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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협상의 귀재, 그러나 ‘안 된다’ 판단하면 바로 돌아설 사람”

  • 글: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7년 같은 7개월’ 보낸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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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6일 서울클럽에서도 한국 내 반미감정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결방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반미감정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낙관론이었다. 힐 대사는 “현재 한국민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감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반감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절반 정도 되지만 그것을 반미감정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바로 그 안에 해결의 열쇠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가 있을 경우 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며, 내가 지금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한다 해서 상대가 반드시 내 의견에 동조하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진지하게 설명하는 내게 달걀세례를 퍼붓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며 그 의사소통의 통로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유머는 나의 힘

진지한 접근을 추구하는 힐 대사지만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론은 늘 유머러스한 길을 택한다. 힐 대사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재치 있고 시의적절한 유머를 던지는 탓에 좌중에는 늘 웃음이 넘쳐난다.

가장 즐겨 사용하는 유머는 스포츠에 빗댄 농담이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로드아일랜드주가 고향인 힐 대사는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골수팬. 부임하던 날부터 86년이나 지속되어온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보스턴이 우승할 거라는 예상을 내놓았던 힐 대사는 지난해 10월25일 민화협 강연에서 빗발치는 질문세례를 피하는 방법으로 야구 유머를 택했다.



힐 대사는 당시 동북아 순방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을 화제에 올리며 “오늘 파월 장관이 서울에 도착하는데 아주 우울한 기분으로 올 것 같아 빨리 대사관에 돌아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유인즉 파월장관이 응원하는 뉴욕 양키스가 아메리칸지구 챔피언전에서 보스턴에 역전패한 탓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한국을 찾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미국에서 듣고 왔다는 한반도 ‘10월 위기설(October Surprise)’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던 지난해 10월7일 관훈클럽 강연에서는 한 패널이 10월 위기설의 근거를 묻자, “레드삭스가 우승하는 것 외에 미국발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객석에 웃음을 던지기도 했다.

한국의 동북아전략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미국 프로농구 NBA에 빗댄다. 힐 대사는 “작은 나라인 한국이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동성”뿐이라며 “남보다 한발 앞서 패스하고 한 박자 빠르게 슛을 던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충고한다.

청중석에서 질문을 받을 때도 예사롭게 받아넘기는 법은 없다. 좌측에 앉아 있는 청중의 질문이 이어지면 이내 “좌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우측에 앉아 있는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좌우에서 이야기가 쏟아지면 “중도파는 어디로 갔습니까” 하며 재치 있게 질의응답을 이끌어간다.

이 밖에도 조찬모임이 많은 힐 대사는 “조찬모임은 미국이 수출한 최악의 작품”이라는 말을 종종 던져 졸린 눈을 비비며 조찬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하고, 한때 한국을 알리는 구호로 쓰이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을 빗대 ‘아침 교통체증의 나라(land of morning traffic)’라는 유머를 던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화여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막내딸 클라라는 힐 대사 표현에 따르면 ‘한국산(Made in Korea)’이다.

한미동맹의 4대 기둥

힐 대사는 20여 차례의 공개·비공개 강연에서 한미관계를 떠받칠 4개의 ‘기둥(pillars)’에 대해 역설해왔다. 기둥 4개가 견실하게 집을 지탱해야 안정을 찾을 수 있듯, 한미관계도 4개의 기둥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한다는 논리다.

첫째 기둥은 안보동맹(security alliance)이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등 이미 중요한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주한미군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둘째 기둥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전략적 대화’의 필요성. 일단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에서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글로벌 이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이를 기반으로 다자간 안보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힐 대사는 셋째 기둥이자 가장 강력한 기둥으로 한미 민간 차원의 인적유대를 꼽는다. 힐 대사는 “전략적으로 사고하면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민간 차원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역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믿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한데 한국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힐 대사는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고 할 일이 많다”며 “재임기간에 배울 것, 이해할 것, 만날 사람, 귀기울여야 할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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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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