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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에서 만난 권력자들

최형우 “대통령, 꼭 하고 싶었다”, 김영삼 “대통령, 다시 하라면 안 한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뒤뜰’에서 만난 권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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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 아프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 “의원 배지 떼니 사람들 눈길이 달라져”
  • “‘발렌타인 30년’ 자랑 말라, 소주 맛을 잊지 말지니…”
  • 컨테이너 박스에 사는 박영록 전 의원 “후회 없고 떳떳하다”
  • 고급 룸살롱 즐기다 ‘궐’ 밖 쫓겨난 젊은 실세
  • 여성 연예인과 ‘아파트 요정’에서 어울리는 유력인사들
  • 가재도구 압류당한 권노갑, 한쪽 눈 실명 위기 박지원
  • 장관 물러나 자택 청와대 직통전화 떼갈 때 ‘失權’ 절감
‘뒤뜰’에서 만난 권력자들

10년 만에 인터뷰에 응한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2월1일 저녁 무작정 최형우(崔炯佑·72) 전 내무부 장관의 집으로 향했다. 정적(政敵)에 의해서가 아니라 뇌졸중으로 하루아침에 권력에서 멀어졌던 최형우 전 장관. ‘권력자의 뒤안길’이라는 기획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터뷰하려니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뇌졸중이라는 불의의 암초에 부딪혀 손에 쥔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내려놓아야 했던 그에게 권력의 무상함에 대해 묻는다는 게 잔인한 짓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출구를 찾는데 작은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꽃 중의 꽃이라는 붉은 장미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노란색 프리지아, 그리고 연한 보랏빛을 띤 소국. 그에게는 소박한 소국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밤 8시. 국화꽃 한 다발을 들고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렸다. 그가 거실에 서 있었다. 그는 화색이 도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말투는 어눌했지만 목소리는 화통했다. 그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신체의 오른쪽이 마비돼 움직임이 둔한데도 오른손을 내밀기 위해 애썼다. 보행이 약간 부자연스러웠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자존심이 무척 센 그는 투병 중에도 주변 사람의 손길이나 지팡이 등 의료보조기구의 도움 없이 걷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와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의 집을 찾기까지 인간적인 고뇌가 적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으면 그냥 돌아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허. 아니요.”

와병 10년 만에 첫 인터뷰

동석한 최 전 장관의 부인 원영일(67)씨가 “(남편이) 자신의 암울한 처지를 비관한데다 투병생활의 울분을 삭이지 못한 게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언어 장애도 기자들을 피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최 전 장관만큼 화려한 정치이력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의리파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그는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시절 4·19 혁명에 참여하고 3·15 부정선거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1959년 야당이던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과 6월항쟁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주산악회장 등을 역임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문민정부 출범 후에는 집권여당의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서울 프라자호텔 일식당에서 쓰러진 것은 1997년 3월11일 아침. 약속 장소에 미리 와 있던 서석재·김덕룡 두 민주계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물컵을 들다 말고 정신을 잃었다. 당시 그는 6선(選) 국회의원이자 YS의 ‘오른팔’로 불릴 만큼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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