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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푸젠성

험한 산, 거친 바다 ‘헝그리 정신’ 활활

闽 - “사장 못 되면 남자 아니다”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험한 산, 거친 바다 ‘헝그리 정신’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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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완과 마주보는 푸젠성은 예부터 과거 급제자와 상인, 그리고 해적을 많이 배출하기로 이름난 땅이었다. 이유는 하나. 영토의 8할이 험준한 산이라 살아남으려면 죽어라 공부하든 장사하든 해야 했기 때문이다. 푸젠인들은 한족의 핍박을 피해 바다로 나갔고, 광둥성과 함께 가장 많은 화교를 배출했다.
2011년 핼러윈데이. 한국에도 핼러윈 파티가 보급되긴 했지만 아직 대중적이진 않던 때였다. 그런데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는 백화점 직원들이 핼러윈 의상을 입고 특별 세일 행사가 한창이었다. 나이트클럽 호객꾼들도 핼러윈 분장을 하고 핼러윈 파티 홍보전단을 돌렸다. 한국보다 더 일찍, 더 적극적으로 핼러윈을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날 밤, 바닷가에 있는 하바나 클럽을 찾았다. 많은 이가 핼러윈 분장을 한 채 파티를 즐겼다. 특별 이벤트로 ‘패션 콘테스트’와 ‘섹시 콘테스트’도 열렸다. 패션 콘테스트 1등은 능글맞은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손오공 의상을 입은 서양인에게, 섹시 콘테스트의 1등은 칭다오 맥주걸로 분장한 팔등신 금발미녀에게 돌아갔다. 두 1등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인물 좋은 서양인이 중국 친화적인 콘셉트를 잡았다는 점이다. 서양에 대한 동경과 중화의 자부심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것. 조계지(租界地)로서 서양에 일찍 문호를 개방한 샤먼의 특징을 읽을 수 있던 밤이었다.

문에 달라붙은 벌레

푸젠성의 약칭인 ‘민’은 ‘종족 이름 민’ 자다. ‘종족’이라고 쓰고 ‘오랑캐’라고 읽는다. 한족과 다른 종족을 뜻하는 한자는 많으나 ‘민’ 자만큼 오랑캐에 대한 중원인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자가 있을까. ‘민’ 자를 풀어보자. ‘문[門]’ 앞에서 알짱거리는 ‘버러지[蟲]’!

푸젠성은 한족의 경계 바로 앞이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오랑캐의 땅이었다. 사마천은 ‘사기’에 푸젠성에 대해 민월왕 무제(無諸)는 월왕 구천의 후손으로 초한전에서 유방의 편을 든 공로를 인정받아 민월왕이 됐다고 썼다.

훗날 민월은 옆 나라 동구(東·저장성 남부)와 전쟁을 벌였다. 민월이 정복에 성공하기 직전, 동구는 한무제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때 태위(太尉·국방부장관) 전분은 ‘오랑캐의 일에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고, 중대부(中大夫) 장조는 ‘천자의 나라가 소국의 어려움을 방관해서는 안 되므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천조국으로서 외국의 일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낼지 말지 논쟁한 것과 같다.

한나라는 동구를 구하고 동월을 평정했지만, 산은 험하고 사람들은 거칠어 복속시키기란 불가능했다. 영토 욕심이 많던 한무제조차 동월 지역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고, 동월 백성을 장강과 회수 사이(안후이·장쑤 북부의 평야지대)로 옮겨 살게 했다. 중원의 통치력은 강북의 평야지대까지는 미쳤지만, 강남의 산악지대는 감당할 수 없었다. 민월은 이후 1000여 년 동안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다가 남송 후에야 비로소 완전히 동화했다.

유구한 시간 동안 한족에 흡수·동화하지 않은 민월인들. 한족의 시선으로는 당시 ‘글로벌 스탠더드’이던 한족의 찬란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이 ‘미개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자신의 경계, 문[門] 주위에 귀찮게 달라붙는 벌레[蟲]라는 뜻으로 ‘민’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뱀을 숭상하는 민월인이 문 안에 뱀을 키웠기 때문에 ‘민’ 자가 만들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에도 한족의 눈에 민월인의 풍습은 괴이하고 야만적으로 비쳤으리라.

험한 산, 거친 바다 ‘헝그리 정신’ 활활
“단결만이 살길”

푸젠 친구에게 추석 때 뭐 할 거냐고 묻자, 사당에 가서 소원을 빌 거라고 했다.

“아, 마조(祖) 사당에 가려고?”

“아니, 마조는 뱃사람들의 신이야. 우리 집은 장저우(州) 산골이라 토지신 사당에 갈 거야.”

푸젠은 바다의 여신 마조로 유명하니까 마조 사당에 갈 거라는 예상을 깼다. 푸젠 문화가 지역별로 다양함을 새삼 일깨웠다.

‘민월은 8할이 산, 1할이 물, 1할이 밭’이라고 할 만큼 산이 많다. 푸젠의 역사는 산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산악지형은 이동하기 힘든 데다가, 많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땅도 아니다. 그렇다보니 산에서는 소수의 부락이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작고 폐쇄적인 공동체에 있으니 언어와 문화도 독자성을 갖게 된다.

게다가 푸젠은 종족도 다양하다. ‘백월(百越)’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월족, 고산족(高山族), 피난 온 한족 등이 산다. 같은 산 안에서도 종족이 다르고 산을 넘어가면 언어가 다르다. 지방마다 말이 다른 중국에서도 푸젠은 언어가 가장 다양한 곳으로 손꼽힌다.

산은 외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다. 중원의 끊임없는 전란은 대규모 피난민을 여러 차례 발생시켰다. 푸젠에 내려간 피난민은 전쟁을 피해 조용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토착민인 토가(土家)와 비교해 피난민들은 새롭게 찾아온 손님과도 같아서 객가(客家)라고 불렸다.

객가인은 불안했다. 전쟁의 공포는 아직도 생생한데, 생경한 땅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거친 오랑캐들이 득시글거렸다. 산은 임자가 없는 대신에 거칠고 험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약자에게 살길은 단 하나였다. 단결.

그래서 객가인들은 거대한 원형의 흙집을 지었다. 온 마을 주민이 두세 채 흙집에서 함께 살았다. 산속 요새를 방불케 하는 토루(土樓)는 그들의 공동 숙소이자 병영(兵營)이었다. 1950년대 미군이 인공위성으로 토루를 처음 보고는 핵 군사시설로 착각했을 정도다.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어도 수확은 신통찮았다. 이에 푸젠인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장사를 했다. 아이들은 “두꺼비야, 두꺼비야, 하하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한다”라는 동요를 부르며 놀았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는 오늘날의 ‘권학가’와 놀랄 만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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