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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奇人) 게이트와의 만남

장풍, 축지법, 유체이탈… ‘大도인’ 아니면 ‘大사기꾼’?

  • 글: 김종업 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

기인(奇人) 게이트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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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거 미키한테 들켰나? 초월의식이 나한테 몸 좀 빌려달라는 거야. 내가 육체라는 한정된 곳에 머무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지. 일반인한테는 안 되니 자꾸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그것도 그럴 것이 너희는 진동수가 낮아 그들에게 몸을 빌려주면 분해돼버려. 할 수 없이 빌려줬는데 잠깐 동안도 참지 못하고 나와버리더라고. 마치 해저 2만리에 있는 듯한 굉장한 압력감에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아. 우리가 초월의식을 궁금해하듯이 그들도 인간 육체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 잠시 빌려줬었어.”

과연 이러한 상태까지 경험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답변이 명쾌하다.

“국내 수련단체가 행하는 방법에도 일리가 있긴 하다. 문제는 시간인데, 전통적인 방법으로 내단(內丹)을 만들고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을 돌려 임독맥(任督脈)을 열려면 200년이 넘게 걸린다. 소위 무협지에서 말하는 3갑자(甲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상단전(上丹田)이 열려 빛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밀레니엄 시대에 언제 그렇게 하는가. 인간 본성의 영역인 생각과 감정의 뿌리를 바라보는 수행이 바로 직지본심(한번에 깨달음의 상태로 가는 것)의 방법이다.”

사람이 무한 능력을 가진 주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의식을 육체로부터 이탈시켜 차원의 영역을 공유하게 된다. 일반인은 차원을 마치 건물의 층수처럼 오르고 또 오르는 단계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 보면 차원이란 것이 존재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전체 의식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경지의 끝까지 가본 게이트는 1층에서 바라본 하늘이나 10층에서 바라본 하늘이나 똑같은 하늘이란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죽음도 같은 비유로 설명하는데, 육체를 벗어난 의식은 나름대로 창조해놓은 저승을 자신의 의식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이트에 따르면 인류 지성의 가장 큰 게으름은 죽음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것이다.



자살자는 저승에서도 자살 반복

저승세계를 왕래하며 죽은 자의 의식을 봤다는 게이트는 왜 인간이 육체를 가졌을 때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승세계는 정말 웃겨요. 몸을 가졌을 때, 즉 살아 있을 때 갖고 있던 의식으로 만든 세계에서 살아간단 말이야. 돈에 한 맺힌 친구들은 저승에서도 돈을 벌겠다고 물질계를 만들어놓고 돈만 버는가 하면, 요가 하는 친구들은 저승에서도 몸을 비틀고 있어. 더 불쌍한 것은 자살자들이지. 의식으로 자살을 반복하는 걸 보면….”

자살자에게는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우울증으로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을 꿈꾸는 사람은 게이트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질이 창조성 그 자체라는 것은 사후세계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어요. 자기가 사후세계를 만든단 말이야. 기독교인은 요단강을 반드시 건너고 불교인은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요. 자기의 사념(邪念)이 지옥 그 자체인 것을 몰라. 문제는 육체를 가졌을 때의 상념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데 있지. 그래서 육체는 수행의 도구로서도 중요하고 도의 관점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거요.”

게이트는 자신의 이모가 임종했을 때 사후세계를 동반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게는 이모가 네 분 계시는데, 그중 셋째 이모와는 어머니 못지않게 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이 미국에서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사후세계에 동반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그런지 요단강을 건너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며 안타까워하기에 (이모의) 관념 속으로 들어가 보니 봉사하는 삶을 충분히 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었다. 이때는 아무리 염체(念體)로서 배를 만들어줘도 본인이 자격 없다고 판단하면 절대 못 탄다. 즉 천사나 악마가 아닌 본인의 의식으로 심판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이모의 생전의 기억을 더듬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을 끄집어내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이것을 이모의 텔레파시에 동조시켰더니 이모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 있게 요단강을 건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생전에 가졌던 관념의 잣대로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면서 사후세계를 만들어낸다.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를 보면 환영이다. 반대로 삶 쪽에서 보면 죽음은 환영이다. 마치 꿈속에서 본 모든 장면이 깨어나면 환영이듯이 죽으면 생전의 기억이 환영으로 남을 뿐이다. 그러나 죽음의 세계 또한 하나의 환영으로 삶과 죽음 자체가 전체의식으로 보면 또 다른 꿈일 뿐이다. 그저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의 자각, 그리고 물질의 영향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깨달음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사실이냐고 묻는 것이 보통사람의 의식수준이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경험자에게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과학적인 얘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나 과학적이냐고 물어보라.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고 있는 꿈의 매트릭스는 육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보편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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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종업 정신과학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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