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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자기 몸에 솔직할 수 없다면 자유롭지 않다는 거죠”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문단의 ‘여자 마광수’ 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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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에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요희가 바로 미실이다. 미실은 남편이 있는데도 진흥왕, 진지왕(진흥왕의 아들), 진평왕(진흥왕의 손자) 등 신라왕 3대를 성(性)으로 받들어 모신다. 반대로 수많은 미모의 화랑으로부터 성으로 받들어 모심을 받으며 이들과의 사통 관계에서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그처럼 미실은 단 한번도 권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옥새를 관장하고 화랑도의 원화(源花)가 되는 등 권세를 휘둘렀다. 이런 비도덕성과 음란성 때문에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는 논란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위작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화랑세기’가 사실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체위를 형상화한 토우(土偶)들만 봐도 신라의 성문화가 어땠는지 알 수 있잖아요. 사실 도덕적으로 음란하다는 건 참 웃기는 말이에요. 그때를 산 사람은 현실에 아무도 없는데, 누구도 모르는 세계를 지금의 잣대로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건 지어낸 이야기다, 소설이다’하는데, 소설가가 듣기엔 참 기분 나쁜 말이에요. 그들이 말하는 ‘소설’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뜻하잖아요. 하지만 진정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현실의 반영이죠. ‘그래, 그대들이 소설 같다고 하면 내가 정말 소설을 써서 보여주마’고 생각했어요. 인간사를 소설만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없거든요.”

풍만한 여체 속 치명적 매력

-그래도 왜 하필 미실입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과 차례로 관계를 맺고 수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거느린 미실의 남자관계가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데요.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성녀 아니면 창녀였어요. 하지만 미실은 두 경우에 다 해당하는 여성이죠. 미실은 아이를 여덟 명이나 낳아요. 어머니로서의 본능에도 충실했죠. 어머니이면서 여자였고, 사랑에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권력의 화신이기도 했어요. 사실 모든 여자들은 항상 ‘어머니로 살 것이냐’ ‘여성으로 살 것이냐’의 기로에 놓이잖아요. 어머니가 여성으로 살면 돌을 맞고, 여성이 어머니로 살면 성적 매력이 거세되죠. 하지만 여자들은 여성이면서 어머니로, 사랑에 모든 걸 걸면서도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갖고 싶어하거든요.

또한 미실을 지금의 삶과 도덕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돼요. 신라는 유교적인 도덕이 성립되기 이전의 시대였어요. 화랑도 사상에서 볼 수 있듯 아름다움과 풍류가 넘치는 삶을 살고자 했죠. 오히려 본능을 억누르는 게 죄악이었어요. 영웅이 많았고 남자들이 아름다웠죠. 간통과 같은 도덕적 금기는 물론 없었고요. 이와 같은 신라의 고유한 문화는 결국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모와 지략, 그리고 풍부한 여체 속 성적 매력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자 무기였어요. 그때는 열녀가 각광받던 시대가 아니었죠. 극히 자유롭게 생물학적인 본성에 따라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던 여인이 바로 미실입니다. 그는 소년을 남성으로 만드는 ‘스승’이기도 했어요.”

‘미실’을 읽다 보면 미실만 ‘문제 있는’ 여성이었던 건 아니다. 미실은 남편 세종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진흥왕의 부인이자 자신의 이모인 사도왕후의 부탁으로 동륜 태자와 관계를 가진다. 사도황후는 “네가 태자와 정을 나눠 아들을 갖게 되면 있는 힘을 다하여 후(后)로 삼으리라”고 약속한다. 시어머니와의 권력싸움에서 밀리자 조카인 미실의 색공을 앞세워 왕실을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나중엔 아예 남편 진흥왕에게 미실의 색공을 바치게 할 뿐 아니라 둘째아들 진지왕에 이어 손자인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자 13세의 어린 왕에게 색을 가르치도록 미실에게 명한다.

“마 교수님처럼 써야 하는데…”

그럼에도 미실의 남성편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신라 최고의 ‘꽃미남’ 사다함과 풋풋한 첫사랑을 나누던 소녀는 간 데없고 본능에 충실한 삶을 좇는 여인네만 남는다. 갈수록 과감한 음행에 취하게 된 미실은 사다함의 아우인 설원랑, 자신의 동생 미생과 2대 1 섹스를 나누기도 하고, 말 못하는 꼽추의 ‘물건’을 덥석 물어 자위행위를 돕기도 한다. ‘여인과 살을 부대껴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꼿꼿이 발기하는 더러운 살덩이, 어여쁜 자지, 슬픈 물건’을.

-친동생과의 성관계나 꼽추와의 에피소드는 사서엔 나와 있지 않은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넣은 이유라면?

“사실 꼽추와의 정사 장면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부분입니다. 본능의 끝, 타락의 끝까지 간 모습, 인간 남녀이기 전에 수컷과 암컷의 동물적 욕망만이 남은 극단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부부라는 관계 자체가 본능에 역행하는 일이잖아요.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건 조류와 인간밖에 없다고 해요. 조류조차도 둥지 속 알의 40%는 다른 수컷의 것이라고 하죠.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다 깨버리고 남은 후의 적나라한 원초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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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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