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군 사정 신호탄’ 신일순 대장 구속 막전막후

기무사 내사, 청와대 지원 사격, 소장파 군법무관들의 반란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05-31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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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장, 장관 눈치보지 않는 젊은 군법무관들의 질주
    • 청와대, “군 개혁 위해 군내에서 4성 장군 처벌해야”
    • 지난해 조영길 국방장관에게 돈 문제로 한차례 경고
    • 기무사 내사자료가 수사 단서
    • 3군단장 떠날 때 챙긴 복지기금과 위문금으로 덜미
    • 상관 생일선물비, 친척 차비, 김장비… 뭐든지 공금으로
    • 골프 접대하고 위문금 받아 챙겨
    • 군은 예산으로 상호부조하는 사회
    • 업무능력 인정받지만 인격적 결함으로 신망 잃어
    • ‘욕대장’ 신일순의 기이한 행적들
    ‘군 사정 신호탄’ 신일순 대장 구속 막전막후
    현직 대장으로는 사상 처음 공금횡령이라는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안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신일순(57) 대장은 독특한 성격과 기이한 행동으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영어에 능통한 실력파로 업무처리에 빈틈이 없다는 긍정적 평은 도를 넘어선 깐깐하고 모진 성격이 빚은 원성(怨聲)에 가려져왔다.

    군 관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부하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는 언행으로 신망을 얻지 못한 그는 특히 돈 문제에 대한 남다른 집착으로 빈축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역 대령 K씨가 들려주는 일화 한 토막.

    “육군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은 골프장 수입금 등 복지기금의 일부를 장병 격려 등 부대운영비 명목으로 받아 사용하고 있다. 이 돈을 집행하는 부서는 육본 인사근무처 복지과다. 신일순 장군이 육군참모차장을 지낼 때 인사근무처 관계자가 기안을 올렸는데 신 장군이 특별한 이유 없이 결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몇 번 퇴짜를 맞고 난 후 이 관계자는 ‘돈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싶어 액수를 높여 기안을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결재가 났다.”

    K씨는 이 얘기를 당시 인사근무처에 근무했던 지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K씨가 전해준 얘기는 신 대장을 구속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사실로 확인됐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참모차장에게 할당된 복지기금은 연 4000만원이었는데 신 대장은 이를 6000만원으로 올려받아 공사(公私) 구분 없이 사용했다는 것. 이 복지기금은 1년 후 그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영전한 후에 원래대로 4000만원으로 낮춰졌다고 한다.

    신 대장 구속에 대한 군 안팎의 시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관행이든 아니든 공금을 사적으로 쓴 것은 잘못된 일이므로 군 개혁 차원에서라도 구속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견해다. 둘째는 신 대장의 공금 횡령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관행적인 비리를 문제 삼아 구속까지 한 건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 이런 시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대장의 명예를 고려해 자진 전역케 한 후 수사를 받더라도 민간 검찰에서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견해는 군검찰의 수사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것이다. 이들은 군 지휘관의 공금 횡령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며 “군의 명예와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는 이런 수사는 군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다. 주로 장성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으며 예비역 장성들도 가세하고 있다. 특히 이상훈 재향군인회장과 전 육군참모총장 Y씨는 조영길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의 한 대령은 “비리를 척결하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이런 일로 대장을 구속까지 해 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신 장군이 인간적 매력이 없다 보니 적이 많다.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장교들도 처음엔 ‘잘된 일’이라고 했다가 몇 차례 소환당한 끝에 구속까지 되자 ‘4성 장군을 그런 식으로 망신 주냐’며 반발하고 있다. 군법무관들은 법만 알지 군의 현실을 모른다. 이런 수사는 지휘권의 존엄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과거 신 대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예비역 대령 K씨는 “한미관계의 중요성 등을 감안해 국가적 차원에서 배려했어야 한다. 나도 군에 있을 때 신 대장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구속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고 신 대장을 동정했다.

