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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생들은 북한 국제화 마중물”

이승률 평양과기대 대외담당부총장

“우리 학생들은 북한 국제화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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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中 개혁개방 현장 본 김정일 “국제대학 세워달라”
  • ● 北 “우린 어떤 나라 지식도 배울 자세”
  • ● 北은 한국 교수 허용, 통일부는 방북 불허
  • ● 보수도 진보도 우리 대학에 편견
“우리 학생들은 북한 국제화 마중물”
북한에 한국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대학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양에 있는 국제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가 그것이다. 그나마 그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개 색안경을 끼고 본다. 보수 쪽에선 ‘해커 양성소’라는 의혹을 품고, 진보 쪽에선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이 세운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폄하한다.

이들은 왜 북한에 대학을 세운 것일까, 북한은 왜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대학 운영을 허락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이승률(67) 평양과기대 대외부총장을 만났다. 그는 한국 국적자 중에선 이 대학 최고위 인사다. (사)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평양과기대 지원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남북통일을 화두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들려준 평양과기대 이야기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공했다.

건설사(현 반도E·C)를 운영하던 그가 평양과기대와 인연을 맺게 된 건 그야말로 우연이다.

“1990년, 중국 칭타오에서 골프장 건설사업을 추진하던 중 양상쿤(楊尙昆)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아들 양샤오밍을 만날 일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약속이 겹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분이 연변과학기술대와 평양과학기술대를 만든 김진경 총장이다.”

미국시민권자인 김진경 총장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영국 유학 후 미국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당시 중국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그는 독립운동을 한 선친의 발자취를 찾아 지린(吉林)성을 방문했다 낙후한 조선족 사회의 현실을 목도하고, 전 재산을 털어 옌볜(延邊)에 조선족 청년을 가르칠 기술전문대학 설립을 추진 중이었다.



‘민족통합 교육캠프’ 연변과기대

이승률 부총장은 “‘대학 설립이 한중관계와 중미관계, 그리고 중국의 과학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조선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김 총장 말에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종교인으로 나름 세상의 선(善)을 위해 산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난 돈벌이를 위해 중국에 왔는데 이분은 자기 재산을 털어 동포를 돕겠다고 하니 부끄러웠다. 그 자리에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며 시작한 게 25년이 됐다.”

중국 최초의 사립대학인 연변과기대는 1992년 9월 개교했다. 한중수교가 한 달 전인 그해 8월에 이뤄졌으니 한중수교의 교육 분야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원래 2년제 전문대로 개교했다. 그런데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1년 후인 1993년 중국 정부에서 4년제로 격상해줬다. 연변과기대엔 조선족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학을 오고,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도 온다. 재일동포, 북한 견습생도 있다. 민족통합 교육캠프 노릇을 하는 셈이다. 한민족 공동체가 실현되는 대학이라 할 수 있다.”

한 학년에 500명 정도로 전체 재학생은 2000명에 달한다. 한국 유학생도 200명 쯤 된다. 그동안 7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3개 국어로 가르친다.

“중국의 국제화, 국제 인재 양성의 대표 모델이 된 것은 물론 특히 지역사회 발전 모델로 자리 잡았다. 옌지(延吉)시는 서울을 모델로 도시계획을 수립했는데, 이걸 우리 학교 교수들이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와 함께 만들었다. 훈춘(琿春)에서 나진·선봉으로 이어지는 물류 루트도 우리 학교가 개발했고,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만든 두만강 개발 프로젝트에도 우리 교수들이 참여했다. 세종학당도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연변대와 우리 대학에 만들어지는 등 한중교류와 국제사회 교류협력에 기여하며 중국 개혁개방의 창구 기능을 하고 있다.”

나진에서 평양으로

▼ 평양과학기술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원래는 1993년 나진에 대학을 세우려고 했다. 남북관계 개선, 민족화해, 민족 동질성 회복, 통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평양에 대학을 세우는 건 꿈도 못 꾸고 나진을 생각했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사랑의교회 옥한음 목사 등이 참여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물밑에서 추진되는 등 남북관계가 해빙 무드를 탈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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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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