 안양에서 안산 단원구로 사무실을 옮긴 H사 안양지점을 찾아가봤다. 지점 사무실 주소지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바로 맞은편 골목길에 위치한 조그마한 건물. 외부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엘리베이터 입구 오른쪽에 S사와 또 다른 장애인단체 상호가 위 아래로 나란히 적힌 간판 하나가 붙었을 뿐이다. 그 어디에도 H사라는 표시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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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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