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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협상의 귀재, 그러나 ‘안 된다’ 판단하면 바로 돌아설 사람”

  • 글: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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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5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로 지명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 지난해 8월12일 제27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한 그는 이후 7개월 동안 무척이나 바쁜 일정을 보냈다. 1월말 이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 내정된 터라, 2월10일 북한 외무성의 핵 보유 및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 성명이 나온 뒤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형국. 중국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러시아로 바쁘게 날아다니며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최근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종석 NSC 사무차장도 아닌 바로 힐 대사다. 힐 대사가 주로 오전 7시에 여는 조찬강연회는 늘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반미감정의 극복을 통한 한미동맹의 복원, ‘장기휴업’ 중인 6자회담 재개 등의 난제를 떠안고 있는 힐 대사의 생각을, 부임 이후 가진 20여 차례의 공식·비공식 강연회에서의 모두발언과 문답을 통해 정밀 분석했다. ]

‘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연합]

1월 26일 오후 4시반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 지리산룸.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모임인 ‘EAI 지구넷 21’(회장 하영선 서울대 교수) 초청으로 힐 대사가 참여하는 비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6자회담이 장기교착 상태에 빠진 데다, 새로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내정자가 북한을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이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회담 재개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던 때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도 문제지만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며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한용섭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장,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등 EAI 지구넷 소속 20여명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의 협상대표를 상대로 ‘곤란한’ 질문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힐 대사 도착 1시간 전에 미 국무부 핵비확산국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창설작업에도 관여한 찰스 퍼거슨 미국외교협회(CFR) 연구원과 토론을 통해 ‘예행연습’까지 마친 상태.

하지만 탁월한 연사이자 협상가로 알려진 힐 대사는 “퍼거슨 박사가 지쳐 있는 것을 보니 장시간 ‘폭정의 거점’ 문제에 대해 토론한 것 같네요. 제가 그 문제에 대해 더는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라며 선수를 쳤다.

그럼에도 이날 힐 대사는 몇 가지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그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체제변화(regime change)가 아니라 체제의 행동변화(change of regime’s behavior)”라는 것. 미국이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지도자의 성품(personality)이나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힐 대사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행동변화’가 중요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권력에서 물러나는지 여부는 우리의 관심사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물러난 뒤 새로 권력을 승계한 사람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나는 김정일이 아니다. 하지만 핵무기를 가져야겠다’고 말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이같이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미 북한에 당근을 제공할 시점은 지났다”며 향후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강력한 채찍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직접적으로 내비쳤다. 이날 발언은 그가 6자회담의 수석대표로 내정된 뒤 처음으로 대북협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것. 회담장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협상카드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는 동시에 협상장에 돌아온 뒤에도 향후 협상과정이 험로가 되리라는 점을 보여준 대목이다. 실제로 이날 힐 대사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북한에 대해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자세로 압력을 가해야 하며, 협상과정이 매우 어려울(tough)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당근을 제공할 시점은 지났다”

그는 또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행동변화’이지만 인권 상황의 개선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고 말해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핵문제라는 난제에 대한 협상을 앞두고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미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힐 대사는 부임 직후부터 전임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기득권 계층이나 미국을 잘 이해하는 사회지도층과 면담하기보다 비교적 ‘반미의식’이 강한 젊은 층과 대화하거나 대학 강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서의 강연도 눈에 띈다.

그는 부임 첫날 이미 ‘대중 속으로’ 향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강조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난해 8월12일 인천공항에서 낸 취임 일성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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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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