    “청와대 민정과 너무 가깝다”

    하지만 신 대장의 과거 행적을 아는 군 장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연합사에서 근무하며 신 대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모 중령은, 조금 과장스럽게 들리긴 하지만 “연합사는 지금 축제 분위기다. 다들 박수를 치고 있다”며 군검찰 수사가 지지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기사 머리에 소개했던 예비역 대령 K씨는 “관행이냐 아니냐, 표적사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며 “신 대장이 돈을 밝힌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주장했다.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신 대장은 결재판을 집어던지는 등 난폭한 행동으로 부하들로부터 신망을 잃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대장이 됐다는 게 더 문제”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군 수사기관 고위관계자는 “지금까지 장군의 경우 수사당국이 비리를 적발해도 옷을 벗기는 선에서 마무리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법의 잣대 앞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번 사건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운용비(공금)를 건드리면 대장도 ‘간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장교들에게 엄청난 교육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수사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수사 초기 애매했던 국방부의 공식 입장도 조영길 장관이 5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신 대장 구속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군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조 장관은 “비리내용이 단순한 관행이라고 볼 수 없어 사법처리가 불가피했다”며 “군이 자성하고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비리근절 의지를 밝혔다.

    조 장관의 기자회견으로 분위기가 바뀌긴 했지만 사실 군 수뇌부는 신 대장 구속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신 대장의 횡령액수를 축소해 발표하는가 하면 일부 언론을 통해 신 대장의 비리가 ‘관행’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조 장관은 청와대의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구속영장 청구서 결재를 미루면서 버텼다. 신 대장이 구속되기 직전 국방부에서 열린 군 수뇌부 회의에선 군검찰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부 참석자는 군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젊은 군법무관들이 군을 망신시킨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군법무관들이 청와대 민정 라인과 너무 가깝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군 수뇌부의 이런 반발은 군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언론과 청와대의 지원을 받은 군검찰의 파죽지세 앞에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상자 기사 참조).

    군검찰 최고 수사기관인 국방부 검찰단은 편제상 장관 직속으로 주로 장성급 이상이 연루된 사건을 수사한다. 민간으로 치면 대검 중수부와 비슷하다. 단장은 공군 몫으로 현재 김석영 대령이 맡고 있다. 검찰단의 현 진용이 갖춰진 것은 올 1월 초다. 지난해 가을 지난 몇 년간 발생했던 대형 군 비리사건들을 축소·은폐했다는 의심을 받아온 사정기관 총수들이 물러난 후 국방부 검찰단은 후임 인선을 놓고 한차례 진통을 겪었다. 그 결과 개혁 성향이 강한 젊은 군법무관들이 전면에 포진했다. 신 대장 사건의 주임검찰관과 실무책임자인 검찰부장이 모두 소령이라는 점에서도 이들 소장파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다. 신 대장 구속에 비판적인 군내 일부 여론은 ‘어떻게 소령 따위가 감히 별 넷을 잡아넣느냐’는 ‘울분’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관학교 출신과 달리 총장이나 장관 눈치를 보지 않는 젊은 군검찰관들은 평소 군 비리 색출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었다. ‘법대로’를 외치는 이들은 1월 중순 해군 함정 납품비리 수사를 시작으로 육군 공병비리, 공군 군납비리, 특전사 낙하산 비리 등을 파헤쳐 장성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들을 구속하며 ‘성역 없는 수사’의 발판을 다져왔다. 그 과정에 포착한 전직 고위 장성들의 공금 횡령, 뇌물수수 혐의는 민간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 넘겼다. 5월 중순 뒤늦게 언론에 보도된 예비역 장성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그것이다.

    신 대장에 대한 본격 수사는 3월 말부터 시작됐다. 수사팀은 군 사정기관 내사자료와 그간 수집한 첩보를 토대로 3군단장 및 연합사 부사령관 재임시 그의 돈을 관리했던 장교들을 차례로 불러 혐의사실을 확인했다.

    신 대장의 비리에 대한 소문이 처음 흘러나온 곳은 그가 1999년 10월부터 2년간 근무했던 3군단이다. 군내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신 대장 후임인 모 중장이 부대운영비 등에 대해 기무사 조사를 자청한 것이 발단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모 중장은 3군단장에 부임한 후 마땅히 자신에게 인계돼야 할 부대운영비가 한 푼도 없고 관련 장부도 파기돼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당황했다. 경리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전임 신 대장이 ‘남은 돈’을 다 챙겨 떠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따라서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덤터기쓸까봐 조사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당시 기무사 조사는 비공식적인 것이어서 수사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후임 군단장의 ‘결백’을 보증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한다. 휴화산처럼 잠복해 있던 신 대장의 공금 횡령 혐의가 다시 불거진 것은 그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취임한 이후다. 당시 신 대장에 대한 내사결과를 보고받은 조영길 장관은 신 대장을 불러 돈 문제에 대해 경고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소문 돌아

    신 대장이 3군단장 시절 복지기금과 외부 위문금 수천만원을 떼먹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가을엔 복지회관 수입금 2000만원을 횡령하고 자매 기업체가 기부한 위문금 1000만원을 가로챘다는 등 구체적인 액수가 제시된 첩보가 기자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군검찰 쪽에서는 “경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만 하면 다 확인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때만 해도 횡령사실의 극히 일부만 확인됐던 것으로 보인다.

