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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설치미술가 전수천의 동파육 요리

소동파의 술잔에 빠진 돼지의 향연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설치미술가 전수천의 동파육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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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동파는 자신을 ‘창해일속(滄海一粟·푸른 바다의 좁쌀 한 톨)’에 비유했다. 무한한 우주에서 무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빗댄 말이다. 하지만 그의 ‘적벽부’는 천년의 세월을 넘어 천하의 명문으로 남았고, 그의 요리 또한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설치미술가  전수천의 동파육 요리
대궐같은 집들로 가득한 서울 평창동 어느 막다른 골목에 동그랗고 빨간 우체통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옆에 이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우체통 주인의 집이 있다. 담도 없이 출입문이 골목과 바로 연결돼 있다. 조그만 쇠창살 쪽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니 2층 거실이다. 시멘트칠이 그대로 드러난 벽면에 다소 거친 마룻바닥은 안에서 밖으로 그대로 이어져 마치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만 듯하다. 그러니 드나들 때 신발을 신고 벗을 일도 없다.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게 집주인 전수천(全壽千·58)씨의 설명이다. 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전씨는 동네 한쪽에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설치해놓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전씨에게 미술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그 속에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씨의 인생은 말 그대로 ‘역전 드라마’다. 진정한 예술가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 그의 집안은 무척 가난했다. 그에게 허용된 정규교육의 기회는 중학교까지였다. 초·중학교 시절 각종 사생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미술에 소질을 보였지만 미술은 고사하고 고교 진학조차 접어야 했다. 농사일을 도우며 5년 만에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전씨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다. 피 튀는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걸고 2년간 모은 돈으로 1973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전씨는 도쿄 무사시노대 유화과에 이어 와코대 예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81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명문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 미술대학원을 마쳤다.

전씨의 작품세계는 그림에서 조각, 그리고 설치미술로 확장됐다. 작품의 기본적인 테마는 ‘일상 속의 인간’이다. 또한 리얼리티를 지향한다.



설치미술가  전수천의 동파육 요리

전수천씨의 요리솜씨를 지켜보는 화가 신수희씨(맨 왼쪽) 와 전씨의 부인 한미경씨의 친구들. 전씨는 한씨(48·아래 사진)와 4년 전 늦깎이 결혼을 했다.

“예술은 실생활을 떠날 수 없어요.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완벽하게 담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예술은 단순한 꿈이고 환상일 뿐이에요. 그렇다고 상업적이어서도 안 되죠. 그래서 전 순수미술을 지향합니다.”

그의 1980년대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을 빌려서 사는 소라게’를 그린 유화 시리즈다. 풍요로우나 어지럽던 당시 세태를 소라게에 빗대 신랄하게 꼬집은 것. 그런 까닭에 작품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매우 음산하다. “상당히 진지한 사고로 세상을 보는 작업이었다”는 게 그의 자평이다.

전씨의 예술성은 1995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설치미술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공인받기에 이른다.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각종 산업폐기물과 TV 모니터, 네온 등과 우리네 서민들의 정신세계를 대표하는 신라 토우를 대비해 과거와 현재, 물질과 정신,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강조한 이 작품으로 그는 한국인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난 지 22년 만이었다. 그는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를 맡고 있고, 국내외를 오가며 여전히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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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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