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단독 입수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병·의원 처방전 80% 이상 마약류… 간질·우울증 치료제 등 허가외 약물 무차별 처방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3/5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밀수입 단속 때 걸린 마약류 의약품. 향정신성 의약품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악용될 소지가 크다.

마약류 범벅 황당한 처방전

하지만 읽어 내려간 지 얼마 안 돼 기자는 그 보고서가 ‘대외비’로 지정된 이유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의사들의 각종 이해단체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만치료를 위해 병·의원에서 약물을 처방받은 우리 국민 788명의 처방전 2633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0.4%인 2116건에 향정약품이 섞여 있었으며 788명 중 554명, 즉 71.2%가 향정약품을 처방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에는 16~20세의 미성년자도 23명(4.2%)이나 포함돼 있었다. 향정 식욕억제제의 대부분은 미성년자에 대한 처방이 금지되어 있으며 제약사는 이 같은 내용을 제품 설명서의 주의사항에 담고 있다.

항정약품을 처방받은 554명 중 여자는 536명(96.8%)으로, 이 중 대부분(약 85%)이 가임기인 1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이었다. 향정의약품의 식욕억제제 사용을 전면 허용하고 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도 ‘동물실험에서 태아 위험성이 관찰되었으나 인간에 대한 실험이 행해지지 않은 약물로, 약물 사용으로 인한 태아의 위험성보다 이익이 크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임신시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므로 20~30대 가임기 여성들이 복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의약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비만학회 비만치료 가이드라인에는 ‘소아, 임신부, 수유부, 뇌졸중, 심근경색증, 중증 간장애, 신장애, 정신적 질환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향정약품뿐만 아니라 모든 식욕억제제를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대부분의 비만전문의는 약물요법이 근본적인 비만치료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향정약품을 처방받은 554명 중 37%가 정부의 권고사항인 30일을 초과해 향정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으며 심지어 3개월 이상 처방받은 사람도 4.7%에 달했다. 향정약품은 보통 빠른 경우 4주 이상 먹으면 중독, 즉 의존성이 발현할 수 있고, 3개월 이상 먹으면 치명적인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약청과 대한비만학회가 내놓은 비만치료 가이드라인은 향정약품뿐만 아니라 비만 치료를 위한 모든 약물 치료에 대해 30일을 초과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식약청의 처방전 분석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먹은 사람이 6명, 심지어 300일을 처방받은 사람도 한 명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기간 내내 두 가지 향정약품을 처방받았다. 이외에도 이뇨제, 항우울제, 간질치료제, 종합 감기약 등 허가외 식욕억제제도 함께 처방됐다.

향정약품을 한 번에 몇 가지씩 먹도록 처방하는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이 보고서는 향정약품의 중복처방 사례를 소개해 놓았는데 기자가 경험한 것보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다음 처방전들은 82년생 여성이 2007년 1월부터 5월까지 처방받은 내역으로 처방전 구성상 체중 조절 목적으로 처방된 것들인데 한 제품만 처방하도록 권고되어 있는 향정신성식욕억제제가 중복 투약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을 목적으로 처방한 경우 보험급여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 급여청구가 되어 있는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인 예임.’

실제 처방전을 살펴보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4개월의 비만치료제 처방 기간 동안 처방이 10번이나 바뀌었는데 10회 모두 한 번에 2가지 이상 향정약품을 먹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14일 동안은 매번 향정약품이 3가지나 들어가 있었다. 2가지로 된 처방에는 정신신경용제인 항우울제가 꼭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중독과 심각한 부작용이 의심되지만 식약청은 이 환자에 대한 추적 조사는 하지 않았다. 거기다 보고서엔 건강보험 2중 청구로 국민 혈세까지 축낸 병원과 의사에 대해 어떻게 처벌조치했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향정약품의 오남용만큼 심각한 것이 함께 처방되는 허가외 품목, 즉 무허가 식욕억제제의 병용 처방이다. 향정 식욕억제제의 용법 설명서를 보면 사용상 주의사항에 ‘이 약은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생약제제를 포함해 다른 식욕억제제와 병용해선 안 된다. 병용 투여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명문화 되어 있다.

허가외 약품 무차별 사용

그러나 실제 기자의 취재에서도 드러났듯이, 보고서의 처방전 분석에서도 향정약품을 사용해 비만을 치료하는 병의원 대부분이 식약청이나 제약사의 병용금지 원칙을 무시한 채 검증되지 않은 감기약과 간질약, 항우울제, 고혈압약, 이뇨제 등 허가외 식욕억제제를 향정약품과 함께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식약청의 향정약품 처방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중조절용 의약품의 처방전당 품목 수는 3.9개. 향정약품 외에 최소 3개는 허가외 의약품이 처방됐다는 뜻이다. 4가지가 사용된 경우가 48.7%, 7가지 이상이 사용된 사례도 5.5%(144건)나 됐다. 향정약품과 함께 처방되는 약들 중 가장 많이 들어간 허가외 약품이 방풍통성상 계열(1017건)로, 이 약은 원래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의 어깨 결림이나 비만증 부종 변비 해소에 쓰인다. 일반인이 약국에 가서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지만 약 자체에 마황 성분이 일부 들어가 있어 향정약품과 병용 처방은 절대 금지된 허가외 품목.

3/5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목록 닫기

식약청 대외비‘살 빼는 약’연구 보고서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