    군검찰이 적발한 신 대장의 횡령액은 총 1억700여만원으로 3군단장 시절에 9300여만원, 연합사 부사령관 재직시 1400여만원이다. 연합사 부사령관 재임시 횡령액이 3군단장 시절보다 훨씬 적은 이유에 대해 수사팀은 “장관 경고를 받고 나름대로 조심한 결과가 아니겠냐”고 분석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예산 전용이니 관행이니 하는 표현으로 신 대장의 혐의가 대단치 않다는 느낌을 주는 보도를 했다. 그에 따라 신 대장이 마치 ‘잘못된 관행’의 피해자인 양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용’의 법적 개념을 잘못 이해했거나 좋게 말해 군의 사기와 명예를 지나치게 배려한 보도로 보인다. 신 대장의 혐의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 탓도 있었다. 군 최고 정보기관인 기무사도 사전에 낌새를 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수사보안을 유지했던 군검찰은 신 대장이 구속된 후에도 언론에 공식 설명을 하지 않았다.

    전용이란 예산을 다른 공적인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예컨대 헌병 수사관 활동비를 지휘관인 헌병감이 장병 회식비로 사용했다면 전용에 해당한다. 예산 전용은 워낙 흔한 일이라 문제가 돼도 징계에 그칠 뿐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군검찰이 신 대장을 수사하며 문제 삼은 부분은 전용이 아니라 유용이고, 유용의 법적 개념이 바로 횡령이다. 유용은 공적인 용도로 써야 할 예산을 사적인 용도로 쓴 것이다. 과거 대형 군 비리 수사경험이 있는 군법무의 한 관계자는 “만약 예산 전용 문제까지 파고 들어가면 웬만한 지휘관은 다 걸려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사팀은 신 대장이 3군단장 시절 역대 군단장들을 초빙하는 행사에 들어간 돈, 회식비 등 예산 전용으로 봐줄 만한 금액은 횡령액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수사팀이 최종 산출한 횡령액 1억700여만원은 신 대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한 장교들과 돈 관리를 맡았던 경리장교들이 ‘뺄 건 빼고’ 확실한 것만 추린 금액이라고 한다.

    ‘군 사정 신호탄’ 신일순 대장 구속 막전막후

    2003년 11월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과 환담하고 있는 신일순 부사령관.

    신 대장은 “전임자가 해온 대로 했다”며 공금 횡령을 관행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수사팀에 따르면, 부대 지휘관들이 예산을 공사 구분 없이 사용해온 것이 관행이긴 하지만 신 대장처럼 심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 한 예로 신 대장에 앞서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남재준 현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공금의 용처를 알 수 있게끔 영수증 처리를 잘 해놓았다고 한다.

    신 대장을 소환하기도 전에 군검찰 주변에서 사법처리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수사팀이 그만큼 자신 있다는 얘기였다. 신 대장 주변 인물들이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진술한 것이 큰 도움이 됐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비밀장부’였다. 가계부 뺨칠 정도로 돈 용처가 자세히 적혀 있는 이 장부엔 공금 유용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신 대장의 성격이 워낙 꼼꼼하고 치밀해 측근을 시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다 기록해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신 대장의 법에 대한 무지와 도덕 불감증은 군 고급지휘관들의 낙후된 의식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공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신 대장에게 공금은 공적인 용도로 써야 할 돈이 아니라 ‘지휘관이 재량껏 쓸 수 있는 돈’이었다. 공금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엄연히 ‘유용’인 데도 ‘전용’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측근에게 돈 용처를 자세히 알려줘 기록하게 한 것은, 공금을 사적으로 쓰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을 전혀 안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 대장이 횡령한 공금은 크게 지휘활동비(지휘부 운용예산), 복지기금, 위문금 등 세 가지였다. 부대 운영과 장병 격려 등에 쓰라고 지급된 이 돈들을 신 대장은 개인적 부조금, 속옷 값, 친척들 차비, 아들과 그 친구들의 래프팅 비용 및 차비, 상관 생일 및 취임 선물비, 선배 예비역 장성들 선물비, 육사발전기금, 골프 접대비 등에 썼다. 심지어 김장 비용까지 공금으로 처리했다.

