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차 식단.
9월 21일 인바디 측정값(왼쪽)과 9월 26일 측정값(오른쪽).
기자인가 운동선수인가
8주차 운동.
샤워 후 거울을 보는 시간도 꽤나 즐거워졌다. 프로젝트 전엔 거울 보는 걸 즐기지 않았다. 보면서도 ‘이건 내가 아냐’라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할 수 있는 만큼 숨을 참아 배를 집어넣으며 ‘음, 아직은 괜찮아’라고 합리화를 했다. 이젠 점점 선명해지는 근육에 심취해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나르시시스트가 따로 없다.
잃은 것도 있다. 일단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살 빠졌네”라는 말 보단 “아파 보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카락도 급격히 많이 빠진다. 기력이 없다보니 짜증도 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9월 29일 촬영한 이현준 기자의 몸. [홍중식 기자]
나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노력했건만 반성하게 됐다. 본업에 대한 강박감보다 운동에 대한 강박감이 더 커진 듯하다. 바디프로필이라는 목표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을 안 하면 큰일이 날 것 같고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정해진 식단 외에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근래에 기사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적이 있던가. 당당히 “그렇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러한 강박감이 더 치열하게 프로젝트에 임하도록 도와준 부분도 없지 않다. 또 이 프로젝트도 엄연히 일의 일부다. 그럼에도 기자의 본분이 몸 만들기가 아닌 건 분명하기에 운동 중독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중독 치료에는 ‘야밤 등산’이 최고
9월 27일 오후 10시경 관악산 중턱. 플래시 켜기 전(왼쪽)과 후(오른쪽).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중턱쯤 다다르니 가로등마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다. 고민에 빠졌지만 그래도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뿐이었다. 운동에 대한 강박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기자는 사실 겁쟁이다. 플래시를 켜니까 더 무서웠다.
온 몸의 촉각이 곤두서고 숨이 가빠졌다. 공포에 뇌가 지배됐다. 얄궂게도 왜 이럴 때 공포영화의 장면과 괴담이 생각나는 건지. 저 어둠속에서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와 내 앞으로 돌진해 오진 않을까, 혹시 산짐승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떡하나,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줄 사람도 없을 텐데 등 별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환청까지 들렸다. “아-우-”하는 늑대소리와 누군가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100m도 채 가지 못해 등산을 포기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어 내려왔다. ‘이렇게까지 운동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중독엔 야산(夜山)이 특효약이다.
매번 명절 때마다 1.5㎏는 쪘지만
추석 연휴라는 장애물을 또 만났다. 기자는 설과 추석을 보낼 때마다 1.5㎏는 쪘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어찌나 맛있는 음식이 많던지. 음복(飮福)이라는 말만 놓고 보자면 복을 넘치도록 받은 셈이다. 제사 음식은 대개 고열량이다. 송편, 동그랑땡, 동태전 몇 개 집어먹다보면 섭취 열량이 1000㎉은 쉽게 넘고 만다. 이번 추석연휴는 박복(薄福)해야 한다. 차례음식과 결별을 선언하고 식단을 유지하리라고 다짐해본다.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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