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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변호사의 알아두면 돈이 되는 법률지식 27

권리는 모르고 의무만 아는 국민

권리는 모르고 의무만 아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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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사정권 말기 헌법을 처음 접했는데 가장 인상적이던 조항은 제10조였다.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부자나 권력자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실직자, 심지어 데모를 하다 체포된 피의자도 국민이므로 이들에게도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이 있고, 국가는 이들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경찰조사를 받으며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성추행까지 당하는 소식을 들어야 했던 그 시절 제10조는 복음이었다.

또한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제34조 ①),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제35조 ①)고 규정한다. 중고등학생들도 국민이므로 이들은 입시기계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반도체 회사의 공장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도 국민이므로 유독성 물질이 없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하고(제17조),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제18조). 그러므로 국가든 대기업이든 개인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개인의 전화나 e메일을 몰래 엿듣고 훔쳐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국가기관이 이러한 일을 했다면 ‘국기 문란행위’를 한 책임을 물어 엄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헌법은 모든 국민이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제19조) 종교의 자유를 가지는데(제20조), 이러한 사상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출판할 언론의 자유도 가진다(제21조)고 정하고 있다. 자유에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을 자유’가 포함된다.



특히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와 같은 정신적 기본권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맹세를 강요당해선 안 된다.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 된다. 개인의 양심과 종교의 자유, 국가에 대한 충성이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미션스쿨의 이중 잣대

그러나 아직 현실은 헌법과 다르게 진행된다. 미션스쿨은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학칙위반을 내세워 학생을 징계한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상을 의심하거나 반국가행위자로 몰아가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학교의 학칙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 다른 사람들을 정죄(定罪)하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헌법에서 가장 감동적인 기본권 규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이다(제37조 제1항).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의미로서 기본권 조항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본정신이 담겨 있다. 사실 열거된 기본권조차 갖가지 이유로 잘려나가고 막히는 것이 현실이다.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 보호라는 것이 공허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국민 기본권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근거로서 언젠가는 이를 통해 새로운 기본권이 도입되는 날이 올 것이다.

권리는 모르고 의무만 아는 국민
놀랍고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었던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 논의는 더욱 의미가 있고 특별하다. 이제 주류층 몇몇이 모여서 급하게 처리하는 개정이 아니라 다수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혜를 모으는 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11번째 헌법이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헌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할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정치권에서 정치제도에 집중하고 있는 개헌 논의를 기본권 영역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신동아 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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