    3군단장 시절 지휘부 운용예산은 매달 450만원이었다. 그 중 군단장에게 할당된 공금은 지휘활동비 명목의 90만원이었다. 그런데 신 대장은 그보다 60여만원 많은 150여만원을 매달 가져갔다. 비서실 운영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또 매달 외박비 명목으로 100만~200만원씩 챙겼다. 2년간 근무했으니 이것만 해도 40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이 돈들을 공사 구분 없이 사용한 그는 쓰고 남은 돈은 저축까지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무슨 돈인 줄 모르고 받았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대 떠나면서까지 복지기금, 위문금 챙겨

    복지기금은 각 부대에 있는 복지회관 수입금이다. 복지기금의 50%는 지휘관 재량으로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물론 장병 격려비 등 공적 용도로 쓰라는 취지다. 당연히 영수증을 첨부해 장부에 용처를 기록해둬야 한다. 하지만 신 대장은 영수증 처리를 거의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한달치 쓴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등 누가 봐도 사적인 용도로 쓴 흔적을 남겼다.

    위문금은 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기업체의 기부금, 관공서 지원금, 방위성금 등을 일컫는다. 복지기금과 달리 이 돈은 지휘관이 한 푼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런데 신 대장은 위문금 일부도 챙겼다. 그는 3군단장 시절 당시 병무청장이던 O씨를 초빙해 골프접대를 하고 호텔방을 잡아줬다. 물론 비용은 공금으로 처리했다. O씨는 도로공사사장이 된 후 500만원씩 두 차례 1000만원의 위문금을 3군단에 전달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이 돈은 신 대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는 또 D그룹 회장 K씨로부터 위문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직접 받기도 했다. 당시 K씨 아들은 3군단에 근무하고 있었다.

    신 대장은 3군단을 떠나는 순간까지 복지기금과 위문금을 챙겼다. 쓰고 남은 복지기금 500만원과 위문금 1000만원을 부대에 반납하지 않고 새 임지로 떠나면서 가져가버린 것이다. 군검찰 조사과정에서 그는 이 돈을 전별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전별금을 받은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전별금은 공적인 용도가 아닐 뿐더러 규정에도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신 대장 사례에서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지휘관들의 공금 불감증에 대해 “지휘관이 곧 부대라는 잘못된 인식이 원인”이라며 “자신을 부대와 동일시하니 자신의 행동은 어떠한 것이든 공적인 것이고 자신이 쓰는 돈은 다 공적인 용도라고 착각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말마따나 무엇이든 공적인 용도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신 대장은 웬만한 비용은 다 공금으로 처리했다. 반면 급여의 대부분은 저축했다. 판공비도 급여를 보조하는 일종의 수당으로 여겼다. 그렇게 돈을 모아 서울과 경기도 수지에 큰 평수의 아파트 두 채를 마련했다.

    군 수사기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예산으로 상호 부조하는 사회가 군대다. 공적으로 쓰여야 할 예산이 장성들 사이에서 사적인 용도로 돌고 있다”며 혀를 찼다. 3군단장 시절 신 대장은 직속상관인 군사령관 생일 때 같은 군사령부 소속 군단장 2명과 함께 10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1인당 약 330만원씩 낸 것으로, 말하자면 ‘현금 선물’인 셈이었다. 물론 이것도 공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만약 군사령관이 이 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신의 상관에게 같은 명목으로 건넸다면 그야말로 공금이 돌고 돈 셈이 된다.

    신 대장은 육사발전기금과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를 비롯한 군 유관단체 지원비도 공금으로 처리했다. 언뜻 공금을 전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용도는 예산항목에 없으므로 전용이 아니라 유용에 해당한다는 게 군검찰 판단이다. 예비역 장성들을 사사로이 초대해 골프접대를 하고 송이버섯 등을 선물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비육사 출신의 한 영관급 장교는 “군을 육사 동문회의 부속물쯤으로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지휘관이 되면 여기저기 돈 쓸 일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중엔 공사 구분이 명확치 않은 용도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지휘활동의 개념을 법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해 공금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금에 대한 지휘관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정할 건 인정해줘야 한다. 판공비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많은 장병을 거느리는 군 지휘관의 특성을 감안해 지휘권 보강 차원에서 활동비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음성적으로 쓰는 돈을 어느 선까지는 양성화시켜주자는 것이다.”

