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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명성황후 귀신’이 들린 여자 이영숙

자경당에서 들려온 애절한 목소리, “내가 죽은 곳은 여기가 아니야…”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명성황후 귀신’이 들린 여자 이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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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에서 내려왔더니 저절로 발길이 끌리는 데가 있어 곧장 그리로 갔다. 자신도 모르는 새 당도한 곳이 경복궁의 자경당이었다. 자경당 왼쪽 작은 문 앞에 멈춰 섰는데 난데없이 자경당 주변이 당향으로 가득 메워지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 경험이지만 좀더 들어보자.

“자꾸 눈물이 쏟아져 겨우겨우 자경당 벽을 짚고 만세문까지 당도했어요. 내가 왜 거기 갔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요. 누가 부르듯 절로 발길이 그리로 이끌려 갔으니까. 눈앞에 바람개비 같은 것이 홱 돌더니 깊은 계곡에서 관복을 입은 십여 세의 사내아기와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열심히 뭔가를 빌고 있는 광경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긴 깃털 달린 빨간 모자를 쓴 외국인 하나가 마당에 부복(俯伏)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구요.

나는 처음에 그게 어떤 장면인지 전혀 몰랐어요. 나중에 웨베르 보고서를 구해 번역해보니 거기 엎드린 사람이 바로 명성황후님 시해사건이 나던 그날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던 러시아 군관 사바틴이었나 봐요. 그런 광경이 지나간 후 ‘나를 따라오너라’ 하는 애절한 음성이 들려요. 음성을 따라 뒤뜰을 지나 연못을 거쳐 미술관 건물 바로 옆에 당도했어요.

‘너는 알겠지, 너만은 알아, 이 세상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겠느냐…. 내가 죽은 곳은 여기가 아니야. 나는 저 뒤쪽 언덕 위에서 죽었느니라’ 하는 음성이 계속 들려요. 이승만 대통령이 ‘명성황후 조난지지’라고 친필 휘호를 내려 조성해놓은 자리였는데 거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잘 알겠습니다. 제가 황후님의 제사를 모시겠습니다.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하고 자꾸 기도를 했어요. 하늘에서는 무슨 영사막 같은 게 펼쳐지면서 일본인의 이름이 무수히 나열돼서 아래로 내려와요. 그때 내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그 이름들을 받아적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해 내 나이가 명성황후가 시해될 당시와 똑같은 마흔넷이었어요.”



이후로도 이 회장의 눈앞에 이런 환상이 자주 펼쳐졌다. 그리고 그 환상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예시는 전혀 없었다. 민족의 쌓인 한을 풀고 정기를 바로잡고 국가의 운세를 틔워주는 방법이 제시되곤 했다.

그날 이후 이 회장의 인생은 달라졌다. 마음의 중심에 늘 명성황후가 있었고 국태민안을 염려하는 기도가 절로 흘러나왔다.

명성황후를 모시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한국부인회 이사로 함께 일하던 가톨릭 신자 장요안나씨를 찾아갔다 그분의 아드님이 해방동 성당의 주임신부(이종한 신부)로 있다는 말을 들어서다. 조선시대에 돌아가신 분을 제사지낼 수 있는지를 물었다.

거기서 장요안나씨를 대모로 세례를 받고 명성황후를 위해 지극히 공들인 연미사를 올렸다. 이후 이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서 자꾸 기도가 솟아올랐다. 개인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행동거지도 달라졌다. 여성으로선 드물게 건설업에 종사했으니 반말이 입에 배고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발길질도 마다않는 ‘노가다 기질’이 다분했는데 몸가짐이 아연 조신하고 우아해졌다. 앉아라, 서라, 걸어라고 행동을 훈련시키는 말도 자꾸 들렸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맹세를 자꾸 하는 거예요. 다 버리고 성모님께 가겠습니다, 세상 인연은 다 끊고 성모님께 갑니다….”

두렵지는 않았다. 망설임도 없었다. 이즈음 이 회장은 가족과 일가 친척을 다 불러놓고 비장한 선언을 한다.

“나는 이제 세상 인연을 다 끊을 겁니다. 어머니도 저를 딸로 여기지 마시고 당신도 나를 아내로 생각하지 마세요.”

가족들은 그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신병이라고,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옆방에서 의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세상 기준이 아니라 성모님과 명성황후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결심한 것뿐입니다.”

‘웨베르 보고서’ 발굴

그는 지금도 자신을 가톨릭으로 이끈 것은 명성황후라고 굳게 믿고 있다. 대원군의 부인이자 황후의 시어머니인 민마리아 부대부인이 바로 가톨릭 신자였다.

“민마리아님은 자신의 6촌동생이 하도 탐이 나서 며느님으로 삼으셨거든요. 가톨릭 교회사 연구를 지원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겉으로는 천주교를 박해했지만 실제로는 왕실 안에서 미사가 이뤄지곤 했지요. 명성황후님도 가톨릭에 깊은 관심이 있으셨던 겁니다.”

당장 ‘명성황후 추모사업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매불망 명성황후를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뭔가를 궁리하고 모색한다. 방법이 발견되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본인들은 의도적으로 명성황후를 경솔하고 오만한 민비라고 폄하하고 훼손해왔다. 추모사업회장으로 그 왜곡된 이미지를 바꾸는데 그가 기울인 노력은 일일이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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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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