    군 수사기관 고위관계자의 주장이다. 지휘활동비를 늘리자는 의견은 또 다른 논란을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주장에 담긴 합리성을 감안하더라도 신 대장의 경우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싶다.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신 대장은 업무 면에선 실력을 인정받은 지휘관이었다. 육사 26기인 그의 군 경력은 매우 특이하다. 육사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건너가 미 육사를 졸업한 것. 아울러 한국군 장성으로는 드물게 미 지휘참모대학까지 나왔다. 자연히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군 최고위급 인사들의 ‘무능력’과 ‘무소신’을 탓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참여정부의 자주국방론에 대해서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은 이른바 작전통이다. 하지만 신 대장은 주로 기획, 정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방부 주미과장,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교육사 훈련부장 등의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예비역 대령 K씨도 이런 평에 동의했다.

    “미국통이다 보니 기획·정책 부서에 중용됐다. 아마도 현직 중장급 이상 중에 신 대장만큼 영어 잘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국군 지휘관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영어 아닌가. 문민정부 때 윤용남 참모총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관리할 줄만 알았지 통솔할 줄 몰라

    유력 일간지 인물정보란에는 ‘기획력과 조직장악력이 뛰어나고 업무에 철두철미하다’는 평이 실려 있다. 신 대장을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완벽의 기준이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고 독선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지휘관의 주요 덕목 중 하나인 인화력을 갖추지 못했다. 엄격하고 깐깐한 성품으로 외형적으로는 조직을 장악한 것처럼 보였는지 몰라도 부하들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 그의 밑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모 대령은 “비리혐의로 구속된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그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준 건 주변에 자기편이 없다는 것과 과거의 부하들이 수사기관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능력은 인정한다. 배울 점도 있었다. 어떤 일이든 적당히 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상관한테 보고할 때 그 내용을 통째로 외워 보고했고 부하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했다. 내가 웬만해선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인데 그 양반 밑에서 근무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오후가 되면 우울증이 밀려왔다.”

    그에 따르면 신 대장은 당시 자신의 비서실장과도 차 한잔 같이 안 마실 정도로 부하들에게 매정한 편이었다. 또 성미가 급하고 다혈질이라 화를 낼 때는 불 같았다고 한다.

    신 대장이 교육사 교육훈련부장(소장)을 지낼 때 예하부대에 근무했던 예비역 대령 K씨는 신 대장이 구속된 데 대해 “성격이 너무 곧아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며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문제점은 지휘관으로서 관리업무와 리더십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부하들을 관리할 줄만 알았지 통솔할 줄은 몰랐다. 성격이 고약해 자신의 지시사항이 곧바로 이행되지 않으면 난리를 쳤다. 또 욕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욕이 일상생활화돼 있었다. 한번 당해본 사람은 잊지 못한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육사를 나왔냐”

    예비역 중령 K씨는 2년 전 신 대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발한 바 있다. 2000년 5월 3군단 예비군 관리대대장이었던 K중령은 이른바 북풍사건이 언론을 통해 불거진 직후 당시 3군단장이던 신 대장에 의해 보직해임됐다. 북풍사건이란 19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군 수뇌부가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를 과장해 여당에 유리한 선거분위기를 조성했던 사건이다. K중령은 당시 합참 정보부서에 근무했었다.

    K중령의 보직해임 사유는 부대 무단이탈에 따른 지휘체계 문란. 근무시간에 부대 인근 병원에 갔다 오면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예비군동원훈련장에 보고 없이 들렀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구색 맞추기로 씌운 혐의였고, 진짜 이유는 북풍사건과 관련해 YTN 기자의 전화취재에 응한 데 있었다. 당시 신 대장은 K중령에게 YTN 건을 거론하면서 “너 같은 XX는 인간쓰레기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육사를 나왔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K중령이 북풍사건의 진실에 대해 말하려 하자 “북풍사건엔 관심 없다”며 입을 막았다.

    K중령은 보직해임 조치로 자신의 특기인 정보와 아무런 관련 없는 군수사령부로 발령이 났다. 이듬해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모두 패했다. 그가 신 대장과 당시 3군단 감찰참모를 고발한 것은 행정소송 과정에 자신에 대한 감찰보고서와 국방부 인사소청인사위원회에 제출된 문서에서 사실과 다른 기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 고발사건을 육본 검찰부로 이첩했다. 육본 검찰부는 감찰보고서 내용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신 대장 등을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해 6월 전역한 K씨는 신 대장에 대해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부하는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군 생활 30여년 중 3군단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신 대장이 교육사령관을 지낼 때 예하부대에 근무했던 예비역 대령 K씨는 “신일순에게 조인트 까인 대령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신일순과 한번도 같이 근무한 적 없으면 복 받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K참모총장이 교육사 행정학교를 순시했을 때 일이다. 이 경우 교육사령관은 행정학교장과 더불어 헬기 앞에 대기했다가 총장을 맞이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교육사령관인 신 대장은 총장이 헬기에서 내렸는 데도 한쪽에서 행정학교 장교들을 모아놓고 혼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K씨 기억으로는 “너희들 똑바로 일 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요지였다.

    참모총장 비서실장을 지낼 때의 일화도 그가 부하들에게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신 대장의 깐깐한 업무 스타일에 비서실 직원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의전과의 한 군무원은 결국 심장병을 얻은 후 사표를 냈다고 한다. 총장의 외박 기간에 비서실 전직원을 육사 생도 때처럼 완전군장시킨 후 24시간 근무하게 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연합사 장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된장찌개 사건’은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벌어졌던 일이다. 4월 중순 신 대장은 취임 첫 행사로 연합사 소속 장성들과 그 부인들을 초대해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장소는 서울 남성대 클럽하우스. 참석 인원은 20여명에 이르렀다. 메뉴는 4000원짜리 된장찌개였다. 사전에 신 대장은 자신이 직접 메뉴를 선정한 후 보좌관에게 찌개 하나를 2~3명이 먹도록 주문하라고 지시했다. 즉 사람 수보다 적게 찌개를 시키고 공기밥을 추가하라는 얘기였다.

    보좌관이 당일 식당에서 보니 1인용 찌개라 두세 사람이 하나씩 먹기엔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득이 신 대장의 지시를 어기고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찌개를 주문했다. 다음날 보좌관과 비서실 직원은 신 대장 방에서 한 시간 가량 부동자세로 선 채 속된 말로 엄청 깨졌다. 신 대장은 “왜 지시대로 하지 않았냐” “너희들 돈 들어가는 거면 그렇게 했겠냐”고 호통을 쳤다. 남성대 회동에 참석했던 한 장성은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위로했다고 한다. 연합사에서 신 대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모 장교는 “그처럼 아낀 공금을 유용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법률적 책임지겠다”

    그밖에도 신 대장의 독특한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지난해 연합사 주변에서는 신 대장의 부관을 지낸 모 소령이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지경에 이르러 그 가족이 국방부 장관에게 진정서를 내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국방회관 식당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신 대장이 오는 날엔 바싹 긴장한다. 파리가 있다는 둥 워낙 ‘지적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행사 때 여 군무원이 신 대장이 자리에 앉기 전에 주스를 미리 따라놓았다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예비역 대령 K씨는 “신 대장이 돈키호테 기질은 있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사람이다. 국가관과 애국심이 투철했다”며 신 대장의 구속을 안타까워했다. K씨의 시각이 공정한 것이라면, 신 대장의 장점은 단점 때문에 빛을 잃은 셈이다.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보다 부정적인 평이 많았다. 군의 불명예를 우려해 그의 구속에 반대하는 여론은 있지만 그를 동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그의 비극이다.

    바깥에 알려진 바와 달리 신 대장의 조사받는 자세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군검찰관의 신문에 성실히 응하고 있다는 것. 소령인 군검찰관과 피의자인 신 대장은 서로 경어를 쓰고 있다.

    신 대장은 구속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변호사를 바꿨다. 언론에 불필요한 얘기를 했다는 게 해촉사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변호를 맡은 이기욱 변호사는 “신 대장의 입장과 군검찰의 입장, 그리고 군의 입장을 다 감안해야 하기에 지금 단계에선 언론에 뭐라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말을 삼갔다. 이 변호사는 신 대장의 심경에 대해 “군의 새로운 변화흐름에 맞춰 법률적으로 책임질 게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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